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문정 Nov 09. 2023

위로의 말을 꺼내려다 입 안으로 삼켜버리는 순간

위로 못하는 사람의 위로


누군가를 축하하는 일은 너무 쉽다. 위로하는 일에 비하면.


칭찬하거나 축하하는 말을 메시지로 쓸 때는 이모티콘을 남발하고 느낌표를 수십 개 쓰면서 격앙된 마음을 재빨리 전달하면 된다. 반면 위로하는 이야기를 할 때는 요리조리 머리를 굴려보지만 모두 시원찮게 느껴져 답답할 때가 많다. 글 쓰고 말하는 일을 한답시고 돌아다니는 주제에 위로를 이 정도로 밖에 못하나 스스로가 한심스러울 때도 있다.


요즘 들어 주변에 들리는 소식은 또 왜 그렇게 암울하기만 한 것인지. 삼십대에는 결혼이나 이직이나 승진이나 출산처럼 축하할 일이 많았는데 사십대부턴 안타까운 소식이 서서히 많아지는 것 같다. 가족과의 불화, 퇴사, 조부모의 부고, 각종 질병 등등.  


최근 가까이 지내는 친구에게서 축 쳐진 메시지를 받았다. 그에게는 오래 염원하고 시도하던 일이 있었고 나도 그걸 지켜보며 응원해 왔다. 나이 제한 때문에 올해가 마지막이라 여기고 절실했지만 또 실패로 돌아갔다는 내용이었다. 급히 전화를 걸었는데 목소리가 잠겨 있는 것이 꽤 오래 울었던 것 같았다.


다음이 분명 또 있을 거라고, 몸이 상하니까 일단 밥을 꼭 챙겨 먹으라고 말을 하고 나서 전화를 끊었다. 잠시 후 토닥이는 글을 추가로 더 남기면 좋겠다 싶어 다시 휴대폰을 들었는데 말한 것 외에 더 좋은 표현이 떠오르지도 않았거니와 힘주어 써본 메시지가 다 뻔하기만 해서 고심한 것들을 모두 지워버렸다.


내가 가진 위로의 말이 왜 이렇게 빈약할까 한탄하던 중이어서였을까. 주말에 간 숲길에 알록달록 단풍이 물든 걸 보며 감탄하던 뒤라서일까. 잊고 있었던, 십 년도 더 넘은 실연이 불현듯 생각났다.



사진: Unsplash의Towfiqu barbhuiya



스물여덟 살의 가을, 나는 등산화도 없이 주말마다 전국의 명산을 오르고 있었다. 산에 갑작스러운 취미가 생겨서 그런 것은 아니었고 그저 도망치던 중이었다. “걔 말고도 세상에 남자 많다”는 말이 지겨워서 피신하던 참이었다.


그해 여름, 열렬히 사랑했던 남자에게 일방적으로 이별 통보를 받으면서 나는 배신감에 휩싸여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아직도 헤어진 이유를 모른다). 사귀는 내내 상공에 있던 만큼 헤어진 뒤에는 안전장치 없이 나락으로 데굴데굴 굴러 떨어진 느낌이었다. 퇴근 뒤 집에 갈 때는 눈물이 자꾸 나서 버스를 못 타고 휴지를 양손에 둘둘 말아 들고 걸어야 했다.


그 사람을 어떻게 잊어야 하는지, 지금이라도 붙잡아야 하는 건지 모르겠어서 주변에 묻고 다녔다. 너무 불안해 보였는지 사람들이 말해 주었다. 어떻게 하든 네 선택이지만 너무 절절매지 말라고. 지금은 그 사람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지만 세상 일이 그렇지가 않다고.


그때 “세상에 남자 많아”라는 말을 수십 번 들었다. 당시에는 그 말이 너무 매정하게 들렸다. 세상에 남자야 많겠지만 내가 원하는 남자는 한 명뿐이므로 전형적으로 뭉툭한 일반론이라 여겨졌다. 애정 없는 말이라고 서운함을 느낄 때도 있었다.  


이제 그만 좀 하자고 마음을 다잡아갈 무렵 ‘템플스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1박 2일 동안 명상을 하고 108배를 하고 스님과 차담을 하는 것이 주요 프로그램 내용이었다.


새벽에 일어나 절 내에 울려 퍼지는 종소리를 듣고 새벽 공기를 맡으면 복잡한 잡념들이 사라지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추천의 말을 듣고 서울 근교의 절부터 시도해 보았는데 스케줄에 맞춰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절을 하고 산책을 하다 보니 거리감이 생겨서 내가 자꾸 멀어지고 작아졌다.


별 것 아닌 내가 하는 거니까 고민도 별 것 아닌 게 되어서 좋았다. 대부분의 괴로움이 실제보다 더 크게 보여서, 그 때문에 압도되어서 우리는 자주 괴로워지니까.  


절마다 밥맛만큼이나 프로그램도 달라서 여기저기 체험해 보는 재미도 있었다. 고양시에 있는 흥국사로 시작한 템플스테이 투어는 강릉의 현덕사, 평창의 월정사, 양양의 낙산사, 강화도의 전등사, 남양주의 봉선사, 고창의 선운사 등으로 쭉 이어졌다.


