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디가 아프신가요
<터틀넥프레스>라는 출판사를 새로 연 대표의 인터뷰를 읽었다. 나는 이곳에서 출간한 책 『기획하는 일, 만드는 일』을 흥미롭게 보고서 한동안 콘텐츠 업계 종사자를 만날 때 추천했기에 반가워서 정독을 했다.
왜 ‘거북목’이라는 이름을 택했냐는 질문에 김보희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책 좋아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거북목이라서라고. 유유 뉴스레터 인터뷰에 따르면 제목이 지어진 과정은 대략 이러한 과정이었다고 한다.
대표: 출판사 이름을 뭐로 할까요? (이런저런 엉뚱한 이름들이 나오다가 잠시 침묵이 흐름)
작가: 해외에 ‘커피스테인 coffee stain’이라는 독립영화 스튜디오가 있는데요. 스태프들이 커피를 마시며 아이디어 회의를 많이 하니까 테이블 위에 커피 자국이 많이 생겼는데, 그걸 특징으로 잡아서 이름을 만들었대요. 그런 거 있을까요? 책 만드는 사람들의 공통점. 으음… 거북목?
대표: 괜찮은데요? 책 좋아하는 사람들도 거북목이 많으니까. 터틀…넥?! 재밌다!
책을 좋아하거나 만드는 사람 중 거북목이 많다는 데서 출판사 이름을 착안했단 부분에서 실소했다. 한 편집자와 파주출판단지 내를 산책하던 중 그가 길가에 있는 고양이 동상을 가리킨 적 있다. 파란색 원피스를 입은 고양이가 서있었는데 미간을 찡그렸고 유독 자라처럼 고개를 앞으로 쑤욱 빼고 있었다. 파주 출판사를 다니는 이들 사이에서 이 동상은 ‘편집자 고양이’로 불린다고 했다. 거북목이고 에코백을 메고 있는데 그 안에 든 짐이 많고 파주나 합정역 근처를 배회하고 있으면 높은 확률로 편집자일 거란 농담을 나눈 기억이 떠올랐다.
<터틀넥프레스> 네이밍의 탄생 비화를 보며 내 나이 또래 여성들의 공통점이라 할 수 있는 건 뭘까 생각해 봤다. 마흔이 가까워진, 마흔이 된 사람들의 공통점은 뭘까? 결혼? 출산?
통계청의 ‘2023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2023년 기준 30대 여성의 비혼 비율은 56.6퍼센트이고 유자녀 비율은 31.8%에 불과하다. 40대 여성의 비혼 비율은 48.9퍼센트이고 자녀가 있는 비율은 35.6%라고 하니 결혼이나 출산은 더 이상 30대나 40대 여성의 공통점이라 할 수 없다.
특히 서울의 합계출산율은 올해 들어 0.59명이라는 충격적 기록을 세웠다. 내가 태어난 해인 1986년에는 한국에서 63만 명 정도가 태어났는데 작년에는 약 28만 명이 태어났다. 그런 수치를 볼 것도 없이 주변만 봐도 결혼을 하지 않은 친구들이 절반 정도 된다. 결혼을 했더라도 아이를 낳지 않는 경우도 꽤 많다. 아니, 오히려 요즘은 비출산이 시대의 흐름이고 주류같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또래 친구들을 만나면 대화의 소재가 저마다 확연히 달라진다. 이십 대 초반에 친구들과 연애 이야기를 주로 했다면 삼십 대 초반에는 회사 이야기를 했다. 처음 하는 연애거나 처음 다니는 회사였기 때문에 너무 잘하고 싶어서 그만큼 절실했고 무리했고 서툴러 실수를 남발했기에 이야기거리가 많았다. 이해되지 않는 일들 때문에 오래 토론하곤 했다.
그토록 뜨거웠던 마음이 지나가고 연애에도 일에도 익숙해진 마흔의 나이에 닿은 지금, 결혼 유무와 자녀 유무와 업무 형태가 저마다 달라지며 서로 조심해야 하는 주제도 달라졌다.
