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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르만혜서 May 17. 2023

나의 이름은

석과 세글자의 행방불명

나는 가까운 사람에게 늘 다르게 불리었다. 아빠는 자야라고 했고, 오랜 친구는 똑자라고, 룸메는 석, 친구의 아빠는 돌자, 나는 스스로를 비수라고 불렀다. 내가 한글을 막 배우기 시작했을 때 아빠는 내 한자 이름을 가장 먼저 가르쳐 주었다. 옛 昔, 아들 子 뜻으로 풀자면 '옛날의 아들'. 이 이름이 이상하다고 처음 느낀 건 5학년이었다. 내 이름 석자를 말하기 쑥스러웠고 처음 오는 선생님에게 자기소개하는 것만큼 숨고 싶은 일이 없었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 내 이름은 마을 할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란 걸 알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우리 가족의 이름은 다 조금씩 이상했다. 가을에 태어난 셋째는 '추석(가을 秋)'이 될 뻔했다가 춘석이 되었고, 친척의 이름을 따라 지은 민경, 여름에 태어나 '하석(여름 夏)'이 되려다가 누군가의 엉터리 받아쓰기 솜씨 덕분에 화석이 된 막내. 대충 지어 부른 '메리'나 '뽀삐'와 비슷한 시골식 잡종 작명이었다.


내 자아가 생기기 시작할 무렵 이름 석자는 지우고 작명소에서 지은 근사한 이름으로 개명을 했다. 근현대사에 심취한 국사학도로서 '석자'와 같은 일본식 여자 이름은 말도 안 된다는 나름의 이유를 붙여가며... 처음 얻게 된 귀한 이름은 어디에서나 올바르게 불리었다. 어떠한 별명도 아닌 혜서. 다정하게 혜서야라고 불러주면 없던 사랑도 싹텄다. 그게 시어머니일지라도(ㅎㅎ).


나는 이름을 더 돋보이게 닉네임을 바꾸었다. 헤르만 혜서, 앤 혜서웨이(이름과 이름이 나란히라서 웃기지만). 유명인 사이에서도 살아있는 온전한 내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속 대사 '자신의 이름을 소중히 하렴'이라는 말이 와닿는 오늘이다.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가 될지도 모르는 미래에서 혜서라는 고유성은 지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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