템플스테이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과 다음엔 어디를 가볼 거냐는 이야기를 하다가 전북 김제시에 있는 금산사를 알게 되었다. 문화 체험을 통해 마음을 치유한다는 기조 아래 명창의 소리와 피리 연주 같은 걸 함께 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해서 혹했다. 그곳엔 콘서트를 처음 시작한 스님이 계신데 불자들 사이 굉장한 존경을 받고 있다고 했다.


‘내비도’라는 이름처럼 금산사의 프로그램은 역시나 독특했다. 스님과 뮤지션이 함께 하는 토크콘서트에 참석하는 것 외엔 별다른 프로그램이 없었다. 108배 같은 것이나 묵주 꿰기 같은 것도 하지 말고 실컷 쉬라고만 했다. 절에서 키우는 강아지를 한참 만지고 개울이 흐르는 물가에 발도 담그고 경내를 산책하다가 시간을 맞추어 법당에 다소곳하게 앉았다.


감색의 가사를 걸치고 정좌한 모습으로 앉아 있던 스님은 과연 눈빛부터 형형했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두라는 ‘내비도 정신’에 대해 한참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다. 피리 소리를 듣다가 저 멀리 종이 보이다가, 개가 짖다가, 시골 특유의 나무 타는 냄새가 코를 찔러오던, 유독 홀린 듯이 몽롱하던 가을밤이었다.


콘서트의 기운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해서였을까. 모든 공연이 끝나고 사람들이 밖으로 나갔다. 나는 자리를 뜨지 못하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법당 내에 그 스님과 나만 둘이 남게 되었고 그가 가까이 와서는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마음이 들킨 같아 어쩐지 부끄러워지게 만드는 눈빛이었다. 이글거리는 아우라를 가지고 있지만 무섭게 느껴지지는 않는 스님이 질문해왔다. “왜, 뭐 힘든 거 있어?”


나는 기다렸다는 듯 주절주절 맺혀 있던 이야기를 했다. 이보다 깊이 마음을 줄 수는 없을 거라 믿은 남자와 갑자기 헤어졌다고. 처음에는 그에 대한 미움이 컸는데 이제는 나에 대한 미움으로 옮겨지고 있다고. 자기혐오의 밤이 이어져 괴롭다고.


스님은 내 이야기를 중간에 끊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가만히 들었다. 그러게 내가 아까 다 내비두라고 한 말을 제대로 안 들은 거냐고 호통치지 않고 끝까지 들었다.


“하고 싶은 말 다 했어?” 그렇다고 말하는 내 눈에서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걸 본 뒤 스님은 양팔을 꼭 잡고 격려하듯 툭툭 쳤다. 그 후 그는 힘주어 이렇게 말했다.


“울지 마라. 세상에 남자 많-다.”


웃음이 나왔다. 지겹다고 느꼈던 이 말이, 그동안 영혼 없다고 느꼈던 이 말이, 그 스님의 입에서 나오자 전혀 다른 의미로 들렸다. 그때 무언가 탁 하고 내 안에서 떨어져 나가는 소리를 들은 것도 같다. 귀한 말씀을 들려주셔서 감사하다고 꾸벅 깊숙이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그게 왜 그렇게 다르게 들렸을까? 당시에는 메시지보다 메신저의 힘이 훨씬 크기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다. 메신저의 카리스마가, 권위가 크니까 뻔한 메시지도 그럴싸하게 들리는 거라고. 누군가에게 힘 있는 말을 하고 싶으면 힘 있는 사람이 먼저 되어야겠다고 다짐도 했었다. 그리고선, 완전히 잊고 있었다.


스님과의 일화를 뒤늦게 찬찬히 회상해 보니 당시에 내가 미처 못 본 게 번뜩 떠올랐다. 그건 단순히 메신저의 아우라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말이 그렇게나 폐부를 찔렀던 이유는 일단 내 마음이 변했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충분하다고, 이로써 그만해야겠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던 시기여서 그러했다. 같은 위로의 말을 듣더라도 내 마음이 충분한 애도의 시간을 겪지 못했을 때는 튕겨내 버리다 마침내 흡수의 준비가 되었을 때 살며시 내려앉았다.


그러니 함께 기억할 건 위로의 말이 닿는 데는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방울이 바위를 뚫듯이, 진눈깨비에서 시작한 눈이 새벽 내내 쏟아져 발이 푹 잠기듯이. 누구 한 명이 회심의 한마디를 탁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여기저기 비슷한 말의 타일을 하나씩 붙여주는 게 유용하다.


결론이 거기까지 다다르자 아까 너무 진부하다고 지워버린 글자를 한 자 한 자 다시 써 보내기로 했다.


“힘내. 이번이 절대 끝이 아니라고 믿어. 기운 차리고 조금만 쉬었다 다시 해보자. 응원할게. 언제든 필요하면 또 연락해.”


핵심은 디테일한 표현력에 있는 게 아니고 비루한 표현이라도 쌓이고 쌓여 언젠가 연결되길 바라는 간절함에 있으니까. 위로는 어떻게 조언하느냐보다 얼마나 집중해서 들어주느냐에 있으니까. 그것만 된다면, 그렇다면, 뻔해도 충분히 괜찮으니까.






<마흔여자탐구생활> 연재 기간 동안 함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이 주제로의 브런치스토리 연재는 우선 10화를 마지막으로 잠시 중단하고, 

말과 글에 관한 다음책 마감에 집중하다가 추후에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자주 행복하시길 빕니다. 


감사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