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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문정 Jan 23. 2017

빨간머리 앤, 낭만적 소녀의 섬

캐나다 P.E.I로 앤을 찾아나선 여행  

아, 매슈 아저씨, 아름다운 아침이죠?  
마치 하나님이 보고 즐기려고 만들어 놓은 세상 같아요.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빨강머리 앤’의 원제는 ‘녹색지붕의 앤’(Anne of Green Gables)입니다. 절망하더라도 기대하기를 멈추지 않고 일상에 의미를 부여하며 생을 즐기는 어여쁜 캐릭터 앤, 그녀를 사랑해 영어 이름과 세례명마저 Anne으로 지은 나는 오랫동안 품어온 내 로망의 녹색지붕을 만나러 갔습니다. 그 애가 “마치 하느님이 즐기려고 만들어 놓은 세계 같아요” 라고 표현해버렸으니, 어떻게 가지 않을 도리 있을까요.     


빨간머리앤 마을을 간다고 말하고 다니면서도 스스로 실감이 나지 않았고, 비행기 티켓을 프린트하고도 비현실적이어서 멍한 심정이었습니다. 정말로 내가 가는 건가? 너무 좋아하는 것을 생각할때면 심장이 바이킹을 탈 때처럼 쑤욱 내려앉는 기분이 되곤 하는데 그때도 그런 마음이었습니다. 캐나다 밴쿠버 공항에서 토론토행 비행기를 타고, 다시 에어캐나다의 PEI 샬롯타운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PEI는 서울과 정확히 12시간의 시차가 납니다. 공항에 도착할마다 시차가 계속 바뀌었습니다.      


pei 공항

비행장에 도착해 제일 먼저 본 것은 빨간색 노란색 보라색의 잘 정돈된 꽃밭이었는데, 처음보는 경치이면서도 역시 이곳의 비행장답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샬롯타운은 작은 시골 섬도시입니다. 샬롯타운으로 향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오랫동안 떠돌다가 돌아가는 자신의 원래 공간같이 자연스러워 보였고, 나는 이방인으로서 처음 발을 디디는 곳이었지만 소박한 풍경에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나는 수하물을 찾는 곳에 서서 그 위에 달린 티브이로 빨간머리앤의 뮤지컬 영상을 쳐다보았습니다. 나를 찾아내줄 숙소의 사장님은 아직 오시지 않았습니다. 숙소에 전화를 걸었더니, 곧 도착한다는 대답이 들려왔습니다. “그런데 저를 어떻게 알아보시나요?” 제가 묻자 전화기 속 목소리가 크게 웃었습니다. “걱정마요. 지금 공항에는 동양인이 아가씨 말곤 없을 테니까요.”      



100년 전 그대로의 마을, 샬롯타운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의 그림같은 풍경


공항을 빠져 나왔습니다. 숙소는 PEI의 시내인 샬롯타운에 있었는데 차 밖으로 20여분 동안 보이는 경치는 앤이 매슈 아저씨의 마차를 타고 왜 숨이 멎을 것 같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는지를 실감하게 했습니다. PEI는 캐나다 동부 세인트 로렌스만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 섬은 바다에 뜬 요람이라는 뜻의 ‘아베그웨이트’라고 불렸대요. 한국 제주도의 3배 정도 크기라고 하는데 온통 붉은 언덕의 해변이 펼쳐집니다.


앤이 매슈 아저씨에게 이 흙은 왜 이렇게 빨간가요? 라고 물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여기가 정말로 앤의 마을이 맞다는 생각에 웃었습니다. 붉은 흙과 붉은 자갈이 끝없이 펼쳐지고 땅과 하늘이 맞닿아있습니다. 보라색의 옥수수 모양의 꽃 루피너스가 흔들립니다. 곳곳에 쓰여진 표지들은 옛날식의 오래된 시골 표현이고요.    


