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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문정 Dec 10. 2021

부끄러워 말 못했지만 사실 좋아해요

대구식 납작만두와 삼각만두 

만화가 김보통 씨가 바나나에 대해 쓴 글을 공감하며 읽은 적 있어요. 과일 중에서 바나나를 제일 좋아한다고 했을 때 그의 아버지가 이렇게 말했대요. “세상에 얼마나 많은 과일이 있는데 겨우 바나나가 제일 좋다니. 한심한 녀석.” 그 글을 보다 저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는 걸 떠올렸어요. 


세라 스마시의 책 ‘하틀랜드’에서 밑줄 그은 문장이 함께 기억났죠. “나도 자라면서 가끔 그런 감정을 느낀 적이 있었어. 나한테는 충분히 좋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기에는 너무 부끄러운 게 뭔지 알지.” 


대구출신인 저는 어릴 때부터 삼각만두와 납작만두를 좋아했어요. 타 지역에서는 보기 어려운 메뉴죠. 대구서 제일 큰 시장인 서문시장에는 호떡을 굽는 철판처럼 크고 넓은 팬에 기름을 연신 둘러가며 굽는 삼각만두 가게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어요. 삼각만두는 이름처럼 세모꼴로 생긴 만두인데, 안에 든 게 당면 밖에 없어요. 제가 어릴 때는 2천원에 8개였는데 요즘은 6개를 주는 것 같더라고요. 방금 구워 바삭한 만두에다 간장에 절여진 양파를 하나씩 올려 먹으면 고소하고 짭짤한 맛에 금세 먹어 치우게 되지요. 호떡반죽 안에 설탕 대신 당면을 넣어 튀긴 듯이 구운 후 간장 솔솔 발라 먹는 맛이라고 하면 상상이 되시나요? 


삼각만두처럼 안에 든 재료가 당면 뿐이라는 건 납작만두도 같지만 차이점이 있다면 이건 다른 음식과 곁들여 먹는 경우가 많다는 거예요. 대구식 납작만두는 돌돌 말 수 있을 정도로 피가 얇아서 밀전병같이 보이는 게 특징이죠. 이 얇은 만두는 꾸덕한 떡볶이 국물에 찍어 먹기도 하고 쫄면위에 올려서 싸먹기도 해요. 그중 제가 좋아하는 방식은 얇게 채 썬 양배추를 올려 먹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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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시작된 ‘장우동’이라는 분식집이 있어요. 요즘은 찾기 어렵지만 90년대에는 경상도 사람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였죠. 거기선 떡볶이, 우동과 함께 ‘비빔만두’라는 걸 팔았어요. 초고추장 소스가 뿌려진 양배추가 수북하게 담겨있고 노릇노릇 구워진 납작만두가 한꺼번에 담겨 나온 모습이 어찌나 화사했는지 지금으로 치면 인스타그래머블한 비주얼이었어요. 만두피가 얇으니 각기 떨어지지 않은 상태로 구워져 있어 깻잎김치를 먹을 때처럼 함께 간 사람이 젓가락으로 떼는 걸 도와줘야 했죠. 그렇게 한 장씩 뗀 납작만두 위에 소스를 잘 비빈 양배추를 올리고 양 옆을 접어 먹곤 했어요. 


매일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음식이었지만 좋아한다고 말하기는 좀 민망했어요. 납작만두와 삼각만두는 한국 전쟁 중에 먹을 게 부족해 배급받은 밀가루에 당면만 넣어 먹던 게 시초라고 하는데 이처럼 허기를 달래려 먹던 짝퉁 음식이라는 인식이 있고 특별한 재료랄 게 없으니 향토음식임에도 사람들은 막창이나 따로국밥처럼 대구 대표 음식으로 끼워주길 꺼려했어요. 타지 사람들이 먹어보고 싶다 하더라도 별 거 없다고 말릴 정도였죠. 제가 납작만두나 삼각만두를 먹고 싶다고 할 때 어른들이 퉁명스럽게 말한 적도 여러 번이예요. 