이십 대 후반에서 삼십 대 초반까지만 해도 월급을 받는 일을 한다는 공통점은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딱히 그렇지 않다. 여전히 회사에 다니는 친구도 있지만 자기 사업을 시작한 친구도 있고 새롭게 시험을 준비하는 친구도 있고 육아휴직 중인 친구도 있고 나처럼 프리랜서인 친구도 있어서 일의 양태가 너무나 다양해졌다.
결혼하지 않은 친구를 만날 때는 주로 일에 대해 이야기한다. 부모님 이야기도 단골 소재다. 결혼하지 않은 80년대생 여성이면서 경제력이 있는 경우, 여기저기 크게 아프기 시작한 노년의 부모님이 본인에게 기대는 경우가 많다. 또는 부모님이 결혼에 대한 압박을 여전히 하는 등 간섭하므로 자주 충돌하기도 쉽다.
결혼을 했으나 아이가 없는 친구를 만날 때는 주로 취미생활이나 자기 계발이나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맞벌이를 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경제력이 있고 시간적 여유도 많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배우거나 여행을 가는데 관심 있는 경우가 많아서다.
우리는 이제 학교에 가면 매일 얼굴을 볼 수 있던 십 대가 아니고 체력과 시간이 많던 이십 대도 아니어서 몇 달 전부터 미리 약속을 잡고 시간을 낱개로 쪼개어 만나곤 한다. 한정된 시간을 충실히 사용하려고 서로의 관심사를 고려하는 것이다. 나 또한 아이가 없을 때는 자녀 이야기에 맞장구쳐주는 것이 속으로 지루했으니까.
요즘 들어 어떤 상황의 친구를 만나든지 가장 편하게 대화 소재가 되는 것은 딱 두 개뿐이다.
통증과 운동.
비혼인 친구 한 명과 결혼 했으나 아이가 없는 친구 한 명을 함께 만난 적 있다. 우리는 세 시간 동안 서로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와 그 때문에 무슨 운동을 하고 있는지를 이야기했는데 번호표를 뽑아서 순서를 정해야 할 정도로 열성적이었다.
나는 어깨와 목의 통증이 심해져서 근력을 키워보려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들을 만나기 직전에는 원인을 알 수 없는 고열과 인후통으로 일주일을 내리 앓았다(확신을 가지고 코로나와 독감 검사를 했는데 음성이었다). 이틀 동안 열이 39도를 찍고 겨울 점퍼를 꺼내 입어도 덜덜 떨리는 오한 때문에 공포스러웠다. 온몸에 물집이 생기는 대상포진을 앓는 주기도 점점 짧아지고 있다.
친구 A는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지는 걸 보고 놀라서 엉엉 울었다고 했다. 두피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정수리를 의사에게 보여줬더니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 나타난 신경성 탈모로 보이니 하루라도 빨리 휴직을 하시라는 권유를 받았다고. 그는 퇴사 후 요가를 하면서 마음을 다스리는 중이다.
친구 B는 최근 진단받은 당뇨 때문에 식단을 관리하고 있었다. 젊은 당뇨병 환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기사는 보았지만 그게 자기 일이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해 충격이 컸다. 업무가 과중하고 야근이 많아서 식사를 제대로 챙기지 못했던 그는 배달음식을 자주 먹었고 퇴근 후엔 술을 마시고 잠들었다. 술과 밀가루를 끊고 매일 달리기를 하게 되자 몸은 전보다 건강해졌지만 우울감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친구는 말했다.
