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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e Nov 19. 2021

담배 냄새

단편소설


 후각에 예민하던 내가 담배를 시작한 것은 의외로 지인들에겐 충격이었나 보다. 그들은 술을 먹다 담배를 태우러 나갈 때쯤 나를 한 번씩 쳐다봤다. ‘왜?’, ‘언제부터?’라든지. ‘몸에 안 좋으니 피지 마.’라는 지나가는 질문이나 충고 따위는 삼킨 눈빛만 내게 던졌다.


 그것을 시작한 이유는 하나가 아니었다. 남들이 들으면 비웃겠지만, 나는 운명이라고 느꼈다.

 마침 그때, 참을 수 없는 궁금증이 밀어닥쳤고 예민했던 후각이 둔해지길 바랐다. 무언가에 예민한 상태는 꽤나 피곤했다. 그 후각 때문에 타인들이 숨기고 싶은 비밀을 알아차리기도 했다. 그리고 그건 삶을 뒤집어 놓기 십상이었다.


 어느 날 나의 엄마가 묻혀온 익숙한 듯 낯선 향이 시발점이었다. 내 앞을 지나가는 엄마한테 나는 그 냄새를 날카롭게 알아차렸다. 집 앞 인테리어 집 사장님의 체취였다.


 ‘어! 그 아저씨 냄새다. 엄마한테 왜 아저씨 냄새가 나?’


 무심코 뱉은 어린아이의 말은 집안을 흔들었다. 그날부터 우리 집은 점차 어두워지다 못해 암흑 속으로 사라졌다. 그때쯤부터였다. 나의 예민함이 나를 비추며 나의 세상에 날카롭게 굴었을 때가. 그래서 담배를 물었다. 그리고 피웠다. 역한 담배 냄새가 가득 찬 콧속엔 다른 냄새가 들어올 틈이 없었다. 그렇게 세상에 둔감해지기 시작했다.


 예민하지 못한 세상은 편안했다. 더 이상 칼 눈을 뜨며 미간을 좁힐 일 따위는 없었다. 담배를 시작하고 나는 노래를 크게 듣고 맵고 짠 음식을 찾아다녔다. 강한 자극에 익숙해진 예민함은 무감각으로 덮이기 시작했다. 성격이 무던하고 덤덤해졌다. 모든 상황에서 ‘그럴 수 있지’라며 무감으로 대응했다. 그리고 결국엔 주변인들에게 ‘이해심이 깊은 사람’이라는 호칭을 얻었다. 화를 내지 않았고 크게 놀라는 것도 없었다.


  텅 비어버린 잔에서 울리는 소리처럼 맑은 사람처럼 행동했다. 나는 일관성을 유지했다. 감흥이 없었다. 좋은 것도 싫은 것도 없이 일정하게 살아갔다. 이런 삶은 꽤나 지루했지만 그 지루함도 못 견딜만한 것은 아니었다.




 흡연구역에서 나를 곁눈질하는 그들이 보였다. 그 궁금증으로 가득한 눈길이 불편하진 않았다. 되레 피어오르는 궁금증을 참는 그들의 눈빛은 불안해 보였다. 흔들렸고 나와 눈을 맞추지 못했다. 그렇게 그들은 내게서 멀어지지도 가까워지지 못했다.


 그 무리들 틈 사이에서 같이 담배를 태우며 그들의 표정을 살폈다. 담배 연기 같은 대화는 금세 날아갔고 그들의 얼굴은 딱 연기 같은 표정을 하며 담배 연기를 연신 뱉어냈다. 짧아지는 담배의 불씨를 바닥에 지져 끄는 순간 그들의 얼굴에선 되레 불을 붙인 듯 생기가 피어올랐다. 나는 아직 남은 담배를 물며 먼저 들어가라며 말을 했다. 그리고 드디어 혼자 남은 순간 나는 피던 담배를 버리고 새 담배를 입에 물었다.


