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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르만혜서 Mar 26. 2023

현실을 이기게 해주는 척

괜찮은 척

"선배는 늘 기분이 좋아 보여요"

내 거짓 표정에 깜박 속아 넘어간 후배가 아침부터 기분 좋은 말을 해주었다. 1초도 쉬지 못하는 일이 좋을 리가 없다. 마음 한편은 늘 치열함을 장작 삼아 끓고 있었다. "나는 괜찮다. 나는 괜찮아" 자기 최면을 계속 한 덕분에 겉으로는 여유롭고 행복한 사람처럼 보이나 보다. 긍정적인 마음이라고 치장한 최면들이 하루하루를 살게 해주는 것 같다.


아파도 괜찮은 척, 바빠도 괜찮은 척, 기분도 괜찮은 척.


얼마 전 일을 하다가 차 사고가 났다. 내비게이션의 길을 따라갔다면 들어서지 않았을 좁은 골목에 들어섰다. 요리조리 큰길로 빠져나가려고 핸들을 돌리다가 맞은편에서 오는 차에 당황하고 말았다. 그 차를 피해 좌회전을 하다가 '드르르르륵' 차가 찢기는 소리가 났다. 이상하게 주차된 1톤 포터차의 화물칸에 부딪혀 난 소리였다. 다급하게 내린 나는 길바닥 위에서 소리를 으악 질러버렸다. 처참하게 구멍 난 차 문짝을 보니 스트레스가 들끓었다. 다행히 너그러운 포터 주인아저씨는 막 굴리는 화물차이니 수리해주지 않아도 된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내 차까지 걱정해 주셨다. 나는 "별 수 없죠" 라며 감사의 인사를 하고 급하게 골목을 빠져나왔다. 정말이지 시간을 돌리고 싶은 순간이었다.


사고가 나자마자 든 생각은 보험이었다. "운전자 보험과 자차보험이 있어서 다행이야. 그래도 상대편 차량은 수리해주지 않아도 되니 다행이지." 다행인 일이 전혀 없는데 다행이라고 최면을 걸었다. 구멍 난 차를 보니 마음이 쓰렸다. 운전석 문을 열면서도 찢긴 뒷 문을 보지 않으려 애썼다. 부품이 들어올 때까지 두 달이나 아픈 차를 볼 자신이 없어졌다. 그날 저녁, 나는 문구점에 가서 전기테이프를 샀다. 구멍 난 차에 검은색 전기테이프를 여러 겹 붙였다. 감쪽같지 않지만 감쪽같다고 또 스스로를 속였다. 괜찮은 척으로 나아진다면 속이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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