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배달의민족 뉴스레터에 음식 에세이를 쓰고 있습니다. 이야기하고 싶은 음식이 계속 떠오르는 게 아니겠어요? 남편에게 말했죠. “이걸 계기로 내가 먹는 데 엄청 진심이라는 걸 알았어.” 그랬더니 남편이 답하더군요. “그걸 이제 알았어? 너는 먹는 거랑 관련된 원칙이 많잖아.” 우리는 계속 말을 이어갔죠.
“내가? 예를 들면?”
“너는 사람들이랑 밥 먹을 때 절대 전화 안 받아.”
“내가 구급대원도 아니고 식사 도중에 통화할 만큼 급한 용건은 없지. 다 먹고 콜 백 하면 되는걸.”
“그리고 너는 아무리 화나도 일단 밥부터 먹자고 해.”
“그럼 그럼. 일단 밥부터 먹고 생각해야지.”
‘일단 밥부터 먹자’는 제가 거의 매일 하는 말입니다. 전에 회사 다닐 때도 자주 외쳤죠. 정시 퇴근을 하는 사람들에게 “난 틀렸어, 먼저 가”하고 인사한 뒤 저녁 7:30쯤 되면 사무실에 남아 있는 사람들 사이 좌절과 체념의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합니다. 그즈음 제가 먼저 외칠 때가 많았어요. “우리 밥부터 먹고 해요. 뭐 드실래요?” 그러면 보통 두 가지 반응이 옵니다. “저는 그냥 빨리 끝내고 집에 갈래요” 또는 “그래요. 시킵시다.”
도시락이나 햄버거를 시킬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함께 나눠 먹을 수 있는 메뉴를 시켰어요. 자장면이나 짬뽕 하나씩을 시키고 탕수육 대자를 추가하는 중식은 기본이고 보쌈 족발 반반도 종종 먹었죠. 이젠 회사를 안 다니니 3~4인분이 기본 값인 보쌈이나 족발을 시킬 일이 없네요.
그중에서도 스트레스로 머리가 부글부글 끓을 때 자주 떠오른 건 떡볶이였어요. 오늘 야근 -> 열 받아 -> 떡볶이를 조지자(그러나 언제나 조져지는 건 나였다...),라고 뇌가 프로그래밍되어 버린 것 같았어요. 매운 걸 잘 못 먹는 사람들을 위해서 순한 맛 하나, 매운맛 하나씩을 시키고 튀김과 순대도 넉넉히 주문했죠. 기름에 흠뻑 젖은 종이봉투를 살살 뜯어 펼친 뒤 수북하게 쌓여있는 김말이, 만두튀김, 고추튀김, 오징어튀김을 두고 꾸덕한 떡볶이 소스에 하나씩 찍어 먹는 그 순간만은 단순하게 즐거웠어요. “오늘따라 더 매운데요?” 같은 말을 하며 평소에는 건강 생각해 잘 마시지 않는 콜라와 쿨피스를 벌컥벌컥 마셨죠.
원치 않았던 구성원이 모여 있지만 슬프지만은 않았던 시간. 이처럼 법카 찬스를 써서 함께 저녁을 먹을 땐 정해진 인당 식비를 넘기지 않는 것 외에도 지켜야 할 룰이 있습니다. Now or Never. 호불호 있는 메뉴가 있다면 논의 과정 초기에 말해야 합니다. 가만히 있다가 여론이 형성되어 시키기 직전 뒤늦게 ‘아 저는 그거 별론데...’ 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아도 바쁜 이들의 시간과 인내심을 빼앗거든요. 특정인이 사는 게 아니니 메뉴 선정이 자본주의 논리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요. 먹고 싶은 음식이나 먹기 싫은 음식이 있다면 처음부터 분명히 알려야 하는 게 야근 맞이 식사 과정에서 요구되는 보편적 상식이었죠.
