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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 쑤 Aug 02. 2016

아버지의 손

어릴 적 엄마의 화장대 안에는

오래된 결혼 축하 카드가 한장 있었다.

카드의 고급스러움으로 볼 때

아마도 미국에 계신 큰 고모가 보낸 카드이지 싶다.

(60년대 국내에 그런 종이가 있을 것 같지는 않으므로)

나는그 카드를 유난히 좋아했는데,

카드 앞면의 그림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웨딩드레스의 흰 레이스 소매 아래의 여자 손과

까만 턱시도 양목 소매가 보이는 남자 손이

서로 포개어져 있는 그림이었다.

길고 가녀린 여자의 흰 손을

크고 두툼한 건강한 피부색의 남자 손이 잡고 있었다.


우스운 일은 내가 거의 대학생까지도

그것이 당연히 엄마 아빠의 실사 사진이라고

믿었다는 것이다.


이유는 그림 속의 남자의 손이

아빠의 손과 너무나도 똑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유난히 피부가 흰 엄마의 손 맵시가

결혼 즈음엔 그러했으리라고 짐작되기도 했다.


나는 아버지의 손을 너무도 좋아했다.

어릴 적엔  병원을 많이 다녀야 했는데

아빠가 함께 갔을 때는언제나 안심이 되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병원에 갈 때면 유난히 지쳐보이던 엄마도 그때는 기분이 좋아보였다.

그리고 아빠는 하루 종일 내 손을 잡고 다니셨다.

주사를 맞을 때에는

내 옆에 앉아 그 두툼한 손으로 내 눈을 가려주셨다.

사실 나는 국민학교 입학 전에 이미

전신 마취 수술을 한 아이라

병원에서 주사 맞는 것이라면 나름 노하우도 있었다.

눈을 꼭 감고 숫자 열 세는 것에 집중하면, 제법 견딜만 했다. 참는 건 내 특기였다.

하지만 아빠는 내가 괜찮다고 해도

따라 들어와 늘 내 눈을 감싸주셨다.

그 손은 엄마와 동생들과 다닐 때에도

늘 내 차지였다.


따뜻하고,

부드럽고, 큰 아버지 손.

그 손이 닿기만 하면

내가 겁이 많은 작은 아이라는 것도,

그리고 엄마한테는 이미 손댈 데가 없는 큰 아이라는 것도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세상은 따뜻하고,

보살핌을 받는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었다.


때론 못된 친구가 따돌림을 하고,

남자가 홀대를 하고,

선배가 비난을 하고,

내가 못난 짓을 해서 어려움에 빠졌다.

그때 마다 아버지의 손을 떠올린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리고,

아버지가 싫어할 짓을 골라 하면서

내 인생을 보란 듯이

충동적으로 망쳐놓은 적도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내 마음을 따스하게 감싸주어

그 일이 지나가는 동안

버틸 수 있게 해주었던 그 손이

눈을 뜨면 고통은 지나가 있을 거라는

그런 희망의 기억을 새겨준 것이다.


오랫동안 가려져 있던 그 기억이

나에게

이젠 참기만 하지 말고

그 손을 다시 찾아도 된다고.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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