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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르만혜서 May 29. 2023

내가 만든 도자기는 어디 가고 다른 도자기가 왔다.


결혼기념일, 눈 오는 전주에서 우리 부부는 도자기 접시를 만들었다. 나는 귀가 가지런한 토끼모양, 남편은 조르디모양으로 만들었다. 흙으로 빚고 노랑, 초록, 하양으로 테두리를 칠한 뒤 우리 이름으로 도장을 찍었다. 친절한 젊은 공방주인은 도자기를 잘 구워서 집으로 보내주기로 하였다. 약속한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도 도자기는 오지 않았고 우리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기억에 공방에 연락을 해보았다. 돌아온 답변은 공방이 이사를 하느라 늦어져서 죄송하다는 말이었다. 후기를 찾아보니 인내심 없는 여러 손님들이 뿔을 내고 있었다. 공방은 연락두절과 수신차단으로 대처하고 있는 듯했고 네이버 리뷰는 별한 개로 도배되었다. 그렇게 3달이 지나고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은 공방주인과 겨우 연락이 닿았다. 긴 시간 동안 손님들이 자연스럽게 잊기를 기다린 건가? 애가 타는 건 손님들 뿐이었다. 운이 좋았던 우리 부부는 연락이 되고 일주일 뒤 잘 구워진 도자기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어딘가 이상했다. 내가 만든 토끼는 원래의 도안과 다르게 귀가 가지런했는데 도착한 완성품은 귀가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남편의 조르디는 예뻐도 너무 예뻤다. 묘하게 다른 디테일에 3달 전에 찍어두었던 사진을 찾아보았다. 우리 부부가 만든 도자기는 깨진 건지 새로 만들어서 보내준 게 틀림없었다. 도안에 없는 꽃모양과 도장위치까지 다 비슷했지만 이름을 찍은 도장 글씨체가 달랐다. 내가 만들지 않은 핸드메이드 접시가 와버린 것이다.



3달을 기다려 받았건만 우리의 작품은 온데간데없고 변명 없이 무심하게 보낸 도자기가 왔다. 우리가 까맣게 모르길 바랐을 주인장의 마음씨에 화가 날 뻔도 했다. 그간의 행보와 별점테러들을 지켜보았던 남편은 젊은 주인에게 '마음고생 심했을 텐데 도자기를 잘 보내주어서 고맙다'라고 문자를 보냈다. 나는 우리의 특별한 작품을 그대로 따라 만들어준 주인에게 살짝 감동스럽기까지 했다. 손님의 속을 까맣게 태운 그 공방은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 부부의 별점테러가 없어도 자연스럽게 없어진 듯했다. 그게 장사의 이치다.


완성된 접시


내가 만든 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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