샬롯타운의 한 교회


샬롯타운으로 들어가니 교회의 종소리가 울리고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어리둥절해졌습니다. 그곳은 섬 전체가 빨강머리 앤이 살던 100년 전 그대로의 동화였습니다.      


이곳의 주도인 샬롯타운은 하루 만에 걸어서다닐 수 있는 아담한 도시입니다. 첫날에는 샬롯타운 워너프론트의 관광 안내 센터를 들러 자료를 확인하면 좋아요. 여기선 어딜 가나 앤을 만날 수 있는데, 여름이면 컨페더레이션 아트센터에서 매년 공연하는 <빨강머리 앤> 뮤지컬도 볼 수 있어요. 아트센터 뒤에는 앤 오브 그린 게이블스 스토어가 있어 빨강머리 앤에 관한 모든 물품을 구경할 수 있고요.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었습니다. 책상 위에 노트북과 빨간머리 앤 책과 캐나다 여행 책 한 권을 올려둡니다. 충동적으로 온 혼자만의 여행, 유명여행지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정보, 밴쿠버에서 PEI로 올 때 예상보다 너무 비싼 비행기 값 때문에 줄어든 예산 같은 걱정으로 불안하기도 하지만 저는 어쨌든20시간의 비행 시간을 거쳐 12시간 차이가 나는 이곳 빨간머리앤의 섬에 와있습니다. 아까 샬롯타운을 지나며 보니까 빨간머리앤이 그려진 라즈베리 음료수에, 빨간머리 앤이 그려진 초콜릿이 있었는데 내일 꼭 사먹어야지 생각합니다. 세상은 거대하지만 내가 행복을 느끼는 실체는 이런 소소한 것에 있습니다.      


샬롯타운의 거리에선 앤이 그려진 상품을 자주 만날 수 있다


영원한 소녀, 그린게이블즈 빨간머리 앤의 집      


그린게이블스


사실 루시 모드 몽고메리는 열 권이 넘는 앤 연대기를 썼습니다. 앤이 소녀에서 성숙한 처녀와 어머니로 성장하고 세상을 떠나고 남은 사람들이 그를 회상하는 것까지 기록된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이 대부분 알고 있는 앤은 일본 후지 TV에서 제작하고 다카하타 이사오가 연출한 애니메이션 속의 소녀죠. 감독이 애니메이션 제작 전 이 녹색 지붕집을 찾아 모델로 하면서, 그린게이블스 헤리타지플레이스는 앤이 살았을 상상의 공간이 되었습니다.      


그린게이블즈는 실제로는 루시모드몽고메리의 조부모가 살던 곳으로 몽고메리 여사가 결혼하기 전까지 살았던 곳입니다. 이곳은 이제 앤의 초록지붕집 안에는 앤의 방 뿐 아니라 마릴라 아주머니의 방, 매슈 아저씨의 방이 조성돼 있습니다. 집 뒤에는 유령의 숲과 환희의 길도 있고요. 그린게이블즈 안에 들어 갔더니 마릴라 아주머니 분장을 한 분이 뜨개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인사를 했더니 부엌 찬장의 라즈베리 주스를 가리키며 다이애나가 마시고 취했던 술이라고 설명해줍니다.      


그린게이블스 앤의 방


이층에 있는 앤의 방에는 민트색 커튼이 쳐져있고 꽃무니 벽지가 있는 러블리한 소녀의 방의 전형입니다. 하얀색 침대 위에는 앤이 입었던 검소한 옷이 놓여있고 의자 위에는 성경이, 아, 왼쪽 옷장에 앤이 그렇게나 입고 싶어하던 퍼프소매의 붉은 비로도 원피스가 걸려 있어요.      


저는 앤이 예쁜 옷을 입고 싶어할 때 마음이 아팠고, 매슈 아저씨가 앤을 위해 옷을 맞춰 줄 때 사랑스러워서 어쩔 줄 몰랐습니다. 몽고메리 여사는 실제로도 패션에도 관심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앤이 그토록 옷에 대한 불만을 자주 이야기 하고, 또 이후에 아름다운 옷을 입을 때마다 그 장면을 자세히 설명하는 것이겠지요.   


