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인가족이 되고 싶은 하루
sbs 초인가족이란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처음엔 단지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겸 배우가 나온다고 해서 팬심으로 보기 시작했지만
지금은 드라마 초인가족 자체의 팬이 되었다.
지금까지 본 편 중 가장 좋은 편은 '5회 2017 레디메이드 인생' 편이었다.
레디메이드 인생은 만들어 놓고도 팔리지 않는, 임자 없는 기성품 인생이란 뜻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초인가족 5회에선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결국 해고된 동생이 주인공이다.
그는 월 90만 원 받는 비정규직으로 '온갖 잡일을 도맡아하면서' 버티는 삶을 산다.
그렇게 3년을 버티자, 회사는 정규직 전환을 미루고 미루다 결국 그를 버린다.
나는 비정규직랑 비등한 프리랜서 방송작가로 일한 적이 있다.
월 80만 원을 받으면서 밤새 일하고, 섭외전화를 하면서 애걸복걸하고, 선배 작가의 눈치를 보면서
그렇게 3년을 버텼다. 내가 그만 둔 이유는 '스팸 선물 세트' 때문이었다.
3년차 방송작가로 교육방송에서 요리프로그램을 하던 시절이었는데,
교육방송이 몇 십주년인가? 되는 기념일 적인 날이었다.
근데 정규직 PD와 계약직인 비정규직에게만 떡을 돌렸다.
게다가 명절마다 프리랜서인 작가들만 빼고 '스팸 선물 세트'를 줬다.
드럽고 치사하단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거라는 것을 몸소 체험했다.
결국 드럽고 치사함과 고된 업무에 지쳐 사표를 던졌다.
그러니까,
나는 초인가족 백수삼촌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태어나서 트름만 해도 칭찬받고, 뒤집기만 해도 칭찬받던 시절이 있었던 나와 초인가족 백수삼촌은
나이를 먹었을 뿐인데, 레디메이드 인생을 살고 있다.
백수삼촌은 다시 취업준비에 열을 올린다. (FEAT. 형수의 전폭적 지원)
그리고 드라마 '초인가족 5회' 의 명장면이 탄생한다.
#면접 상황
면접관 : 우리 회사에 지원한 이유가 뭔가?
백수삼촌 :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서 입니다.
면접관 : 전공이 우리 회사와 상관없는데, 대학은 왜 빚까지 내면서 졸업했나?
백수삼촌 : 취업을 하려고 졸업했습니다.
(중략)
면접관 : 취업을 하면 무엇을 하고 싶나?
백수삼촌 : 꿈이 있습니다. 대리가 되는 것입니다.
면접관 : 직급 대리 말인가?
백수삼촌 : 네, 정규직이 오를 수 있는 첫 번째 발판이기 때문입니다.
진심을 다한 면접이었다고 생각했다. 자소설이 아닌 진짜 자신의 이야기를 한 것이니까.
솔직한 백수삼촌은 결국 대리운전 아르바이트를 하다 대리가 되지 못하고 귀향한다.
서울에서 취업이 어렵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 인정한다.
백수삼촌의 형도 결국엔 동생을 시골로 보내야 하는지 고민한다.
그러나 그의 상사가 말한다.
넌 안돼, 라고 말하는 것은 세상 하나로 족하지 않을까?
백수나 혹은 정규직이 아닌 사람들은 모두 자책감을 가지고 있다.
내가 부족해서 이런 일을 하나, 라는 생각을 한다.
그 생각의 끝엔 부모의 자랑스런 자녀가 되지 못한 것에 대한 큰 좌절감을 겪는다.
그런데 아무리 노력해도 죄책감과 좌절감을 해결할 수가 없다.
그건 개인의 노력과는 무관하기 때문이다.
정규직과 공무원 등 칭송받는 직업은 모두 인원 제한이 있다.
그 인원 제한에 들지 못하는 사람은 늘 낙오자로 오해받는다.
결국, 백수삼촌은 재취업에 성공하지 못하고 본가로 내려간다.
일상으로 돌아온 형네부부는 백수삼촌의 빈자리를 느낀다.
사람의 빈자리는 티 나게 되어있다.
사람의 빈자리를 느끼지 못하는 곳은 어쩌면 회사라는 공간 뿐일 수도 있다.
내 자리가 아주 빨리 채워지는 공간이니까.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백수삼촌이 다른 회사에 들어가지 못한 것이 참 다행이라 생각한다는 것이다.
한없이 착하고 성실한 백수삼촌은 회사에 넘치는 사람이다.
그가 귀향 후 어떤 일을 할 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는 어떤 일이든 책임감있게 삶을 살아갈 것이다.
그게 무엇이든. 그의 삶을 응원한다.
비록 나는 회사에서 내 삶을, 젊음을 갉아먹고 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