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1) 50대 중반이면 인생 2막을 시작할 때

by 길벗의 앤 Anne

이 글은 <1주일 만에 집에서 출판 법인 세운 여자 - 55세, 온라인으로 시작한 인생 2막(가제)>첫 번째 프롤로그입니다.


프롤로그는


(1) 50대, 인생 2막을 시작할 때
(2) 전자책 전문 출판사를 선택한 이유
(3) 왜 개인사업자 대신 법인을 선택했나


의 세 가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전자책으로 출판하기 전에 브런치에 올려 독자분들의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 올립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0. 프롤로그


0.1 50대, 인생 2막을 시작할 떄


어릴 적엔 ‘오래 산다’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십 대 시절 내 눈에 비친 육십 대와 칠십 대 어른들은 인생의 끝자락에서 여생을 보내는 분들이었고, 팔십을 넘긴 분들은 말 그대로 천수를 누린 이들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천천히 나이를 들어가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결혼과 함께 은퇴하던 연예인들이 많았지만, 요즘은 나이에 관계없이 오히려 더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내가 어릴 적 좋아했던 스타들이 다시 무대에 서고, 전성기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는 모습을 보면 나도 그들과 함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듯한 착각에 빠지곤 한다.


대학 졸업 이후 나는 ‘아무 일 없이’ 쉰 적이 거의 없다. 금전적 보상은 크지 않았지만, 늘 공부하고 논문을 쓰고 강의하며 바쁘게 살아왔다. ‘아줌마’라는 이름으로만 지낸 시간은 베이징에서 보낸 2년 남짓과, 2022년 12월 발작성빈맥(PSVT) 진단으로 강의를 중단한 이후뿐이다.


그때 건강상의 이유로 강의를 중단하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쯤 자연스럽게 은퇴하고 평범한 노년을 준비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비자발적 은퇴 이후 맞이한 2년 반은 오히려 내 몸과 마음을 재정비하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백세 시대’는 이제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다. 시부모님은 각각 60대와 70대에 세상을 떠나셨지만, 친정 부모님은 80대인 지금도 헬스장에 다니며 하루 만 보 걷기를 실천하고 직접 운전도 하신다. 주위에도 90세를 훌쩍 넘긴 부모님을 둔 이들이 많고, ‘향년 98세’라는 문구가 적힌 부고장을 보고 놀랐던 기억도 있다.


물론 모든 사람이 백세를 사는 건 아니지만, 나 역시 유전적 흐름을 고려하면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어린 시절 잔병치레가 많았던 나는 “너는 칠십만 살아도 다행”이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그러나 이제는 ‘골골백세’라는 말이 그저 농담처럼만 들리지 않는다.


만일 내가 여든까지 산다면 앞으로 25년, 아흔까지 산다면 무려 35년의 시간이 남는다. 이 긴 시간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올해 들어 이 질문이 나의 가장 큰 화두가 되었다.


예순에 은퇴하신 아버지는 30년 가까이 건강 관리에 전념해 오셨고, 어머니도 같은 길을 걷고 계신다. 나도 그 길을 따라야 할까 고민했지만,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나는 유지보다는 도전을, 관리보다는 배움을 더 사랑한다. 40대 후반에는 코딩에 흥미가 생겨 파이썬을 배웠고, 50대에는 유화와 라인댄스를 시작했으며, 최근에는 플루트와 골프를 배우고 있다. 언제나 배우고 성장하려는 열망이 내 안에 있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인풋(input)만 있는 삶을 지속할 수는 없었다.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고 배우기만 하는 삶은 반려자 ‘길벗’에게도 미안한 일이었다.


강의를 그만둔 직후, 빈맥과 코로나 재감염, 극심한 오십견이 겹치며 거의 1년을 고통 속에 보냈다. 세 번째로 찾아온 오십견은 일상을 멈출 정도로 심각했다. 다행히 작년부터 건강이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했고, 빈맥도 줄어들며 무릎 통증을 제외하면 ‘살 만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나아졌다.


그런데 올해 2월, 손가락 골절 사고로 다시 두 달간 모든 활동을 중단해야 했다. 플루트와 골프를 할 수 없게 되자 삶을 채우던 열정이 점차 사그라졌다. 손가락이 회복된 뒤에도 한 번 꺼진 불꽃은 쉽게 다시 타오르지 않았다. 몸은 나았지만 마음 둘 곳이 사라지자 무기력이 서서히 나를 잠식했고, 갱년기의 파도는 더욱 거세게 밀려왔다.


그 무렵, 은퇴자 커뮤니티에서 지역의료보험료가 가장 큰 부담이라는 이야기를 자주 접하게 되었다. 나 역시 점점 보험료 부담을 느끼고 있었기에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4대 보험이 적용되는 일자리를 구하고자 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문득 ‘출판사’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스쳐 갔다.

출판사라면,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까지의 경험과 경력을 떠올려 보았다. 전공서적을 공저로 출간했고, 번역서도 낸 적 있으며, 학회의 출판이사로 수백 편의 논문을 편집했다. 20년 넘게 블로그에 글을 올렸고, 출판사로부터 출간 제안도 받은 적 있다. 무엇보다 어릴 적부터 글쓰기를 좋아했고, 상도 많이 받았다. 돌아보니 내 삶은 이미 오래전부터 책과 글, 그리고 사람을 매개로 하는 작업들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다.


오래전부터 내 글을 책으로 펴내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남의 평가를 기다리지 않고, 내 의지로 자유롭게 출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더 나아가 내 주변의 의미 있는 삶도 책으로 담아낼 수 있다면 더없이 보람찰 것이다.


우연히 떠오른 생각이었지만 생각할수록 출판은 내 경험과 성향에 잘 맞는 일이었다. 어릴 적, 문구점과 서점이 함께 있는 공간을 운영하는 꿈을 꿨는데, 돌고 돌아 그 어린 날의 꿈에 다시 닿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책과 사람을 잇는 연결고리.

서점이든 출판사든 형태는 달라도 본질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나는 아직 이름조차 없는 내 출판사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