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이해하는 나이
허지웅 에세이 <버티는 삶에 관하여>를 읽고 있다.
허지웅 작가는 그의 엄마를 안타까워한다.
그런 그의 모습이 참 인간적이라고 생각했다.
나에게도 엄마가 있다. 당연한 소리인가.
내가 엄마를 이해하려고 노력한 순간은 정확히 22살. 엄마가 나를 낳은 그 나이였다.
부끄럽지만 그 전엔 엄마가 다른 엄마에 비해 자격이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22살, 어김없이 진탕 술을 먹고 새벽녘 집에 들어왔는데
불연듯 엄마는 이 나이에 나를 낳아서 키웠구나, 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엄마의 삶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술만 마셔도 배부른 나이에, 친구들이랑 노는 게 제일 재미있는 나이에,
엄마는 나를 낳았구나. 즐거움보단 책임감을 더 느끼며 22살을 보냈겠구나.
술 기운 때문인지 몰라도 한참을 그렇게 엄마가 불쌍해서 울었다.
그렇게 난 술과 연애가 전부이던 삶을 정리했다.
엄마의 삶을 갉아먹으면서 태어났으니 완벽하진 않아도 노력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어느덧 서른이 되었다.
엄마 친구의 자식(놈)들에 비해 나는 뛰어난 삶을 살고 있지 않다.
대기업에 입사하지 않았고, 선생이나 공무원이 되려고 준비하지도 않았다.
방송작가 3년을 하며 역류성식도염과 하지정맥류를 얻었고,
지금은 자그마한 광고대행사에서 홍보관련 일을 하면서 안구건조증, 피부건조증과
싸우고 있다. 그래도 열심히 살고 있다. 지각하지 않고 출근하고 있으니까.
얼마전, 서른살 로망을 실현하겠다며 그간 저축해둔 소액(정말 소액임)으로 유럽행 비행기를 덜컥 끊었다.
그래도 엄마는 나한테 잘했다, 라고 말한다.
그럼 또 생각한다, 엄마도 서른살 유럽 배낭여행이 로망일 수도 있었는데,
그런 로망조차 내가 가져갔구나.
괜히 마음이 아파 내년엔 엄마랑 꼭 호주에 가겠노라고 큰소리쳤다.
어느 날인가 엄마한테 물어본 적 있다.
"엄마는 왜 그렇게 일찍 결혼해서 나를 낳았어?"
"그러게"
"후회하지? 솔직히 말해도 돼. 안 울게."
"뭘 후회해. 엄마 때는 다 그랬어."
(침묵)
"그런데, 넌 그렇게 안 살아도 돼."
"뭘?"
"남들 다 그렇게 산다고, 너도 그렇게 안 살아도 된다고."
서른이면 지금 애를 낳아도 노산이라고 아빠 친구가 말했다.
아, 이 아빠 친구는 내 인생을 참 쉽게 말하는 버릇이 있는데,
사춘기 시절 나에게 뚱뚱한게 못생겼다고 말해서 지금까지도 외모 콤플렉스로
밖에선 밥도 내 양껏 못먹게 한 장본인이다.
어쨌든, 노산이든 노처녀이든
나는 결혼이 하고 싶지 않다. 엄마처럼 살기 싫어서.
나는 아직도 좀처럼 엄마가 행복해 보이지 않으니까.
좀처럼 사랑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니까.
그건 내 잘못이고, 아빠의 잘못이고, 우리 가족의 잘못이고, 엄마의 잘못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엄마의 잘못된 선택이 나를 만들었다.
아이러니 하게도, 엄마의 희생이 내가 여행을 꿈꾸는 계기가 되었다.
아이러니 하게도, 엄마의 늙음이 내 젊음이 되었다.
아이러니 하게도, 엄마의 인내가 내 분노가 되었다.
그리고 아이러니 하게도 이제는,
엄마의 슬픔이 내 슬픔이 되었다.
엄마의 슬픔은 영영 모를 줄 알았는데, 여자로서 엄마가 참 가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