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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르만혜서 Jun 24. 2023

<신혼부부의 싸움-1탄>침묵은 서운함을 감추고 있다

싸움초보자의 기록

2022.06.01


  남편은 나가기로 한 시간에 옷을 입지 않고 소파에 앉아 있었다. 티브이에서는 그가 틀어놓은 영화 유튜브가 틀어져 있었고, 내 얼굴이 점점 굳어갈 때쯤 그는 옷을 입기 시작했다.

"카페 어디갈지 정했어?"

무언의 재촉에 응답하듯 남편이 내게 물었다.

"찾고 있어"

나는 더 차가워진 표정으로 말했다. 운전을 내게 맡길 거면 어디갈지는 매너상 상대방이 찾아줬으면 했다.

"또 인스타 봐? 인스타 좀 그만 보지?" 카페를 찾고 있는데 이상한 불똥이 튀었다.


"누구 차 타고 갈까?"

"자기차"

나는 속으로 또 내차구나 싶었다. 전기차로 바꾸고부터 남편은 운전대를 잡지 않았다. 내심 마음이 불편했지만 전기차가 효율적이니까라는 합리화를 하며 난 운전대를 잡았다. 차 안의 소리가 없어졌고, 나는 찾은 카페로 가기 위해 페달만을 밟았다. 카페 갔다가 범죄도시 2도 보고 양꼬치도 먹기로 했었지만 카페에 도착하기도 전에 카페만 갔다가 집에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20분을 달려서 간 카페는 밝고, 사람이 많고, 사람의 소리와 노랫소리가 경쟁하듯 울리는 곳이었다. 먼 길 왔는데 '시끄러워서 남편이 싫어하겠네..' 조용한 곳을 좋아하는 남편인데, 소란스러운 그곳에서 남편은 한마디 말없이 유튜브만 봤다. 서로 각자 할 일만 하고 도망치듯 카페를 나왔다.


집에 오는 차 안은 남편의 콧노래 소리만 은은하게 들렸다. 기분을 감추려는 소리. 나는 그 차 안에서 서운한 마음을 꾹꾹 마음속으로 했다. 그 말들은 내 목구멍에 덕지덕지 붙어서 목을 답답하게 했다. 간신히 삼켜 내려간 그 말은 내 위를 뜨겁게 달궜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남편은 카페를 간다며 나갔고, 나는 밀린 집안일과 화장실 청소를 하면서 화를 가라앉히고 좋아하는 주꾸미를 시켰다. 3시간 만에 돌아온 남편은 다시 수영을 하러 간다며 나섰다. 갑자기 문득 아까 삼켰던 말이 하고 싶어 졌다. 노트를 펴서 10줄의 서운한 점을 적었다. 적고 보니 유치하고 참을 수 있을만한 6가지에 다시 줄을 그었다.


- 양치 안 하고 하는 뽀뽀

- 식탁 위에 있는 옷, 약 껍데기, 칼, 가위, 양말

- 결국은 내가 하는 빨래, 결국은 내가 하는 수건 개기

- 표현 안 하는 입

- 밥하고 나서도 설거지는 내가 하는 기분

- 당연하게 생각하는 내가 운전

- 운전을 내가 하는대도 가고 싶은 곳을 내가 알아보는 것

- 어디 가자고 하는 사람도 나, 데이트 생각을 내가 함. 제안을 내가 먼저 함.

- 에어컨도 못 켜는 사람으로 무시, 무시받는 느낌 자주 있음.

- 내가 하는 말을 안 믿음.


고마워하지 않고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나를 무시하는 게 미웠다. 서운 리스트를 찍어 남편에게 보냈다. 수영을 다녀온 남편은 수박 맛 얼음덩어리 아이스크림을 건네고는 서재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한참을 있다 카톡이 울렸다. 내가 보낸 서운 리스트의 반박과 본인이 섭섭했던 것을 장문의 카톡으로 보냈다.


'가위로 자르면 될걸 왜 도마를 쓰는지, 계란은 왜 무거운 유리그릇에 푸는지, 깨끗한 그릇은 왜 더러운 그릇에 포개는지, 요리할 때 그릇은 왜 그렇게 많이 쓰는지, 깨끗한 그릇 물로 헹구고 다시 넣으면 될 거 왜 또 식세기에 넣는지..., 새 수건은 왜 안 뜯는지, 속옷은 왜 안 사는지, 빨래는 왜 그렇게 자주 돌리는지, 왜 멀리 있는 카페 가는지, 새로운 것 이쁜 것만 좋아하는지, 산책하고 수영하는 건 데이트 아닌지, 500만 원 안 빌려준 사람한테 테슬라 돈 가슴수술 돈 주고 싶은 맘 사라짐, 인스타는 왜 하루 종일 보는지, 재테크는 왜 안 하는지, 경산 카드 지역 카드 왜 안 쓰는지, 카드 들고 다니기 귀찮아서? 왜 자기를 쪼잔한 사람 만드는지, 다치고 액정 깨지고 본인 몸 소중히 안 하는 사람한테 위로해주고 싶은 생각 없음....'


