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러운 생의 주기가 대리만족의 영역이 되어버렸다
20대 중반, 입사 직후의 일이다. 취업만 하면 나를 위해 좋은 옷을 사고 싶었다. 취업 후 처음 맞는 겨울에 명동에 있는 백화점으로 갔다. 그때까지 내가 가지고 있던 가장 비싼 코트는 인터넷에서 산 팔만원짜리였다. 가볍고 보풀이 일어나지 않는 코트를 사야지, 가격에 맞춰 사는 거 말고 진짜 내가 맘에 드는 걸로 말이야. 들뜬 마음으로 여성 의류 매장을 돌아보았다. 예쁜 코트가 눈에 들어오길래 살피는 척 하며 가격표를 봤다. 가격표부터 확인하는 건 가난한 사람들의 오래된 습관이다. 0이 하나 더 붙었나? 다시 봐도 육십만원대였다. 할인되나요? 점원이 답했다. “저희는 노세일 브랜드세요.”
아. 브랜드를 잘 몰라서 내가 비싼 곳에 들어갔구나. 두번째, 세번째, 네번째 매장에서 마음에 드는 걸 집어 들었다. 모두 최소한 40만원이넘었다. 여기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니구나. 일단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내가 살 수 있는 것은 일층의 화장품과 지하의 식품 코너 정도 뿐이었다. 성냥팔이소녀는 차라리 환상을 보지 않는 편이 사는 데 더 나았을 것이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이 비싼 것들을 척척 사는 걸까? 나도 정말 열심히 살았다. 취업도 했다. 그런데 마음에 드는 코트 하나 살 수 없네. 백화점 안을 울면서 걸었다.
이후 그 경험을 말했더니 사람들이 말했다. “백화점 비싼 거 몰랐어? 아울렛에 갔어야지.” 그 말도 일리가 있다. 백화점은 원래 비싸고 아울렛은 좀 더 싸고 시장은 싸다. 형편에 맞춰 사면된다. 이 말은 일견 합리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평균 임금에 비해 물가 자체가 너무 높은 것이 본질적 문제다. 4년제 평균 초봉으로는 명품관 아닌 일반 백화점에서도 겨울 옷 하나 사기 부담스럽다는 것은 부조리하다. 내가 다니는 회사가 있는 광화문 근처 밥집에선 왠만한 식사 가격이 다 1만원대다. 2015년 최저시급은 5580원인데 요즘은 대학가 근처의 식당에서도밥값이 최소 육천원은 한다. 최저임금 받아서는 한 시간 열심히 일해 봤자 밥 한 그릇 먹기 어렵다(심지어 그 최저임금조차 안 지키는 곳도 많다).
고향이 대구인 나는 대학 때 서울에서 한 달에 60만원으로 산 적이있다. 고시원 비 35만원을 내고 나면 25만원으로 학식만 먹고 기본적인 거리는 걸어 다녀도 돈이 모자랐다. 대구에 비해 서울은 유독 눈이 많이 와 길에 쌓였다. 발목 이상 올라오는 신발을 살 수 없으니 눈이 오면 발이 젖은 채로 얼었다. 달라붙은 발가락을 드라이기로 녹여 뗄 때 나는 울지 않았다. 나중에 취업하면 좋은 신발을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백화점에서 코트를 보면서 나는 그 춥던 대학 때의 겨울을 떠올리고 말았고 그래서 서러웠다. 변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돌고 돌아서 다시 여기에 왔구나.
이제 나는 삼십대를 눈앞에 두었다. 친구들이 하나 둘 결혼을 했고, 결혼하지 않은 친구들은 만나면 결혼 이야기를 한다. 그쪽 집안에서는얼마나 해 줄 수 있대? 집은 어디서 구했어? 처음에는 왜 부모님 도움을 받아서 해야만 할까 생각했지만 내가 현실을 모르고 하는 소리였다. 서울 평균 전셋값은 2014년 기준으로 3억을 넘어섰다. 집값이 살인적이니 2014년 평균 결혼 금액은 2억이 넘는다.
