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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르만혜서 Mar 23. 2023

쳇바퀴는 아름답다

다람쥐 반달곰 부부의 등산예찬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게 짐을 챙겼다. 김밥과 탄산수 두병, 뜨끈한 커피를 담은 보온병을 가방에 차곡차곡 넣었다. 두둑한 가방은 남편에게 둘러주고 나는 양손을 가볍게 하고 집을 나선다. 산과 가장 가까운 곳에 차를 대고 '통통' 제자리걸음으로 등산을 시작했다. 시작을 알렸으니 부지런히 발을 굴린다. 어디선가 본 듯한 산봉우리, 남산과 비슬산과 소백산에서도 걸었던 비슷한 계단길, 바닥은 흙이고 소나무가 커튼이고 천장은 하늘인 익숙한 풍경을 계속 걷는다. 산은 아름다운 쳇바퀴이다.


나는 부지런히 움직여야만 돌아가는 쳇바퀴 속의 세상을 좋아한다. 굴리는 힘에 반응하는 세상이 정직해보기도 한다. 그 속에서 나는 쉴틈이 없다. 조금 천천히 걸어도 될 것인데 숨이 차도록 걸어야 한다. 걷기를 시작한 지 몇 분이 지나면 차오르는 숨이 갈 곳을 잃고 심장을 때린다. 이러다 심장이 멈출까 겁나 앞서있던 발길을 돌려 남편 뒤에 섰다. 느릴 줄 모르던 다람쥐는 그제야 여유를 찾는다. 느긋한 반달곰 뒤를 따르면 앞서 달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꾹 참는다. 남편 엉덩이에 내 코가 부딪히는 일이 있더라도 그의 템포에 발걸음을 맞춘다. 그렇게 느림보 반달곰과 사나운 다람쥐가 조화를 이룬다.


내가 다람쥐라고 하니 남편이

"넌 저장 잘 안 하잖아"라며 공감하지 못했다.

"무슨 소리야. 나 드레스룸에 옷 많아, 터질 만큼 저장해 놨어"

"아 맞다 맞네"

산을 오르는 동안 가벼운 농담을 한다. 킹스미스를 따라 했다가 오리뽀형님을 흉내 내면서 서로 웃기기에만 집중한다. 휴대폰은 없어도 된다. 차소리 대신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말소리만 들린다. 우리는 산이라는 쳇바퀴를 신나게 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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