서운 배틀이 시작되었다. 남편의 답장에는 미안함은 쏙 빠진 채 본인이 맞고 내가 틀리다는 논리가 가득했다. 나의 서운함에 나름의 이유들을 덧붙이며 나를 공격했다. 3번을 곱씹어 읽어보니 새롭게 알게 된 마음도 있었다. 테슬라 사준다던 그가, 500일 동안 아침잠을 깨워주면 가슴 수술할 돈을 주겠다던 그가 돌아선 이유가 있었다. 올 2월에 유상증자를 해야 하니 500만 원만 빌려주라는 그의 말에 '오빠는 믿지만 내가 신경 쓰여서 싫다'며 거절한 나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글로 붙은 싸움에 대화로 풀어보려 했지만 마주 앉은 식탁에서 나는 눈물만 흘리고 울먹이기만 했다. 남편의 눈빛에서 감정에 휘둘린 나와 대화가 안 된다는 냉정함이 묻어났다. 그렇게 부부싸움은 해결하지 못한 채 나는 방으로 남편은 소파로 가 누웠다. 그 밤 내내 나는 산책을 남편은 담배를, 나는 책을 남편은 유튜브를 보며 뒤척였다. 알 수 없는 마음의 소용돌이에 쉬이 잠들지 못하는 밤이었다.


빨간 눈을 하고 출근한 회사에서는 내내 집중이 안되었다. 남편의 속내에 실망한 나는 '자기 맘 아프게 해서 미안해'라는 남편의 사과에 또 장문의 카톡으로 하고 싶은 말을 쏟아냈다. 퇴근길에 마주친 대리님들이 내 눈을 보고 나를 붙잡았다. 부부싸움을 했다는 나에게 당장 스타벅스로 가자며 커피 한잔을 시켜 구석자리에 앉았다. 결혼 7년 차인 대리님과 10년이 가까워진 다른 대리님. 우리 부부가 왜 싸웠는지 물으셨다.

"전형적인 집안일, 재테크 싸움이네"

"집안일은 누가 더하고 덜하고를 따지지 말고 그냥 자기가 좋아하고 잘하는 걸 하면 되는 거야."

"내 남편은 옹졸하고 속도 좁아"

"너무 딥 해지지 말고 남편의 말은 네가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부탁의 말이라고 생각해, 널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표현이 서툴러서 그런 거야"

"너도 이렇게 카톡으로 장문으로 남기지 말고 대화를 부드럽게 해, 그리고 넌 성격이 너무 급해. 좀 천천히 해"

"혜서가 우니까 내 맘이 아프네"

온갖 부부생활의 지혜와 또 다른 부부싸움을 듣게 되었다. 대리님은 "나는 이럴 때 우리 부부도 이렇게 싸워 다 똑같이 살아라는 말이 위로가 되더라"며 나를 달래주었다. 진심으로 우리 부부가 문제를 잘 해결하길 바라는 눈치였다.


다음날.


퇴근길에 "오빠 저녁에 뭐해"라고 카톡을 보냈다. 남편이 좋아하는 가족 족발을 사들고 화해를 해보려는 생각이었다. 공교롭게도 이 날은 축구를 하는 날이랜다. 집에 가던 핸들을 돌려 동생집으로 향했다. 저녁도 먹고 스트레스도 풀고 동생 얼굴도 볼 겸. 그렇게 가다가 그냥 동생집에서 자고 투표도 하고 가겠다고 남편에게 말했다. 잠에 빠져있던 나에게 남편은 "내일 영화 보고 양꼬치 먹을까?"라며 화해 신청을 했고 나는 알겠다고 했다.

투표를 하고 들어선 신혼집에 불이 켜져 있었다. '머리 하러 간 남편이 아직 안 들어왔을 텐데...' 안방 문을 여니 남편이 자고 있었다. 또 잠을 못 이긴 건가. 예약이 취소된 미용사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한심 지수가 올라간 나는 또 무뚝뚝해졌다. 영화를 보고 양꼬치를 먹는 내내 침묵이 이어졌다. 양꼬치의 개수가 몇 개인지를 보고 소스 그릇이 네모가 겹친 모양이며 한 모서리가 깨져있었다는 걸 알았다. 기분이 좋았다면 발견하지 않았을 것들을 관찰하고 조용한 외식을 했다.


그리고 말 한마디 없이 들어온 집안. 남편은 또 수영하러 가겠다며 집을 나갔다. '먼저 미안하다고 살살 풀어볼까, 대인배가 먼저 푸는 거지 뭐'라는 넓은 마음은 왜 자꾸 마음속으로 기어들어가는 건지 도통 모르겠다. 예전처럼 또 긴 침묵을 지나야 풀리는 것인지. 지긋지긋하다.


서운배틀로 싸움만렙이 되는 날을 기대하며 부부의 싸움을 모조리 기록하리라.


오늘 할 일 : 초보자여 포션을 먹고 한 발짝 공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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