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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르만혜서 May 25. 2023

영원은 없다.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단다"

20년 전 담임이 해준 이 말은 꽤 인상적이었다. 끝없이 이어지고 변함이 없는 상태. 영원. 나는 영원이 없다는 걸 일찌감치 알았기에 사랑에도 한계를 정해두었다. 사랑은 순간일 뿐이라 생각했다. 하나의 사랑을 돌이켜보면 달콤한 추억보다 이별의 기억이 유독 진했다. 수년, 십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 또렷한 걸 보니 이별의 기억은 뿌리를 깊이 내린 모양이다. 유한함을 정의한 그 순간이 인생 속에서 영원히 기억되는 아이러니이다.


수많은 헤어짐들 가운데 장면은 또렷하지만 감정은 희미한 기억이 있다. 6년을 만나왔던 그 남자와의 이별이다. 나는 이직에 성공한 후 오랫동안 이별을 준비했다. 사귀고 첫 번째 생일에 사주었던 나이키 포스 운동화를 한 번도 안 신어준다는 핑계로, 변변치 않은 직업을 가졌으면서 게임만 한다는 이유로, 시끄러운 귀뚜라미를 잡으러 다닌다는 문제로. 사실은 내 마음에 생긴 문제를 그 남자의 잘못으로 몰아갔다. 혼자만의 결정을 내린 후 헤어질 장소를 찾아 나섰다. 평소에 잘 다니지 않는 길, 지나칠 일이 없는 미대 숲 속 벤치로 그를 불러냈다. 벤치아래에 깔린 솔잎향이 어제일처럼 생생하게 느껴진다. 나는 마른 흙바닥만큼이나 메마르게 이별선고를 이어갔다. 그 남자는 '너와 결혼까지 생각했다'며 애처롭게 굴다가도 '나도 권태기 안 느껴봤겠냐'라고 자존심을 지키려 애썼다.


나는 영원한 이별같이 매정하게 하기도 외로움에 못 이겨 재회하기도 했다. 지리멸렬한 연애의 결말은 예상하다시피 헤어짐이다. 나의 이별은 늘 일방적이었다. 만남은 수동적이고 헤어짐은 능동적이게 했다. 이별의 키를 쥔 사람에게 쏠리는 힘을 막 다루었다. 나쁜 사람은 나인데 다시 만나주라 말하는 사람이 너일 때 자만에 빠졌다. 환승과 비행기모드 같은 미숙한 이별들. 나도 누군가에겐 최악이 되었다. 악역에게 주어진 벌은 일말의 죄책감뿐이었다. 점점 이별, 죽음, 퇴사 같은 떠나는 것들에게 무뎌졌다. '슬픔은 사랑을 하는 대가란다'라는 말이 와닿지 않는다. 만남은 영원하지 않고 작별은 허무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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