마차가 다니는 Lake of shing water

그린 게이블스 박물관으로 이동했습니다. 루시 모드 몽고메리가 결혼식을 올렸고, 몽고메리의 다른 소설 <Pat of Silver Bush>의 배경이 된 이 곳에는 다른 어떤 뮤지엄보다 작가에 대한 많은 자료가 있습니다. 고풍스러운 웨딩드레스와 케이크도 준비해주기 때문에 낭만적인 결혼을 원하는 커플의 결혼식 장소로도 인기가 높죠. 매튜 아저씨가 태워줄 법한 마차를 타고 빛나는 호수(Lake of shing water)를 지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심지어 길에서 여우와 마주쳤습니다.



조금 더 차를 타고 이동하면 캐번디시 기프트숍에 도착하는데, 여기서는 앤 소품을 직접 착용하고 사진을 찍으면서 진짜 앤이 되어볼 수 있으니 만약 이곳에 가게 된다면  꼭 한번 체험해보시길 바랍니다.



기프트숍을 나와 앤이 낡은 가방을 떨어지지 않는 자기만의 방법으로 들고서 매슈 아저씨를 기다렸을 기차역으로 갔습니다. 켄싱턴역은 프린스에드워드 섬에서 이제는 더 이상 기차가 오지 않는 곳입니다. 현재는 역사와 철도, 기차만 있지요. 앤이 이곳에서 앉아 자기를 데리러 올 사람을 상상하고, 자신의 인생이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 것인지 떠올리고 있을 표정을 떠올려보면 매슈 아저씨가그런 앤을 발견하고 “우리가 찾던 사람은 여자아이가 아닌데”하는 말을 끝내 할 수 없었던 것이 그가 유독 숫기 없어서는 아니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pei의 켄싱턴역

인생에는 모퉁이가 있기 마련


Green Gables Post Office


몽고메리 여사가 처녀 시절 할아버지를 도와서 일하던 우체국으로 갔습니다. 몽고메리 여사는 여기서 근무하던 시절 우체국 타자기로 원고를 만들어서 스스로 우표를 붙이고 소인을 찍어 출판사로 보냈다고 합니다. 이 우체국은 현재 우체국 겸 박물관으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이곳에서 편지를 써서 한국으로 보내면 빨간머리앤 도장이 찍힙니다. 저는 앤 엽서를 사서 편지를 쓰고 앤 도장을 꾸욱 찍어서 당신에게 보냈습니다.      


'베이징과 밴쿠버, 토론토를 지나 프린스에드워드아일랜드(PEI)에 와서 지내고 있습니다. 공항에서마다 휴대폰을 켜면 시간이 변했어요. 한국과는 am과 pm이 뒤바뀌는 곳에서 저의 로망과 만나는 날들입니다. 몽고메리 여사가 태어난 곳에 가고 그녀가 남편을 만난 교회에 가고 무덤에 가서 기도도 했어요. 최고로 고대하던 빨강머리앤의 녹색지붕집 앞에서는 너무 흥분해서 뛰어가다가 엎어졌지만… 앤처럼 양갈래 머리를 땋았더니 마주치는 사람마다 말을 걸어 주네요. 앤이 걸었을 법한 연인의 길을 걷고 또 걸어요. 이미 많이 본 책을 여기서 읽고 또 읽고요.

앤은 세상은 내 맘대로 되지 않아서 재미있는 거라고 가르쳐주었어요. 인생에는 모퉁이가 있기 마련이어서 둘러가더라도 목적지만 잊지 않으면 된다고도요. 절망하더라도 기대하기를 멈추지 않겠어요. 이곳에서의 로망을 담아 한국으로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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