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를 위해 무엇부터 포기할까
일하는 여성을 위한 토크콘서트에 연사로 서게 된 날이었다. 전날부터 아이가 기침을 하고 콧물을 흘리기 시작했는데 그동안의 경험으로 미루어보아 하루 이틀 내로 열이 오를 것이 분명해 보였다. 내일 유치원에 못 가게 되면 스케줄을 어떻게 조정할 수 있을까 생각하느라 아침부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일단은 9시에 아이를 유치원으로 보내고 강의를 하러 갔다. 제발 빨리 데리러 오라고 전화만 오지 마라…. 되뇌면서. 평일 낮에 가장 겁나는 것은 발신자 명으로 유치원 이름이 떠있는 전화가 오는 것이다. 아이가 아프니 오셔야 할 것 같다는 다급한 목소리의 전화를 받으면 다리 힘이 탁 풀리면서 이마가 뜨거워진다.
강의실은 북촌에 있었는데 원래도 고풍스럽고 아름다운 한옥과 나지막한 건물들, 돌담길이 가을날이라 더욱 반짝거려 보였다. 그러나 그걸 만끽할 여유가 없어 제대로 구경하지 못하고 허겁지겁 걸었다. 머릿속 잡념과는 상관없이 강의를 무사히 마쳤는데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참가자가 손을 들고 이런 질문을 했다.
“저는 일과 육아, 살림 이 세 가지 사이에서 항상 허덕여요.
이걸 어떻게 다 잘할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작가님은 저와 달리 엄청 잘하고 계실 것 같은데 비결이 뭔가요?”
오늘 아이가 아파서 실은 저도 백 프로 집중을 하지 못하고 있었어요,라는 말은 마음으로만 삭였다. 이런 질문을 남자에게는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와이프가 아이를 키우면서 일을 하더라도 남자는 이런 고민을 하지 않는다. “요즘 내가 일하느라 아이에게 집중을 별로 못해서 죄책감이 들어” “살림을 너무 놔버려서 큰일이야” 같은 말을 한 번도 못 들어보았다. 이런 질문은 오로지 여자만이 한다. 나는 질문자의 눈을 보며 답했다.
“제가 다 잘할 것처럼 보이신다고 했는데 실은 전혀 그렇지 않아요.
누구라도 모든 걸 완벽하게 할 수 없어요.
다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일하는 엄마들이 자꾸 스스로를 미워하고 자책하고 무리하게 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질문을 바꿔야 해요.
‘어떻게 하면 모두 다 잘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이 중에서 어떤 걸 좀 내려놓을까(덜 할까)’ 또는 '어떻게 하는 게 더 효율적일까'로 말이죠.
전 살림은 거의 안 해요. 육아할 때도 하원 후에 책 읽어주고 놀아주는 것만 겨우 하고요.
반찬은 다 사 먹여요. 이유식 같은 건 한 번도 해준 적 없고요.
우선순위를 세워서 무엇부터 포기할까 결정하는 것도 용기이고 결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말을 하고 내 과거 사례를 덧붙였다. 우리 부부는 결혼 후 삼 년 간 아이가 없었다. 결혼식을 올리기 직전에 파트장으로 승진했던 나는 회사에 다니며 시간을 따로 내어 글을 썼다. 새벽 네시, 아직 남편이 곤히 잠들어 있을 때 일어나 거실로 나와 노트북을 펼쳤다. 일곱 시쯤 남편이 일어나서 욕실로 들어가는 소리가 들리면 그때부터 나도 출근 준비를 했다. 그렇게 쓴 글을 묶어 나온 책이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이다.
여기까지 말하면 사람들은 내가 부지런하다고 놀라곤 하는데 그건 내가 글쓰기와 직장생활, 가정생활을 완벽하게 꾸려나간 결과가 아니다. 나는 그 생활에서 일과 글쓰기를 택했다. 반대로 말하면, 그 결과로 신혼부부가 평일 저녁에 누리는 낭만적인 시간 대부분을 포기했다.
아이 없이 결혼 생활을 하는 삼 년 동안, 우리 부부는 평일 저녁 식사를 거의 함께 하지 않았다. 김밥을 먹거나 샌드위치를 먹거나 회사 근처에서 밥을 사 먹었다. 집에서 식사를 하게 되면 뭘 요리할까 고민하는 과정, 조리하는 과정, 뒷정리하는 과정을 합쳐 한 시간 넘게 쓰게 되는데 그게 너무 아까웠다. 퇴근 후 집에 오면 내 몸 씻는 일 딱 하나만 하고 열 시 전에 잠들었다. 그래야 네시에 일어날 수 있으니까. 텔레비전도 일부러 사지 않았다. 아침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평일에는 원피스만 입었다.