끝내 말하지 않고 있다가 먹고 있는 도중 이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분위기가 싸해져요. “사실은 이거 먹기 싫었는데.” 그럼 미리 말하지 그랬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하곤 합니다. “근데 저 빼고 다들 좋아하시는 것 같아서….” 아…. 기독교식 주례사에 이런 멘트가 있지요. “여기 모인 분들에게 묻건대, 이 두 사람이 법적으로 결혼하지 못할 이유를 아는 분이 있으면 지금 말씀해 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침묵하시기 바랍니다.” 음식 주문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 입장을 밝히거나, 기분 좋게 먹기 중에서 하나만 할 것.
이 같은 원칙은 일에서도 적용됩니다. 회사에서는 1) 기획 2) 실행 3) 검수 4) 최종 결과물이 나오는 과정이 반복되는데 일을 잘하는 사람은 초기 단계에 집중하고 일을 못하는 사람은 3단계에 와서 입장을 번복합니다. 3단계 이후 수정은 자잘해야 하는데 아예 1단계로 돌아가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기획안을 보여주거나 중간에 보고했을 때는 별말 없다가 최종본을 가져갔을 때 방향성을 뒤흔드는 요구를 하는 리더가 있으면 담당자는 혼이 나가죠. ‘사실 처음부터 이 기획 마음에 안 들었다’는 식의 멘트를 덧붙이기까지 하면 그야말로 혼돈의 카오스를 맞이하지요.
도대체 왜 저럴까 답답했는데 제가 리더가 되어 보고 알았습니다. 실무를 잘 모르는 사람이 그 과정에 드는 노고를 예측 못하거나 쉽게 여기면 결과물을 보고서야 말을 보탠다는 걸요. 무슨 일을 하든 초기 단계에서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보고 모르면 알 때까지 질문하며 가능한 서면으로 피드백 주고받아 기록 남기기. 괴로워도 보고 괴롭혀도 보면서 체득한 태도입니다.
한편, 야근하는 게 서글프니 회사에서 사주는 밥이라도 먹으려고 꼬박꼬박 챙기며 제 안에 씩씩함이 많이 자라난 것 같아요. 다들 모니터 앞에서 미간을 찡그리고 있다가도 배달원이 오면 공기 흐름이 바뀌어요. 건네받은 봉지를 든 누군가가 회의실로 들어가며 소리치죠. “밥 왔어요. 식사부터 하세요.” 음식을 세팅하면 폴폴 흘러나오는 냄새에 이끌려 사람들이 기지개를 켜며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나고, 아직 앉아 있는 이의 자리로 가서 “다 먹고살자고 하는 거 아닙니까? 빨랑 오세요”하며 잡아끌죠. 그렇게 둘러앉아 서로 왜 야근하고 있냐고 묻고 다음에 시켜볼 음식 이야기도 하는 (먹으면서 먹는 이야기하는 건 국룰이잖아요), 그 별 거 아닌 시간 덕에 힘내서 남은 일을 마무리할 수 있었어요. 재택근무가 활성화되고 코로나로 인한 여러 제한으로 인해 이런 풍경은 이제 많이 사라진 것 같지만요. 물론 당연히 야근은 안 하는 게 좋고요.
그러고 보니 저는 정말 음식에 진심인 사람이 맞았어요. 여럿이 밥을 먹고 있을 땐 전화받지 않는다. 힘들어도 일단 밥은 먹는다. 메뉴를 고를 땐 입장을 빨리 밝힌다, 같은 원칙을 소중히 여기니까요. 저처럼 먹는 데 진심이던 교수님이 해준 이야기가 생각나요. 대학교 3학년이던 어느 날, 교수실 안에서 저는 눈물보다 부지런히 흐르는 콧물을 휴지로 틀어막으며 울고 있었어요. 앞이 안 보이는 상황이 답답하다고 하자 교수님이 여러 조언을 해주셨는데 그 내용은 기억 안 나고 마지막으로 들은 이야기만 선명해요.
“일단 밥 먹으러 나가자.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말해봐. 너, 먹고 싶은 건 항시 있어야 한다. 먹고 싶은 게 있는 거 자체가 살고 싶다는 거니까. 그럼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