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의 초기 정신에서 자화자찬의 미덕을 보다
“얼굴에 큰 문제는 없는데… 살부터 빼보는 게 어때요?” 성형외과에 갔더니 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얼굴에 큰 문제는 없었지만(물론 작은문제는 많다ㅋ) 멘탈에 문제가 많았다. 남자친구와 헤어진 직후 나는 내가 싫어졌다. 손만 잡아도 온 몸이 녹던 남자와 짧은 연애를 끝냈을 땐 생각했다. ‘내가 더 예뻤어도 우리가 헤어졌을까?’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꼭 이유가 있지 않은데도 우리는 이유를 찾고 결론을 내리는데 익숙하다. 그러다 가장 편한 방법으로 스스로를 미워하는 데 생각이 가닿곤 하는 것이다.
“왜 이렇게 피부가 새까매?”
“살을 조금만 더 빼면 좋을 텐데”
“뭘 먹어서 이렇게 키가 작아?”
같은 말을 일상적으로 들어 더 이상 빡치지도 않던 어느 날, 영국에 오래 머무르게 되었다. 당시 나는 대학생이었는데, 23년간 들어온 모든 칭찬보다 영국에서 한 달 동안 들은 칭찬이 더 많았다.
“피부가 탄력있고 건강해보여”
“몸매가 글래머러스하고 아름다워”
“귀엽고 사랑스러워”
이런 말을 듣자 처음에는 놀리나 싶어서 황당했다.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동양인 비하? 칭찬을 들으면 반사적으로 부정을 했다. “아니에요. 너무 까만데” “이건 뚱뚱한 건데요” 같은 대답을 했는데 사람들은 왜 그런 말을 하냐고 황당해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그곳 사람들은 그런 칭찬을 받으면 고개를 으쓱하며 “땡큐”라고 할 뿐이었다. 아하, 찾아보니 나도 꽤 장점이 많았다.
그러나 부정적인 말은 긍정적인 말보다 힘이 세서, 한국에 오자마자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장점을 찾는 일보다 단점을 찾는 일이 몸에 배어 더 쉬웠다. 특히 한국 사람들은 남을 칭찬하는 것도, 스스로를 자랑하는 것도 어색해한다. 겸손이 미덕이라 배웠으니까.
최근 유행하는 힙합 관련 방송 ‘SHOW ME THE MONEY’나 '언프리티 랩스타'를 보면서 나는 그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힙합의 “내가 최고야”하는 허세가 어찌나 좋아 보이는지.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는 지원자들이 심사위원이 하는 말 앞에서 무조건 고개를 푹 숙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심사위원들은 선고를 내리는 의사 같고 형량을 알리는 판사 같았다. 그래서 안쓰러웠다. 못 하는 것만 자꾸 지적해 개성있는 친구들을 무난하게 만드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쇼미더머니' '언프리티 랩스타'에서는 지원자들의 태도가 당찼다. 건방져 보이기까지 할 정도였다. 심사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따지기도 하고, 자기보다 잘하는 사람은 없다고 단언하기도 하는 걸 보면서 처음에는 뭘 믿고 저러나 좀 어이가 없었는데 갈수록 그런 당당함에 매료되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지만 그건 익은 후의 말이다. 우리는 익기도 전에 고개부터 숙여오지 않았나?
허세는 존재감 없는 사람들의 발명품이기도 하다. 가난한 흑인들은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자신을 적극적으로 증명해야 했다. 대부분의 래퍼들이 자신의 이름 앞에 붙여 쓰거나 별명으로 쓰는 MC는 ‘MIC Controller’의 약어로, ‘마이크 지배자’라는 뜻이다. 크라운, 닥터, 킹, 지니어스같은 말들은 모두 자신을 과시해야 살아남던 이런 힙합 정신에서 온 것이다.
힙합 패션 또한 사실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시작된 것이다. 신발이나 티셔츠와 바지를 모두 크게 입는 힙합 패션은 할렘가에 사는 가난한 흑인들이 몸에 딱 맞는 옷을 입을 수 없던 데서 유래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한번 옷을 사면 최대한 오래 입어야 했기에 크고 살찔 것까지 대비해 몸에 맞지 않는 커다란 옷을 샀으니까. 그런데 이것이 문화가 되면서 힙합 패션은 이제 쿨한 자기표현 방식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흑인 작가 제임스 앨런 맥퍼슨의 책 『행동반경』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우리 아빠하고요, 뉴욕에 사는 큰 형이 말했어요. 이 세상에서 무엇이든 갖기 위해서는 자화자찬하는 법을 배워야한다고요.”
“그건 왜지, 리언?”선생님은 지겹다는 듯이 말했어. “왜냐하면요.” 그 작은소년은 제 가슴을 앞으로 내밀면서 말했어.
“왜냐하면 내가 자화자찬하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칭찬해주지 않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