둘이서 가사노동을 어떻게 하면 평등하게 할 수 있을까 논의하지도 않았다. 공평하게 일을 나누려면 그것을 처음에 구분해둬야 할 뿐 아니라 분담이 잘 되고 있는지를 감독하는 사람 한 명 있어야 하는데 (분명 그건 내가 하게 될 테고), 그걸 매사 확인하고 누락이 있으면 상대에게 정중하게 요청하는 것조차 에너지가 들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가사 노동을 평등하게 하기보다 둘 다 가사 노동을 최대한 하지 않는 방향으로 정했다.
결혼하면서 로봇청소기, 식기세척기, 스타일러 같이 가사노동을 줄여주는 가전을 우선적으로 산 뒤 남는 돈에 맞춰 나머지를 샀다. 로봇청소기를 매일 정해진 시간에 돌아가게 하면 딱히 청소를 따로 할 필요가 없었다(라고 생각하며 청결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었다). 빨래는 모아 두었다가 토요일에 한 번만 했다. 내가 빨래를 개고 있으면 남편은 화장실 청소를 하는 식으로 함께 하는 주말 중 하루만 몰아서 가사노동을 했다. 아이가 없으니 어지럽히는 사람도 없었으므로 그 정도만 해도 충분했다. 부부 둘이서만 생활할 때는 살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기억이 없다.
중요한 일의 우선순위를 매길 때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기준은 다음과 같다.
1)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인가? (대체 불가능성)
2)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인가? (자발성, 목적성)
3) 수익이 나거나, 당장은 아니어도 크게 보아 투자라고 볼 수 있는 일인가? (경제성)
이 기준에 따르면 살림은 나에게 대체 가능하고, 요리를 뺀 나머지는 비자발적이며, 경제적이지도 않기 때문에 내려놓았다. 아이를 낳은 후부터는 화장실 포함 대청소를 해주시는 청소 도우미를 이주에 한번 오시게 한다. 한 번에 6만 원이니 한 달에 12만 원이 나가지만 그 정도는 합리적이라 생각한다. 깨끗하게 청소하는 것은 어렵지만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에 이모님이 가시고 나면 다시 오실 때까지 매일 로봇청소기를 돌려놓기만 한다. 잡동사니가 많으면 지저분해 보이므로 소품이나 장난감은 거의 사지 않는다. 이제 주말에 한번 빨래를 돌리는 걸로는 감당이 안 되어 건조기도 새로 샀다. 아이 옷은 사이즈 고민을 하지 않기 위해서 한 브랜드에서만 사고 코디하는 시간조차 아끼기 위해 세트로만 산다. 육아에 있어서도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일만 한다. 책 읽어주기, 놀아주기, 병간호 같은 것 외에는 거의 시간을 내지 못한다.
가수 이적의 어머니로, 세 아들을 모두 서울대로 보낸 것으로도 유명한 여성학자 박혜란은 결혼 전 기자로 일을 하다 출산과 육아로 그만두었다. 아이를 키우던 중 사십 대에 대학원에 입학하여 늦깎이 공부를 한다. 그녀는 아이들에게 공부하라는 말을 하는 대신 자신이 직접 공부했다. “엄마는 너무 바빠서 너희들을 일일이 챙겨줄 수 없다. 알아서 커라”라고 말했다는 일화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가 쓴 책을 너무 오래전에 읽어서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데 이런 이야기를 본 게 남아있다. 어떤 이가 자신의 집에 잠시 방문해야 할 일이 있어 “집이 너무나 더러우니 염두에 두라”라고 했더니 상대가 대수롭지 않게 “아이 키우는 집이 뭐 다 그렇지요” 하더란다. 그러던 상대가 박혜란 씨의 집을 실제로 보곤 멈칫하다가 표정관리를 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 집 아이들은 상상력이 뛰어나겠어요.” 그건 최대한의 예의를 차린 말이었고 대부분은 당연스럽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곧 이사 가시나 봐요?”
나는 아이가 하나뿐이라 그 정도로 집이 어지럽혀질 일은 없지만, 이 에피소드를 떠올리면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다. 일(공부)도, 살림도, 육아도 완벽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타인의 성취를 보고 다 이루었다고 부러워하지만, 어떤 반짝임 뒤에는 그걸 위해 포기했던 취약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걸 인정하고 자신의 체력과 시간과 목표와 상황에 맞추어 영점을 계속 조정할 필요가 있다.
불가능한 기준을 세우면 스스로가 미워질 수밖에 없으므로 가혹한 기준을 세워서는 안 된다. 나까지 나를 몰아세우지 않는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갑작스러운 일이 생겼을 때 수습할 수 있도록 약간의 여유를 항상 남겨두어야 한다. 어떤 것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어떤 것은 적당히 타협하고 체념하면서. 그리고, 떠나온 것들에 대해서는 너무 자주 뒤돌아보지 않도록 주의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