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르만혜서 Mar 18. 2023

담배를 찾아서

엄마는 담배를 안 피운다고 했다. 나는 냄새를 조용히 들이켰다. 소심한 킁킁. 엄마 옷에선 나뭇잎이 탄 매캐한 냄새가 났다. 방에 있는 재떨이 냄새가 은은하게 느껴졌다. 엄마는 우리 앞에선 담배를 손에 쥐거나 연기를 내뿜지 않았다. 늘 몰래 피웠다. 나는 그 거짓말을 믿다가도 믿지 않았다. 생로병사의 비밀 같은 프로그램에서 담배가 폐암의 원인이라고 했다. TV속에서 검은 폐의 결말은 죽음이었다.


엄마의 죽음을 원치 않았던 나는 부엌과 항아리 뚜껑 아래에 숨겨진 담배를 찾아내었다. 숨겨져 있다면 그건 거짓말인 거였다. 밤마다 방을 조용히 나가는 엄마를 불안해했다. 엄마의 폐가 까맣게 그을려지는 상상에 안절부절못했다. 찾아낸 담배를 부러뜨려서 변소에 버려야만 속이 편안해졌다. 나는 엄마를 다그치지 않고 계속 숨겨놓는 담배를 멸종시켰다. 그러다가 엄마의 뱃속에 막내가 생겼다. 군불을 때는 아궁이 앞에 앉아서 처음으로 엄마에게 부탁을 했다. 아기가 태어나기까지 담배를 끊어주라고. 간절한 부탁이었다.


무사히 태어난 막내가 18살이 되었다. 명절을 맞이해 간 고향집의 하늘엔 별이 쏟아질 듯 박혀있었다. 막내는 마을에 있는 목욕탕 옥상에서 별이 잘 보인다며 나를 그 옥상에 데리고 갔다. 목욕탕 옥상에 오르는 사다리 아래에 무수한 담배꽁초가 보였다. 누군가 몰래 피우는 담배 같았다. 넌지시 막내에게 '너 담배피냐'라고 물었다. 아니라고 했다. 그 아니라는 말이 어쩐지 기뻤다.


이내 막내의 거짓말은 마을 어른의 제보로 들통났다. 무수한 꽁초들이 다 막내의 것이었고 별을 보았던 낭만적인 옥상은 어두운 뒷골목같이 느껴졌다. 막내의 얼굴을 자세히 보니 입술이 꼭 골초들의 입술 색과 같았다. 중학생의 얼굴을 하고 피워대는 불량함을 마주하니 며칠 전의 기쁨이 무너져 내렸다. 이번에는 막내를 다그쳤다. 실망의 크기만큼 소리를 지르고 너의 일탈에 담배를 판 슈퍼가 문을 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겁박했다. '담배를 피우면 폐암에 걸린다. 폐암에 걸리면 죽는다. 따라서 담배를 피우면 죽는다.' 어릴 때 세운 삼단논법이 꽤 오래 내 머릿속에 박혀 있었나 보다. 간절하게 겁박했다. 그 순간 막내에게 가장 강한 회초리가 되고 싶었다.


담배는 가족에게 거짓말을 하게 한다. 그들에겐 간접흡연이라는 말이 칼이고 건강이라는 말이 총일 테다. 가만 보니 몰래 피우는 것도 속아주는 것도 속 앓는 것도 다 애정이다. 담배라는 빌런이 거짓을 빚어내지만 그 힘이 다하면 진실은 드러나기 마련이다. 몰래 피우는 담배를 단번에 알아채지만 난 모른 척 기다리고 있다. 내가 담배를 부수고 윽박을 지르고 달래보아도 끊어내기 힘들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그냥 거짓말이 진실이 되기까지 믿어보기로 했다.


작가의 이전글 식물인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