 지루했다. 그것이 무엇이던. 그래서 늘 새로운 낯선 이를 찾았고, 담배도 여러 종류를 피웠다. 하지만 낯설었던 사람은 금세 익숙해졌고, 새로운 담배 또한 마찬가지였다. 중독이 될 수가 없었다. 중독으로 이어지기 전에 내치는 나의 습성은 지독하게 오래갔다. 신나게 나온 술자리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지루해졌고, 깊어지는 시간만큼이나 졸음이 따라왔다. 다른 사람들은 지치지도 않는지 연신 자기들 이야기를 뱉어냈다. 상사가 이해되지 않는 언행을 일삼는 다던가, 애인이 알 수 없는 행동을 한다며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어가며 연설 같은 말을 토해냈다. 술병은 비워졌고, 잔은 채워졌다.


 이들은 다음번에도 그 다음번에도 같은 이야기들을 반복할 것 같았다. 나는 뱉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저 기계처럼 당연스러운 말들을 던져 그들을 위로했다. 원하는 답을 듣는 그들은 나를 좋아했다. 듣고 싶은 말을 듣는 것만큼이나 위로가 되는 것은 없다는 사실이 명확해졌다. 나는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듣고 싶은 걸까.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듣고 싶은 말. 위로가 되는 말.


 거한 술자리가 끝나고 알딸딸하게 취해버린 머리가 세상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자극적이었다. 눈앞에 보이는 조명은 짙어졌고, 땅은 흔들거렸다. 그것이 꽤나 재미있어서 나는 집 앞에서 한참을 들어가지도 않고 쭈그려 앉아 담배를 물었다. 그리고 스쳐가는 생각의 끝자락을 잡았다.


 왜 아무도 내게 담배를 왜 피우는지 묻지 않는 걸까. 왜 내게 생기는 궁금증을 참을 수 있는 걸까. 나는 뭘 바라는 걸까. 누구든 내게 아슬한 무례함을 던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난 비겁하게 그 무례함을 핑계로 감정을 아무렇게나 토할 수 있을 텐데. 그렇게 뱉어볼 수 있는 기회라며 잡아볼 텐데.


 심통이 났다. 아무도 내게 간섭하지 않는 것이. 그리고 간섭을 바라지 않는다며 이야기하면서도 바라는 내게. 모순 덩어리다. 골초처럼 담배를 입에 물면서 건강검진을 받을 때면 건강하기를 바라는 것처럼. 검진을 마치고도 담배를 입에 물던 때처럼.


 술만 먹고 혼자가 되면 이렇게 감정이 격해졌다. 세상에 심통이 났다. 다시 예민해졌다. 예민하던 때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두려웠다. 그래서 취기를 빌려 솔직해졌다. 나도. 나도 그러고 싶다고. 화도 내고 싶고, 질투도 내고 싶다고. 투정도. 울음도 혼자 말고 타인 앞에 뱉어보고 싶다고. 너무 오래된 무던한 척은 습관이 됐다.


 피던 담배를 던져버렸다. 그런 선택을 유지했던 내게 화가 났다. 어딘가 고장이 난 거 같았다. 담배 때문이었다. 냄새에 무던해지면서 시작된 것이었다. 바라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젠 아니게 된 거 같았다. 싫었다. 입안에서 맴도는 담배 냄새가 역했다. 기억 속에만 남은 짙은 밤공기의 냄새가 그리워졌다. 스쳤던. 아니 놓아버렸던 인연의 향기를 맡지 못했던 것이 슬펐다. 향을 맡지 못하니 그 사람을 추억하지 못했다. 기억하고 싶었다. 쉽게 누구든 놓쳐서는 안 됐던 것이었다. 내가 그들을 놓을수록 나는 스스로를 놓았던 것이었다. 점점 외로워졌다. 이 밤공기의 냄새조차 맡지 못하게 된 내가 불쌍했다. 냄새가 없는 밤은 짙은 외로움만 남았고, 나는 그 속에 덩그러니 남아 킁킁거리며 어떤 냄새라도 찾으려 들었다. 하지만 내 속에 맴도는 담배 냄새만 맡아질 뿐 아무것도 맡지 못했다. 분명 이곳엔 다른 것들이 있을 텐데. 나에게 찌든 담배 냄새만 맡을 수 있었다.


 주머니에 있던 담뱃갑을 바닥에 내팽겨 치곤 발로 짓밟아버렸다. 이 모든 것들이 지독하게 지겹고 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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