그런데 정말 재미있는 것은 이거다. 2014년을 기준으로 4년제 대졸 대기업 취업자의 평균 임봉이 3천 만원대 초반이라는 것. 여긴 대기업이니 보수가 좋은 편이고 2천만원대 연봉을 받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개인이 결혼을 온전히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가? 자립 자체가 어떻게 가능한가? 그래도 결혼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친구들은 운이 좋은 편이다. 아직 취업을 못한 친구들도 있다. 그들은 우리가 하는 이야기를 꿈꾸는 표정으로 듣다가 이렇게 말한다. “난 아마 결혼 못 할 거야.”
한국 사회에선 이제 ‘평균’의 삶 그 자체가 판타지다. 이전에는 평균의 삶이라는 것이 있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하고, 결혼하고, 아이낳고 집을 마련하는 생의 주기. 그런데 임금과 물가의 불균형, 불평등의 심화는 이 모든 것을 고난도의 미션으로 만들어 버렸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 박사가“부가 부를 쌓는 새로운 계급사회인 세습자본주의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말하는 것은 한국 사회에도 맞아 떨어지는 진단이다. ‘조물주보다 건물주가 더 좋다’는 말이나 ‘서민의 유일한 희망은 연예인이 되는 것뿐’이라는 농담은 농담만이 아니다.
평균'만' 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더 말해볼까? 평균 이력서를 만들기 위해 드는 돈을 따져보자. 2014년 평균 대학교 등록금이 666만 7천원이다. 이걸 4년 간 내고, 토익 900점 이상을 만들고, 아, 토익스피킹도 해야 한다. 어학연수는 6개월 이상 다녀오는 것이 기본이고 대외활동을 하고 자격증도 따야한다. 헉헉 수천만원을 들여 이력서를 만들어서 기업에 가져가면 이런 목소리가 들린다. “그건 개나 소나 있는 스펙이야.”“이걸로는 부족해. 스토리가 더 있어야지.” 2012년 청년유니온에서 전국의 4년제 대학졸업자 35명의 이력서를 무작위로 받아 취업 스펙을 채우기 위해 쓴 비용을 조사했더니 대졸자 평균 스펙을 갖추기 위한비용으로 4269만원이 나왔다.
여기에 요즘 ‘평균’이 되려면 연애도 해야 한다. 연애를 못하면 청춘을 낭비하는 이상한 사람 취급 받으니까. 연인과 일주일에 한번만 만나서 하루 종일 같이 있는다고 치면, 최저임금으로 6시간 알바한 삼만원으로 밥 한번 먹고 차 한 번 마시면 땡이다. 모텔 대실은 3만원, 숙박은 8만원, 각종기념일은 때마다 돌아오는데 몇십만원 쓰는 건 우습다. 이런 상황에선 연애 자체가 부담인데 어른들은 청년들이 책임감 없이 썸만 탄다고 한다.
연애, 취업, 결혼과 육아는 이제 청년들에게 대리만족의 영역이 되었다. 그러자 대중매체는 이를 영리하게 이용하기 시작했다. 각종 드라마에 재벌이나 전문직이 계속 나오는 건 사람들이 평소에 못 보는 걸 보고 싶어해서다. tvN에서는 <오늘부터 출근>이란 직장생활 예능을 만들었다. 연예인들이 직장생활을 체험한다는 콘셉트다. 취준생들은 이걸 보며 직장 생활은 이런 걸까 생각할 테다. 청년들은 또 <우리 결혼했어요>를 보며 결혼생활에 나를 대입해본다. 아이도 마찬가지. 최저 출산율을 자랑하는 나라. 아이를 낳아도 들 돈이 걱정, 맞벌이 해도 생활이 빠듯한데 키워줄 사람도 없으니 이젠 자녀가 많다는 건 어느 정도 생활의 여유가 있다는 걸 증명한다. 그러니 아이들은 <수퍼맨이 돌아왔다>와 <아빠 어디가>에서 뛰어놀게 되었다.
자연스러운 생의 주기가 대리만족의 영역이 되어버리는 현실 앞에서 나는 백화점에서 울던 겨울을 생각한다. “결혼할 수 있을까?”라는 친구 질문에 나는 예전에 엄마가 내게 그랬듯 “때가 되면 그런 건 다하게 되어 있어”라고 말할 수 없다. 우리는 이 미친 불평등의 세계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살아, 남을 수는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