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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르만혜서 May 25. 2023

신혼부부싸움의 원인이 의자라니

신혼 2개월차 초보싸움

  신혼집을 계약했다. 평생 살던 그렇고 그런 집을 벗어나 깨끗하고 단정한 공간을 채워야 한다는 기대감이 차올랐다. 거의 3개월 내내 [오늘의 집]을 드나 들면서 수많은 사진들을 캡처하고 온갖 가구들을 책갈피 목록에 넣었다. 그때의 설렘은 아마도 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인테리어를 완성한다는 설렘이었을 것이다. 잘 된 작품을 완성하는 데에서 느낀 기분 좋음은  아크릴화 그림을 그려봐서 잘 알았다.  그냥 쳐다보기만 해도 베시시 웃음이 나오려면 내 취향을 담뿍 담고, 완성도가 높아야 했다. 사실 나는 과거, 인테리어에 실패한 적이 많았다. 어쩌면 소질이 없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이번만큼은 성공해야겠다고 조용한 다짐을 했었나보다.


  이 기대감은 내 미술적 안목이라면 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인테리어를 완성할 수 있을 것 이라는 자신감에서 왔을 것이다. 화이트에 진한 원목(그대의 취향)이라는 콘셉트도 잡았다. 단순하지만 가장 대중적이고 어쩌면 실패 확률이 가장 낮은 조합이었다. '특별하면서도 보기만 해도 기분 좋은 조합'을 위해서 의자 하나를 골라도 사이트 내에 있는 모든 의자를 보고 가격 대비 가장 예쁜 것 위주로 골라 담았다. 그 노력의 시간은 꽤 길었다. 나는 어떤 물건을 살때 특히 애착이 가는 물건(주로 시각적인)에는 더 높은 기준을 둬서 선택하는데 시간이 오래걸린다. 노력의 값이 컸기 때문일까? 완성된 공간에 대한 기대감이 나도 모르게 점점 커졌나보다.


  가장 공들이고 중요하게 생각한 공간은 침실과 다이닝 룸이다. 하얀색 반원의 식탁에 원목의자를 놓고 포인트로 그린을 뿌리고 싶었다. 완성된 그 공간은 조금은 부족해 보여도 나름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식탁과 의자만 있는 썰렁한 자태가 보기만 해도 베시시 미소가 지어지는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도 어떤가? 내 취향으로 채워나가면 조금은 나아질 것 이라는 2차 기대를 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썰렁한 자태가 아니라 의자에게서 발생했다. 딱딱한 원목의자, 라탄 자국이 그대로 남는 사각형의 의자는 내 사람의 허리와 엉덩이를 불편하게 했다. 때마침 나타난 편안하고 오랜 시간 앉아도 몸에 통증을 유발하지 않는 이케아 책상 의자가 식탁 한 공간을 차지해버렸다.


  고동색의 옆라인이 있는 한샘식탁과는 어울리지 않는 '공부에 몰입되는 서울대 연세대 사무실 컴퓨터 책상 공부용 공시생 수험생 허리 안아픈 이케아 바퀴달린 회색의 의자'였다. 난 그 녀석이 마음에 안들기 시작했다. 한낮 편안함이 미적 가치보다 중요하다는 것인가.. 내 가치관과는 맞지 않았다. 몇번은 그 녀석을 공부방에 돌려보내기도 했었다. 10분~20분 정도로 길지 않은 식사시간에 약간의 불편함은 적응 해주기를 바랬다. 하지만 편안함을 가치로 두는 그대는 그 녀석을 어김없이 식탁 앞으로 데리고 왔다. 내가 고심하고 오랜 시간 노력을 들여 골라놓은 라탄 의자는 뒷전에 박아두고 그 녀석이 어울리지 않는 주인행세를 하는 꼴이니 마음에 들리가 없었다. 밥을 먹을때마다 뒷전으로 밀려난 라탄 의자와 눈이 마주쳐서 한날은 울컥 눈물이 날 뻔하기도 했다.


  그 녀석이 식탁에 안주인 노릇을 하는 모양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그대에게 넌지시 표현도 했었다. 하지만 편안함을 이기지는 못했다. 해맑게 그 녀석을 모셔오는 그대를 보면 또 행복해 보이기도 하고, 편함의 가치를 가진 친구가 이케아 의자에 앉는 그대가 이해가 된다고 하니 나는 체념하고 있었다. 그렇게 몇 달이 흐른 후 친구가 집에 놀러 왔다. 와인 3병에 찌-인하게 기분이 오른 상태에서 2차 홈파티를 준비하는데 그 녀석이 또 보인다. '그래 넌 이 방에 있으면 내친구가 자는데 방해만 되고, 식탁에는 더더욱 오면 안돼!' 취기가 오른 나는 그 본심이 드러나 버렸다. 그 녀석을 현관 입구까지 쫓아냈다. 다시 제자리를 찾은 소중한 라탄의자에 앉아 감성적인 파티를 즐겼다.



  그대는 친구와의 시간을 둘이서 보내라는 배려심으로 파티가 끝나고서야 집에 들어왔다. 그대가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그토록 편안함을 안겨줬던 녀석이 배웅을 하고 있었다. 내가 현관으로 쫓아버린 이케아 의자녀석. 그 녀석을 쫓아내서였을까 한동안 그대와 나 사이에는 냉기가 흘렀다. 내가 한 잘못을 찾아 사과하기위해 3일을 고민했지만 내가 사과할 만한 사건은 없었다. 4일째 되던날은 스트레스가 머리 끝까지 올라왔다. 도대체 뭐때문에 이렇게 단절하는 것인가 아무일도 아닌 사소한 거라면 나는 화를 낼 것 같았다.



  술기운에 드문드문 있는 기억속에 그 녀석을 쫓았던 기억이 있기는 했다. '음... 그 녀석을 내다 버려서 자기를 존중하지 않는다고 느꼈을까?' 식사때만 되면 녀석을 모셔오던 그대가 2일 연속 식탁에서 그 녀석을 배제했다. 내가 모셔와도 거기 앉지 않는다. 이 정도면 심증은 충분했다. 원인을 알았으니 사과 해야 하는지 결정을 해야했다. 이토록 사소한 장난에 5일동안 꽁해있는 그대에게 이게 사과할 거리가 되는가? 긴 시간 끌어오면서 나는 부정의 생각에 지칠대로 지쳐 그대의 마음이 스스로 풀어질때까지 기다리기로 결심했다. 의자녀석을 싫어한 내 행동 때문에 그대가 마음의 상처를 받았어도 그 녀석이 싫은 건 싫은거다. 나는 그대를 존중하지 않은것이 아니라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 있는 그 녀석을 싫어한것이다.



  그대가 부인에게서 받아야한다고 생각하는 대접, 내가 이 사소한 장난을 유쾌하게 받아들일거라고 예상하는 결과들 모두 어쩌면 상당부분 망상이었을 수도 있다. 이런 허상이 어긋났다고 큰일 난 것처럼 실망하고 최악의 극단까지 몰아넣는 부정적인 생각 역시 불필요한 행동인 것이다. 사소하게 지나갈 수 있는 헤프닝임에도 내 인간관계에서 가장 길고 고통스러운 단절을 경험하고 있다. 의자 그것이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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