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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문정 Mar 18. 2021

아이 앞에선 다정하게 오지랖을 부려야지

정인아 미안해

  

출처 : 연합뉴스



한 기사를 접하고 난 뒤 나는 거의 앓아누웠다. 일주일 가량 책을 읽지도 글을 쓰지도 못했고 눈을 감으면 한 아기의 얼굴이 어른거렸다. 어떤 뉴스는 도저히 잊히지 않고 더는 이렇게 살 수 없다고 진저리 치게 만들다가 끝내 세상을 보는 관점을 바꿔 놓곤 한다.


충격을 받은 건 2020년 10월에 벌어진 ‘양천구 정인이 학대 사망 사건’이 때문이었다. 16개월의 여아가 교통사고를 당해야 가능한 수준이라는 상처를 입고 응급실에 들어왔는데 양모 장하영은 아이가 집에서 놀다 떨어진 것이라 변명했다. 더 놀라운 건 아이 몸에 이미 전부터 여러 번 발생된 장기 파열과 골절이 있었다는 거였다.   

   

잔혹한 상황에 분노한 이가 나뿐 아니어서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경찰청장은 대국민 사과를 했고 대통령은 재발방지 대책을 지시했으며 양부모를 엄벌에 처해달라는 탄원서가 법원에 쌓였다. 이 여파로 학대 신고가 들어간 즉시 수사하는 것을 의무로 하고 현장 조사 인력과 권한을 늘리는 것을 골자로 하는 ‘정인이 법(아동학대 범죄 처벌 특례법 개정안)’이 2021년 1월 통과되었다.      


정인이 관련 뉴스를 볼 때마다 뜨거운 줄 모르고 마신 물에 식도가 데인 듯했다. 엄마가 되고 보니 그맘때 아이 모습이 구체적으로 다가와 원통함이 짙고 컸다.


정인이는 사망 당시 16개월 된 아기였고 내게는 그와 생년월일이 한 달 차이나는 아기가 있다. 그맘때 아이들은 잠시도 쉬지 않고 움직인다. 앉혀 놓으면 서려하고 서있게 두면 부리나케 여기저기 뛰논다. 예방접종을 하러 갔을 때 의사에게 그게 당황스럽다고 했더니 선생님은 웃었다. “애들은 원래 그래요. 안 그러면 병원 데려오셔야 돼요.”      


사망 전날 찍힌 어린이집 CCTV 속에서 아이는 내내 미동 없었다. 고개만 간신히 돌리던 뒷모습. 또 아기는 원래 자주 운다. 말을 못 하니까 우는 걸로 불편함을 표현할 수밖에. 믿는 대상 앞에서는 더 크게 울곤 하기에 놀다 넘어졌을 땐 다가오는 엄마를 본 뒤부터 입을 삐죽거리는 모습이 흔하다.     

 

어린이집 CCTV 속에서 정인이는 고통으로 온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애써 울음을 참고 있었다. 한 인터뷰에서 법의학자가 말했다. 부러진 뼈 때문에 울면 더 아파서 울 수도 없었을 거라고. 양모는 정인이가 평소 잘 울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다. 아마 안 울면 얄밉다고 더 세게 때렸을 것이다. 울면 운다고도 때렸을 테지만.      


더 울화가 치미는 건 살릴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우발적인 사고가 아니었으므로 아이는 온몸으로 학대 사실을 증언해왔다. 어린이집 선생님, 소아과 의사, 이웃이 경찰에 신고했지만 번번이 아이는 지옥도에 되돌아갔다.      


어린이집 교사가 멍을 보고 신고했을  경찰은 부모 말만 믿고 종결했다. 이후 아이를  안에 방치하는   이웃이 신고했지만 경찰은    CCTV 확인하러 왔다가 기록이 사라져 확인하지 못했다. 소아과 의사가 아이 상처와 영양 결핍 상태를 보고 신고했지만 경찰은  다른 의사 말만 믿고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양모는 서서히 용기를 얻었고 마침내 확신하게 되었을 것이다. 정인이를 죽여도 의심받지 않으리라는 것을. 지금껏 그랬듯이 울면서 억울하다고 연기하면 되겠다는 것을.      


