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려면 아름다운 말들로 부적을 만들어 지니는 거야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3월을 기다리며 나는 들떠 있었다. 그전부터 뭔가를 하고 싶어하면 어른들이 항상 말했으니까. “그런 건 대학에 가면 다 할 수 있어.” 이 말이 틀렸다는 걸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대학에 가서 달라진 거라곤 마음대로 술을 마실 수 있게 된 정도?
스무 살이 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기회와 자유가 생긴다고 했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어차피 돈이 없어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라고 들어왔는데 정작 아무것도 될 수 없을 듯해 두려웠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언가를 경험한다는 건 그와 관련된 상품을 소비한다는 말이기도 하니, 다들 그렇게나 권장해 마지않는 연애도 여행도 어학연수도 토익 공부도 결국 돈이 있어야 되는 것이다. 그놈의 돈, 돈, 돈.
돈 벌며 학교에 다니고 스펙도 쌓으려면 비교적 덜 중요한 것을 포기해야 했다. 가난하면 포기에 익숙해지기 때문에 수면 시간과 새 옷 같은 건 포기해도 괜찮았다. 동아리 가입을 포기했고 ‘과 생활’이라 불리는 학과 선후배 모임에도 나가지 않았다. 한번 술자리를 가지면 몇만 원은 우습게 깨지는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그 큰돈을 척척 내는지 의아했다.
그때 나는 세상에 화가 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쉽게 가지는 것처럼 보이는 걸 나는 죽어라 노력해야 가질 수 있어서 화가 났고, “넌 너무 팍팍해 보여. 좀 마음에 여유를 갖고 살아봐”같이 상황도 모르면서 지적하는 사람들에게 화가 나 있었다.
나는 글이 쓰고 싶었다. 당장 등단을 하지 못하더라도 계속해서 글 쓰는 일을 하고 싶었다. 글쓰기 연습을 하면서 돈도 벌려면 기자가 되는 게 최선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어른들 눈에 나는 세상물정 모르는 이상주의자였다.
어른들은 충고했다. 물론 그들의 충고에도 일리가 없는 건 아니었다. 어떤 면에서는 사실에 근거한 말이기도 했으니까. “지방에서 대학 나와 기자가 되긴 어려워” “기자 준비하려면 돈이 얼마나 많이 드는지 아니?” “어차피 여자는 최종 면접에서 떨어져” “그저 공무원이나 선생님 하는 게 최고야” 등등.
그런 말들을 듣다보니 정말로 그렇게 느껴졌다. 그 말들은 ‘현실적 조언’과 ‘선의’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교묘하고 치밀하게 반복되었다. 나는 자주 부끄럽고 비참해졌다.
대학원은 돈이 많이 든다는 소리에 일찌감치 포기했지만 글쓰기는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내 주제에 무슨……’ 같은 생각이 문득문득 들었지만 그것만은 정말이지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우왕좌왕하던 나를 잡아준 건 한 수업에서 교수님이 해준 말씀이었다. 그분은 내가 수업 때 과제로 제출했던 에세이를 가져와 사람들 앞에서 읽어주었다. 다 읽은 후 글이 참 좋다, 하더니 “네 글에는 사람 마음을 두드리는 뭔가가 있어.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쓰렴.” 하고 덧붙였다.
찰칵, 그 말은 사진처럼 찍혀서 오래 남았다. 사라질세라 그 순간을 잡아 마음에 담고 단단히 꿰매었다. 그건 한동안 부적이 되어 부정적인 말들로부터 나를 지켜주었다.
그 말의 효력이 약해질 때쯤 부적으로 삼았던 또다른 말은 소설가 김연수의 「비에도 지지 말고 바람에도 지지 말고」라는 단편소설 속 문장들이었다. 고아원 출신인 태식은 돈을 벌어 검정고시를 본 뒤에 언젠가는 대학에 꼭 갈 거라고 다짐하며 친구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도 다시는 체력 단련 끝나고 〈캔디〉 같은 노래 부르지 마라. 애꿎은 사람 눈물 흘리게 하지 말란 말이라. 매 맞는 거 참는 거는 노예들이나 하는 짓이다. 참고 참고 또 참지 말고 니가 원하는 사람이 돼라. 니가 원하는 대로 꼭 과학자 돼라. 나도 내가 원하는 대로 꼭 과학자 될 끼다. 그래갖꼬 담임한테 매 안 맞고도 훌륭한 사람 될 수 있다 카는 거를 보여줘야 한다.
스무 살이 되면 주변의 어른부터, 심지어 한 살 터울의 선배들까지 ‘현실을 가르쳐준다’며 이런저런 충고를 시작할 것이다. 그럴 때 함부로 포기하면 안 된다. “그래 가지고 사회생활 하겠어?” “다른 사람들도 다 이렇게 살아” 같은 말을 진짜로 믿어버리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그러니 듣고 싶은 말들을 최대한 수집하기를.
어른이 된다는 건 자신만의 관점을 가지고 그에 어울리는 선택을 해나가는 일인데, 이 레이스는 너무 혹독해서 처음에는 호기롭게 시작했어도 어느새 남들 사이에 묻혀 편하게 갈 궁리를 하게 된다. 둘러가더라도 목적지는 잊지 않으려면 언젠가 한번쯤 들었던 호의의 말, 진짜라고 믿고 싶은 말을 눈에 띄는 곳에 두어야 한다.
긍정의 말들로 채워진 부적을 많이 지닌 사람들에겐 자기 선택을 믿는 일이 한결 쉬우니까. 말의 부적을 많이 챙겨 효험을 본 뒤에는 다음에 출발할 후배들에게도 말의 부적을 아낌없이 나눠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