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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문정 Aug 28. 2015

우리는 아직 충분히 울지 않았다

충분한지 아닌지 그 자체, 당사자 말고 대체 누가 정할 수 있을까 


“개구리가 겨울잠을 자는 이유는 변온동물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겨울잠을 자지 않지? 왜 그럴까? 문정이 나와 봐.” 선생의 손이 티셔츠 안으로 쑥 들어왔다. 그는 막 커지기 시작한 내 가슴을 주물럭거리며 이처럼 사람은 밖의 온도와 상관없이 따뜻하다고 말했다. 왜 나한테? 부끄럽고 또 부끄러웠다. 


초등학교 4학년 담임은 정년퇴임을 1년 앞둔 남자였다. 10년도 훨씬 넘은 일인데 아직도 가끔 그 때의 일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나를 이상하게 보던 아이들의 눈, 선생의 두텁고 까끌하던 손, 얼굴에 화르르 올라오던 열기.


시간이 지나서 지금은 많이 잊었다. 하지만 다 잊지는 못한다. 아마, 영원히 못 잊을 것이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은 반쯤 맞고 반쯤 틀리다. 시간이 지나면 상처가 아무는 것은 사실이지만 ‘새살이 솔솔 나는’ 것 같은 일은 없다. 


고통이 지나가도 사람들은 평생 흉터를 안고 떠올리며 산다. 우리는 배처럼 멀리 나갔다가도 자꾸만 과거로 돌아와 매인다.


회사가 광화문 근처에 있어 세월호 유가족들과 시민단체에서 그곳에서 서명운동이나 단식하는 것을 본다. 나는 무언가 하지 못하는 것이 부끄러워 근처를 지날 때 정면을 보기가 힘들다. 


세월호와 관련해 나를 화나게 하는 단어는 ‘충분’이다. 어떤 이는 그만하면 충분하니 광장을 시민들에게 돌려주라고 한다. 누군가는 옆에서 피자나 초코바를 먹으며 단식을 조롱한다. 그걸 폭식투쟁이라고 하던데, 나는 투쟁이라는 말이 이렇게 천박해질 수 있는지 처음 알았다.



198일만에 배에서 나온, 단원고 2학년 3반 황지현 학생의 아버지 황인열씨는 딸이 나오기 전까지 매일 바지선을 탔다. 그가 “4월 16일이라는 날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한 인터뷰 기사도 읽었다. 기사에는 그의 아내 신명섭씨가 사고 후 매일 팽목항에 아침상을 차렸다는 말도 있었다. 이유는 이랬다.


 “우리 아이가 왜 안 나오나 생각해봤는데, 아무래도 밥을 못 먹어서, 배가 고파 힘이 없어 못 나오는 것 같아서, 이거 먹고 힘내서 엄마한테 오라고…” 


이들에게 ‘충분하다’는 말은 의미 없는 말이다. 변한 것이라고는 시간 뿐인데, 사람들은 자꾸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너무 피로하니까, 우리도 일상 생활을 해야 하니까, 경제를 살려야 하니까(그놈의 경제 타령!). 


이런 이유들 앞에서 이제는 유명해진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을 떠올린다. 교황은 추기경 시절 195명이 죽고 700여명이 다친 나이트클럽의 사고 5주년 미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아직 울 필요가 있습니다. 아직 충분히 울지 않았어요.” 그는 덧붙였다.


“일하고 아첨하고 돈 버는데 골몰하고 주말을 어떻게 즐길까 신경 쓰느라
더는 여기에 없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 충분히 울지 않았어요.”





‘한국은 냄비 근성이 문제’라고 말하던 사람들이 같은 입으로 세월호에 대해 충분하다고 말할 때 나는 현기증을 느낀다. 이들은 군 의문사에 대해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독도 문제에 대해서도 충분하다고 말할 수있는가? 애초에, 충분한지 아닌지 그 자체를 당사자 말고 대체 누가 정할 수 있는가? 


나는 초등학교 때 그 선생을 만나면 충분히 미워했으니 됐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왜 그랬는지 따지고 이제라도 사과하라고 요구할 것이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타인의 상처에 대해 함부로 판단하는 말이 나올 때마다, 나는 이 세계가 침몰하는 거대한 배 같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아직 충분히 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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