친구 A와 B가 대학생일 때부터 봐왔기에 그들이 왜 아픈지 알 것만 같았다. A는 어떤 일을 하든 120%를 해야 직성이 풀린다. “너밖에 없다”는 말을 들으며 일할 때 쾌감을 느끼기에 기본적으로 무리하는 것이 습관이다. 그의 정신력과 일하는 태도는 사회초년생 시절과 여전히 비슷하지만 이제는 체력이 달라졌다. 몸이 그런 정신의 온도를 더는 따라가지 못하니 통증을 통해 SOS를 치는 것 아닐까? B는 전부터 스트레스를 먹는 걸로 풀곤 했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단 음식을 찾았고 과식과 과음을 했다. 그것이 차곡차곡 누적되다가 어느 순간 빵 터져버렸을 수도.
한의원과 도수치료 병원과 추천 영양제 같은 주제가 줄줄이 이어지다가 헤어질 시간이 되자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멋쩍게 웃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아픈 얘기만 했네.” 또 다른 친구가 공감하며 말했다. “요즘 그렇지 않아? 나 요즘 누굴 만나든 대화가 이쪽으로만 가고 있어.”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이런 주제로 이야기하는 건 이제 본격 시작인 거 같은데. 우리 슬슬 결과를 받아 드는 나이가 됐잖아.”
십 대의 육체에서는 행위의 인과 관계를 찾기 어렵다. 이십 대도 마찬가지다. 운동을 꾸준히 하는 이나 그렇지 않은 이나 겉으로 봐선 큰 차이가 없다. 전날 잠을 자지 않아도 하루쯤은 버틸 수 있다. 술을 마셔도 다음날까지 숙취에 오래 시달리지 않으니 매일 술을 마셔도 끄덕 없다고 자신만만한 경우가 많다. 불량식품이나 탄산음료를 매일 먹어도 혈당에 문제가 아직 나타나지 않는다.
이때는 내가 한 행동이 결과로 돌아오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려서, 마치 원인만 존재하는 세계처럼 보이기도 한다. 때문에 이십대까지는 다른 사람을 자주 부러워하게 되는 것 같다.
많이 먹는 것 같은데 살찌지 않는 체질인 친구가 부럽고, 키 큰 친구가 부럽고, 삶은 달걀을 까놓은 듯 피부가 매끈한 친구가 부럽기만 하다. 그때 반짝거리는 몸들은 모두 그가 노력 없이 받은 것으로 보일 때가 많다. 좋은 걸 가지려면 애초에 좋은 운을 타고나야 하는 것 말고는, 그러니까 다시 태어나는 것 말고는 별 수가 없어 보인다.
삼십 대를 넘어서면서 몸은 그간 보내지 않은 것까지 몰아서 청구서를 보내기 시작한다. 이제는 행동으로 인한 결과가 지체 없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전날 야식을 먹으면 다음날까지 소화가 되지 않고 전날 술을 마시거나 잠을 자지 않으면 다음날 컨디션이 엉망이다. 원래부터 살찌지 않는 체질이라고 자신했던 친구들조차 배가 나오기 시작한다. 몸매나 체력을 과신했던 이들보다 꾸준히 관리해온 이들이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래서 건강하고 탄탄한 사람을 보면 전과 달리 비결이 궁금해진다. 그건 오래된 습관의 결과일 테니까. 이제는 누군가의 성취를 볼 때 “대단하다” “좋겠다” 대신 “(하느라) 힘들었겠다”라고 자주 생각하게 된다. 누군가의 결과를 볼 때 재능 뒤에 있는 지난한 훈련이 보인다.
그건 내가 딱히 겸손해져서라기보다는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하면서인 것 같다. 전날 몸을 함부로 쓰면 다음날 탈이 나는, 이유가 뭘까 곰곰히 생각해보면 짚이는 게 있는, 보다 확연해진 세계로 옮겨오면서.
타고난 것만으로는 유지되지 않는게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꾸준하게 관리해야 겨우 멀쩡해 보일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인생이 생각보다 더 긴 싸움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나는 할 수 있는 것만 하고 할 수 있는 데까지만 하려고 노력한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무리하지 않으려 애를 쓴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또 뒷목이 뻐근하고 욱신거린다. 어서 마무리하고 운동을 하러 가야지. 그래야 내일 또다시 쓸 수 있을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