분노와 증오심이 들끓었지만 계속해서 여기에만 휩싸여 있을 수 없었다. 화의 에너지를 더 나은 방향으로 사용하고 싶었다. 어린이 관련 재단에 정기 후원금을 늘리고 아동학대 현황이 궁금해 자료를 찾아보았다.


이 과정에서 새로 안 사실이 있었다. 내가 그동안 아동학대라는 말을 들었을 때 떠올린 키워드가 '계모'와 '어린이집'이었는데 실제 아동학대는 부모에게서, 집 안에서 가장 많이 일어난다는 거였다. 매년 아동보호 전문기관에 접수되는 학대 신고 건수를 보면 그중 상당수는 부모에게서 이루어졌고 학대가 발생한 곳은 대부분 집 안이었다.



보건복지부의 ‘2016 전국 아동학대 현황 보고서’ 중



왜 반대로 알고 있었나 보니 이 경우에는 친모나 친부가 따로 존재해 그들이 적극적으로 공론화를 시키는 데다 사람들이 피해 부모에게 감정이입을 하기 쉬워 관심도가 높아서였다.


또 집안에서 벌어지는 아동학대는 증거가 남기 어렵지만, 어린이집에서 발생하는 사건은 CCTV를 통해 강렬한 영상 증거를 남기기에 언론이 자주 이를 노출시키므로 대중은 이런 편견을 강화하게 된다.


그러나 친족에 의한 사건은 집안 망신이라고 모두 쉬쉬하기 때문에, 남은 아이들을 돌봐야 한다는 이유로 배우자가 처벌을 원치 않기 때문에, 오죽 힘들었으면 친자식에게 그랬을까 하는 동정 여론에다 아이는 부모에게 속해있다는 관습적 사고로 인해 빠르게 덮여버리고 만다.


아동학대는 재혼가정이나 입양가정이나 어린이집만의 문제가 아닌 평범한 구성원들의 일상에서 주로 일어나는 문제임을 직시해야 한다. ‘사랑의 매’란 표현은 폐기처리할 때가 되었다. ‘손찌검’이라는 두루뭉술한 표현도 쓰지 말아야 한다(가해자들이 법원에 내는 반성문을 보면 이 말이 주는 모호한 어감 때문에 ‘폭행’이라는 말이 들어갔어야 할 자리를 대개 손찌검으로 대체한다). 아직도 자식 훈육에 체벌이 불가피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은데 어떤 이유로도 폭력은 안 된다고 선언해야 한다.      


아동학대에 관한 정서를 생각하면 90년대 이전까지 남편이 아내를 때리는 일에 관대하던 사회적 인식이 겹쳐진다. 부부싸움 중 아내가 남편에게 맞아 경찰에게 신고하면 집안일은 알아서 하라는 답이 돌아오던 때가 있었다. 남편이 아내를 때리는 장면이 대수롭지 않게 등장하고, 다음날 아내가 달걀로 눈가를 문지르는 모습이 자주 나오던 드라마를 가족이 둘러앉아 보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이 명백한 범죄라는 상식을 많은 이가 공유하듯 아이 앞 폭력의 기준도 엄격해져야 한다.     


법을 고치고 예산을 충원하고 관련 전문가를 양성하는 식으로 시스템을 강화하는 일은 당연하다. 개선을 요구하고 감시하는 것은 물론, 일상에서 우리가 먼저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읽어본 아동학대 보고서 속 결론에서는 공통적으로 말하고 있었다. ‘아동학대는 처벌보다 예방이 중요하다’고.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주변의 관심과 신고가 필요하다’고.


내 아이에게 관심 가져주는 사람들을 귀찮아하지 않고 남의 아이들도 지켜봐야지. 궁금하면 질문도 하고 꺼림칙하면 신고도 할 것이다. 다정한 오지라퍼가 되어야 아이들이 보내오는 메시지를 읽어낼 수 있을 테니까.     


정인이 사건 이후 옆집에서 울음소리가 나면 혹시 부모가 아이를 때리는 것이 아닌지 의심하는 신고가 많아졌다고 한다. 누군가는 이 때문에 부모들이 오해받고 불편해졌다고 한다. 사람들이 너무 각박해지고 예민해졌다고도 한다.      


하지만 어른들이 조금 불편해져서 정인이 같은 아이를 한 명이라도 더 구할 수 있다면 그 정도는 감수하는 편이 비교할 수 없게 낫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정인이들이 차마 울지도 못하고 있을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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