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정문정 Aug 20. 2017

망할 놈을 만나도 멋진 모험


“너랑 나랑 2인실을 쓰면 돼. 물론 침대는 따로 쓰고.”

런던에서 출발한 버스가 스코틀랜드 에딘버러에 도착하기 직전, 함께 가던 오빠가 말했다. 숙소는 어디냐는 질문에 그가 한 대답이었다. ‘이게 무슨 개소리야?’ 

대학 때 간 첫 해외여행지는 런던이었다. 꼭 한번은 해외로 나가보고 싶어 돈을 모았지만 한 시간에 3500원 버는 알바로는 생활비만 대기에도 빠듯했다. 좌절하던 차에 어학연수 중인 선배 언니가 런던에 오면 재워주겠다고 제안했다. 숙박비만 줄어도 어마어마한 돈이 절약된다. 빈말이었으면 어떡하지? 너무 실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지만 애써 무시했다. 염치나 예의 같이 인격에서 좋은 것 대부분은 지갑에서 나오는 것 같다. 

대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 특가로 비행기 왕복 티켓을 사고 남은 백만원 정도를 들고 런던으로 떠났다. 스콘으로만 배를 때워도, 무료인 미술관 위주로만 돌아다녔어도 행복했다. 선배 언니의 옆방에도 유학 중인 한국인 남성이 살고 있었는데 덩치가 크고 땀을 뻘뻘 흘렸다. 그가 런던 외에는 어딜 가려는지 묻기에, 2주 후 열리는 스코틀랜드 에딘버러 페스티벌에 가려고 한다고 했더니 그는 자기도 거길 갈 생각이었다며 반색했다. 하는 김에 버스와 숙소를 같이 예약하겠다며 정산은 그 후에 하자기에 고맙다고 했다. 그렇게 떠난 버스 안에서 그가 그렇게 말한 것이다. 미리 말했으면 내가 따로 숙소를 예약했을 거라고 항의하자 그는 침대를 따로 쓰는데 뭐가 문제냐며, 영국 여자였다면 아무 상관없어했을 거라고 나를 오픈 마인드 없고 예민한 여자 취급을 했다. 

지금 같았으면 쌍욕을 해줬을 텐데 그땐 쫄보여서 “죄송하지만 안 되겠어요”하고 헤어졌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숙소를 구하러 갔다. 극성수기라 빈 방이 남았을 리 없었다. 열 곳 넘게 돌았지만 마찬가지였다. 어쩐지 일이 잘 풀린다 했는데 내가 그럼 그렇지. 대구 촌년이 외국 구경 한 번 하겠다고 주제넘게 설친 대가구나. 울면서 길을 걸었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울고만 있을 수는 없다. 

일단 행사장으로 가 프린지 공연을 보고 에딘버러 성 구경을 하고 저녁이 되어서 역으로 향했다. 노숙할 생각이었다. 밤새 읽으려고 가져온 책을 꺼내는데 두 명의 여성의 말을 걸었다. “저기, 한국인이시죠?” 내가 들고 있는 책을 보고 한국인인 줄 알았다며 길을 묻기에 답해주었다. 그들이 고맙다고 인사하고 내 숙소는 어디냐고 물었다. 1박 2일로 온 건데 숙소 예약에 문제가 생겨 오늘 밤은 역에 있을 거라고 했더니 안타까워하며 놀라운 제안을 했다. 자기들이 묶는 숙소가 3인실인데 침대 하나가 비어있다고, 공짜로 재워 줄 테니 가자는 거였다. 말도 안돼! 내게 이런 행운이 올 리 없었다. 분수에 맞지 않는 해외여행을 왔다가 지금 이 꼴이고... 원래 좀 재수가 없고... 하지만 지금보다 더 나빠질 수가 있나?

고민 끝에 따라간 숙소는 넓고 깨끗했다. 땀에 범벅된 
몸을 씻고 나오니 언니들이 와인과 치즈를 꺼내 주었다. 둘은 30대 초반으로 서울에서 광고회사에 다니는 중이며, 휴가를 받아 여행 왔다고 했다. 그날 처음 본 사람들에게 가족들에게도 못해본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역에서 혼자 자려고 했던 이유부터 이야기 하다가, 그런데 어쩐지 그럴 것 같았던 것, 불행에 익숙한 것, 자존심은 센데 자격지심이 많아서 인간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대학을 졸업하면 글 쓰고 살고 싶은데 아마 안 될 것 같다는 말 같은 걸 두서없이 했다. 

언니들이 해준 이야기는 완벽했다. 20대 초반 대학생에게 30대 초반의 직장인 여성은 대단한 어른으로 보인다. 그 시기 듣고 싶었던 말을 어른들에게 넘치게 들은 밤이었다. ‘너는 지금 용기 있는 여행을 하고 있어’ ‘대단하다’ ‘넌 할 수 있을 거야’ 같이 포근한 격려들. 그때 내 안에 불씨 같은 것이 피어난 걸 느꼈다. 그날 밤엔 설레서 잠이 안 왔다. 아침이 되었다. 한국에선 사람들 눈치 보느라 한 번도 못 입었던 민소매 원피스를 카디건 없이 입었다. 언니들 전화번호를 적은 메모지를 가방에 넣고 숙소를 나섰다. ‘언니들 말이 맞았다는 걸 보여줘야지.’ 한국에선 한 번도 못해본 생각도 했다. ‘나 어쩌면 운 좋은 사람인 것 같아.’

그날 이후 나는 새로운 것이라면 덮어놓고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 종종 혼자 여행을 갔고, 서울에 가서 기자 일을 시작했다. 광고 회사에 취재를 간 날, 문득 언니들 기억이 나서 전화했는데 받지 않았다. 아마 오래 되어 전화번호가 바뀌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날 내 마음 안에 생긴 인간에 대한 신뢰, 자신에 대한 긍정 같은 것들은 바뀌지 않고 그대로 남았다. 불행을 인생에서 채워야 하는 할당량처럼 여기던 습관도 사라졌다. 나는 이제 대단하게만 봤던 '어른'의 나이가 되었다. 
영향을 쑥쑥 흡수하던 나이에서 어느덧 영향을 주는 나이가 되어 생각한다. 망하더라도 모험을 멈추지 말자. 어떤 행운을 만날지 모르니. 살면서 스쳐지나는 사람들에게도 최대한 따스하게 대해줘야지. 좋은 마음을 던지면 어딘가 떠돌다가 우연히 마주칠 수도 있으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가 서로를 구하는 힘, 공감능력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브런치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