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정문정 Jun 09. 2020

울지 않고 돈에 대해 말하기

돈 크라이 : 돈이 나를 울게 한다


Photo by laura adai on Unsplash


‘돈 워리, 돈 크라이’를 내 맘대로 해석하면 이렇다. 


‘돈 때문에 걱정이고 돈 때문에 우네.’


감옥 독방만한 사이즈의 방에 누워 ‘여기서 죽으면 얼마 만에 발견될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생활비를 벌며 대학에 다니느라 그 시기 가장 많이 했던 말 중 하나가 “시간이 없어”였다. 


돈 없는 대신 유일한 자산인 몸으로 버티느라 에너지 음료를 많이 마셨다. 그때 저당잡힌 체력을 아직도 못 찾아왔는데 아마 영원히 못 찾을 것 같다.


회사에서 자리잡고 4년제 대학 출신의 평균 연봉 이상을 받게 되면서 문득문득 억울했다. 돈 있는 사람들은 이렇게 먹고 싶은 게 있으면 그냥 먹었겠구나. 가격부터 보지 않고. 돈 있는 사람들은 이렇게 배우고 싶은 게 있으면 그냥 배웠겠구나. 돈을 어떻게 마련할지부터 고민하지 않고. 


나는 이제야 이런 세상의 초입에 들어서 두리번거리는 중인데 어떤 이들은 자연스럽게 누리고 살고 있구나. 그래서 그들이 나에게 자주 질문했구나. 


‘넌 왜 그렇게 열심히 살아?’라고. 그건 칭찬이 아니라 의아함이었구나.


돈 때문에 전전긍긍하던 시기를 지나니 전보다 객관적으로 상황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이 돈을 좋아하는 진짜 이유는 자유와 용기를 주기 때문이다. 싫은 걸 덜 할 수 있는 자유. 싫은 건 싫다고 말할 용기. 


돈이 생겨서 좋은 부분은 돈에 대해 생각하는 일이 확연히 줄어들었다는 거였다. 일상의 제약이 옅어졌다. 간당간당한 잔고를 외우고 있지 않아도 되니까.


돈이 없을 때나 생기기 시작했을 때나 갈팡질팡한 건 마찬가지였다. 원하면서도 미워하니 불화할 수밖에. 돈을 많이 벌고 싶으면서도 돈에 얽매이고 싶지 않은 마음. 부자를 부러워하면서도 별것 아니라고 무시하고 싶은 마음. 돈이 중요하다 생각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라는 걸 아는 마음. 그러다가도, 그게 다는 아니라도 어쩌면, 상당 부분이 아닐까 의심하는 마음.




Photo by MChe Lee on Unsplash



이중적인 마음을 가진 채 돈에 관해 이야기하기 민망해하는 동안 어떻게 돈을 잘 써야 하는지, 받아야 하는 돈은 어떻게 요구하는지를 못 배우고 직장인이 됐다. 돈이 절실하면서도 “그래서 비용은 얼마인가요?” “더 주셔야 할 것 같아요” “비용이 안 맞아서 진행이 어려울 것 같아요” 같은 말을 입 밖에 내기 어려워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나만 그런 건 아니었다.


<뉴스페이퍼>가 문학계 불공정 관행을 취재한 2020년의 기사 중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A 시인에 의하면 원고료 지급 기한은 출판사마다 다르지만, 통상적으로 책이 출간되어 집에 책이 도착하는 날쯤이다. A 시인은 “보통 도서 도착 후 하루이틀 사이에 고료가 입금된다. 그렇지 않을 때는 그냥 ‘들어오겠지’ 하고 기다린다”는 말로 먼저 원고료 이야기를 꺼내기 어려운 작가들의 사정을 설명했다. 문학계에서 금액을 언급하는 일은 무례하거나 천박한 일로 치부당하곤 했다.     

지급할 돈에 관해 먼저 명확히 말해주지 않는 게 무례한 일인데도 반대로 여기는 경우가 더 많다. 어릴 적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었는데, 그때도 밀린 월급 이야기를 어렵게 꺼내면 사장은 어린애가 돈을 밝힌다고 했다. 그로부터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이런 분위기가 사라지지 않은 것 같다. 


원고 청탁이나 강의 요청을 하는 메일을 받아보면, 처음부터 비용을 언급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가능할지 알려주면 추후에 비용을 논의하겠다는 곳이 대부분이고(아니 비용을 알아야 가능한지 아닌지 알려주지요), 비용을 물어보면 ‘실례가 될까봐 비용을 먼저 말하지 않았다’는 곳도 많았다(그게 더 실례라고요……). 다들 돈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듯 행동했다. 


이런 분위기가 관행인 게 싫었다. 다른 사람에게 부탁할 일이 있으면 돈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챙기려 노력했다. 콘텐츠 의뢰나 협업 요청을 할 때 꼭 처음부터 비용과 지급 일정을 알려주었다. 


타인에게 어떤 일을 부탁할 때는 처음부터 비용을 알려주기, 내가 부탁을 받을 때는 민망해하지 않고 비용을 물어보기. 기본이자 상식이 되어야 하는 일이다. 현실적으로 인턴 등 경력이 짧은 사람이 먼저 말을 꺼내기는 어려우니 돈이 급하지 않을수록, 불이익 걱정이 덜한 선배일수록 더 적극적으로 말해야 한다. 


가끔 ‘쿠션어’ 없이 “비용은 얼마인가요?” 하고 물어보면 상대가 화들짝 놀라는 것이 느껴진다. 진행은 하고 싶지만 비용이 적어서 하기 힘들면 ‘개인적인 사정으로 어렵다’는 식으로 뭉뚱그려 거절하지 않고 비용이 맞지 않는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자꾸만 비용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고 요구해야 불합리한 업계 관행이 바뀔 수 있고 임금 현실화에 도움이 된다.


돈에 대해 말하는 것이 속물처럼 보일까봐 검열하는 동안 돈은 너무 많이 오해받았다. 정당하게 지급받을 대가에 대해서라면 떳떳해지자. 자립한 어른으로 나를 지탱해주는 돈의 엄중함에 대하여 말하자. 내 힘으로 돈을 벌어 나와 주변을 책임지는 일상, 그것보다 더 큰 어른의 일이 어디 있을까. 


정확한 대가를 요구하고 더 많은 경제적 여유를 얻어서 자유로워지기를 꿈꿔야 한다. 돈 때문에 하는 일과, 꼭 돈이 아니더라도 하는 일부터 정확히 구분해야 삶에 질서가 생긴다. 자유로운 사람이 되기 위한 이야기를 하는 데 부동산이나 주식 같은 재테크 정보만 필요한 건 아니다. 


일단 우리, 울지 않고 정확하게 돈에 대해 말하는 연습부터 하자. 이것부터 해결해야 다음 스텝으로 넘어갈 수 있다.



이전 05화 이유 없이 싫어하는 것에는 상처가 묻어있다
brunch book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더 좋은 곳으로 가자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