“얘는 아직 맛있는 걸 별로 못 먹어봐서 그래.” “그거 그냥 간장 맛으로 먹는 거지 뭐가 맛있냐?” 어른들 말마따나 먹어본 음식이 많지 않은 건 사실이었으니까 진짜로 그런 것 같기도 했어요. 


제가 중학생이던 때로 기억해요. 대통령 선거공보물이 왔는데 그때는 눈에 보이는 어떤 글자라도 모조리 읽어치우던 시기여서 제법 두툼한 우편물임에도 꼼꼼히 읽고 있었죠. 판사 출신인 이회창 씨의 홍보물 프로필 속 가장 좋아하는 음식에 ‘붕어빵’이라 적혀있더군요. 당시 그는 법관 집안 출신의 엘리트 이미지가 강했기 때문에 서민적인 이미지를 강조하고자 했던 거예요. 그 글자를 읽고 어찌나 당혹스럽던지. 나나 내 주변 사람들 또한 ‘붕어빵’이나 ‘라면’ 같은 음식을 누구보다 자주 먹지만 그런 걸 남에게 좋아한다고 말하기는 어려운데. 나는 그렇게 말할 수 없고 그는 말할 수 있는 차이가 어디서 오는 걸까? 


한참을 생각하다가, 어리고 가난한 이가 저렴한 음식을 좋아한다고 할 땐 사람들이 쉽게 핀잔을 주면서 힘 있는 이가 그런 말을 하면 소박하다면서 호감을 갖는다는 걸 이해했죠. 부자인 사람들은 가난해 보일까봐 조심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진짜로 특별한 사람들은 평범해 보일까봐 걱정하지 않는다는 것도요.


취업을 한 후 비싼 음식을 많이 먹어봤어요. 그동안 소고기는 국물 속에 들어있는 것만 먹어봤는데 불판에 구운 걸 큼직하게 잘라서 히말라야 소금에 찍어 먹어봤고요. 미쉐린 가이드에서 별점 받은 레스토랑을 도장깨기 하듯 들르던 시기도 있었네요. 요즘은 시들해졌지만요. 메뉴판에서 음식을 고를 때 뭐가 제일 싼가부터 생각하지 않은지 오래 되었어요. 


그럼에도 여전히 저는 대구에 갈 때마다 납작만두나 삼각만두를 꼭 사먹어요. 이제는 그게 맛있단 말을 하더라도 저에게 핀잔주는 사람이 없지요. 그런 면에서는 어른이 되는 게 참 편리한 일이에요.


한국 소설가 중 박완서 작가를 제일 좋아한다고 했을 때도 어떤 선배가 말했었죠. “네가 아직 진짜로 좋은 소설이 뭔지 몰라서 그래.” 그런 식의 말에 얼굴이 홧홧해진 적 있지만 이제는 알아요. 남들이 좋다고 말하는 게 뭔지 찾아다녀본 후 결국 내가 가졌던 마음이 옳았음을 알게 된다 해도 억울할 필요가 없다는 걸. 


나의 취향과 다른 사람의 인정 가운데 혼란스러워하면서도 직접 겪어본 뒤에라야 말할 수 있는 것이 분명히 있으며 이 같은 확장 후에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단단함이 생겨나는 게 바로 내공이라 불리는 기운이니까요. 


한편, 어떤 취향을 말했을 때 상대가 나를 평가하는 말하기를 한다면 그건 그의 편견을 증명하는 문제이지 내가 부끄러워할 문제는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됐어요. 


바나나를 제일 좋아한다고 했다가 바보 같다고 핀잔을 들었다는 김보통 씨도 이후 다양한 과일을 먹어본 뒤 이렇게 확신했다고 해요. “먹어볼 만큼 먹어봤어도 내겐 바나나가 제일이었어!” 




배달의 민족 뉴스레터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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