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ne Mar 06. 2020

체크아웃에서 체크인까지

청소-빨래-요리-예약관리-프로모션


07:00 

게스트하우스 주인장으로서 나의 하루 일과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보통 7시에 시작한다. 귀국행 비행기에 오르기 위해 새벽 4시에 택시를 잡아타고 부리나케 공항으로 달려가는 게스트가 없다면 말이다. 콜택시를 미리 예약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던 때라 나는 새벽 3시40분부터 콜택시가 응할 때까지 전화를 돌려야 했다. 새벽 비행기를 타고 오는 게스트(대개는 홍콩)가 공항철도 첫차를 타고 아침 6시 전후로 도착해서 초인종을 누르는 경우도 있다. 피곤한 몸으로 홍대입구역부터 무거운 트렁크를 끌고 왔을 이들을 나는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이 다시 돌려보내야만 했는데, 보통은 근처의 찜질방으로 안내해주었다. 트렁크는 맡아둘 수 있었지만 이들이 쉴 수 있는 방은 없었다. 체크인은 오후 3시이며, 게다가 이들이 묵을 방에는 아직 체크아웃을 하지 않은 게스트가 자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없는 날에는 7시에 일어나면 충분하다. 나는 부지런히 주방으로 들어가 아침식사를 준비한다. 우리집에 머무는 게스트의 최대 인원은 9명이고 우리 몫까지 최소 11인분을 준비해야 한다. 나는 밥을 짓고, 덮밥 소스를 데우고 국을 끓인다.


08:00 

8시부터 9시까지는 아침식사 시간. 식탁에 도착하는 팀부터 원하는 자리에 앉아 순서대로 식사를 한다. 게스트마다 식사 스타일과 양이 제각각이라 국만 두 그릇 먹는 이가 있는가 하면, 밥을 세 그릇 먹는 이도 있고, 새모이처럼 아주 조금 먹는 이도 있다. 편하게 원하는 만큼 먹으라고 식탁의 정중앙에 밥과 국, 덮밥소스를 식지 않게 놓아둔다. 말하자면 뷔페 스타일이다. 우리는 함께 둘러앉아 식사를 하며 또 새로운 날을 시작할 에너지를 얻는다.


09:00 

오늘의 일정이 타이트한 게스트들은 완벽한 차림으로 내려와 식사를 마치자마자 바로 외출한다. 장기간 머무는, 비교적 시간적 여유가 있는 게스트들은 식사를 마친 뒤에도 우리와 함께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는 게스트(대개는 일본)는 이 시간에 우리와 한국어 연습을 하고 싶어했다. 생각보다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게스트가 많고, 또 이들과 한국어로 대화를 나누며 잘못 사용하고 있는 문형을 교정해주는 일이 꽤 보람있고 즐거워진 나는 이후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학을 정식으로 공부하게 되었다.



남편이 마당에서 볶은 커피콩으로 내린 핸드드립 커피



11:00 

우리집의 체크아웃 시간은 오전 11시다. 게스트하우스를 청소하고 주인장이 점심을 먹고 잠시 휴식을 취할 시간까지 최소한 4시간은 확보해야 하는데, 10시 체크아웃은 언제나 피곤한 게스트들에게 너무 야박한 듯해서 우리는 11시로 정했다. 대신 체크인은 오후 3시 이후다. 보통은 이 시간에 체크아웃을 하지만, 아침식사도 하기 전에 부지런히 체크아웃을 한 게스트도 있고, 11시에 체크아웃을 하고 트렁크를 맡긴 뒤 서울에서의 마지막 쇼핑을 즐기는 이도 있다. 


단 며칠을 함께 지냈을 뿐인데 그 사이 벌써 정이 든다. 그 많은 게스트하우스 중에 우리집을 찾아주어서 고맙고, 아무 탈 없이 재미있게 잘 지내주어서 고맙고, 헤어질 때 서운해 하니 또 고맙다. 마지막으로 집앞에서 함께 사진을 찍고 포옹을 하고 서로에게 행운과 건강을 빌어준다. 다음에 또 꼭 다시 올 것이고, 좋은 리뷰를 올려줄 것이며, 친구들에게 꼭 우리집을 추천해줄 것이라는 말을 잊지 않는다. 말뿐이라 해도 그저 고마운 마음이다. 게스트가 안 보일 때까지 조금은 벅찬 감정으로 손을 흔들어 배웅을 한다. 그리고 고요해진 집으로 돌아와 쏟아지는 햇살을 맞으며 잠깐 해방감을 만끽한다.


11:30 

이제 본격적으로 게스트하우스 주인장의 파워를 발휘할 시간이다. 엄청난 청소와 빨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우선 모든 창문을 열어젖힌다. 체크아웃을 하고 나간 방과 우리집에 머문 지 일주일 쯤 된 게스트 방의 모든 침구 커버를 벗긴다. 베개 커버, 이불 커버, 매트리스 커버, 타올이 산처럼 쌓인다. 종류별로 세탁기에 넣고 돌린다. 간혹 타올이나 매트리스 커버에 화장품을 묻혀놓는 게스트가 있는데 정말 난감하다. 주방세제 등을 사용해서 애벌빨래를 한 뒤 세탁기에 넣어야 탈이 없다. 대용량 드럼세탁기로 하루에 2번은 기본, 3번까지 돌릴 때도 많다. 그 와중에 우리 옷도 세탁해야 하고, 게스트들이 부탁하고 간 그들의 옷도 세탁해야 한다. 


빨래가 끝나면 건조기에 넣는다. 우리는 오래된 중고 제너럴 일렉트릭 가스건조기를 구입했는데, 생각보다 성능이 아주 괜찮았다. 크기도 넉넉하고 타올을 제외한 웬만한 빨래는 한 시간이면 마른다. 드라이시트를 한장 함께 넣어돌리면 얼마나 따뜻하고 향긋한 냄새가 나는지. 다만, 해가 쨍쨍 내리쬐는 여름날에는 옥상에 빨랫줄을 걸어 말리는 편이 훨씬 빨랐다. 옥상에 빨래를 탈탈 털어 말릴 때는 내 마음도 덩달아 뽀쏭뽀송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12:30 

빨랫감을 걷어 세탁기와 건조기를 씽씽 돌리는 동안 제일 먼저 할 일은 모든 게스트의 방과 공용공간, 주방, 화장실의 휴지통 비우기다. 체크인 시 열심히 설명을 하고 꼭꼭 당부를 하지만 외국인이 우리나라 사람처럼 음식쓰레기와 일반쓰레기, 재활용품 분리수거를 한번에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연남동은 종이, 플라스틱, 비닐, 금속 등을 모두 분류해서 내놓아야 한다. 

음식쓰레기와 일반쓰레기의 구분이 없는 나라도 있고, 일반쓰레기와 재활용품의 구분이 없는 나라도 있어서 쓰레기통에 온갖 플라스틱과 금속과 종이와 비닐과 음식쓰레기가 한데 뒤섞여 있는 경우가 꽤 있다. 다시 분류해서 버리는 일은 오로지 우리 몫이다. 종이박스와 비닐커버, 플라스틱 등 포장재와 영수증이 산처럼 쌓여있거나 사용하던 가방이나 옷을 버리고 가는 경우도 많다.

휴지통 비우기를 모두 마치고 나면 비로소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을 할 수 있다. 모든 방이 다시 깨끗해지면 베개와 이불, 매트리스 커버, 타올을 새로 세팅한다. 물을 쫙쫙 뿌려가며 욕실도 청소한다. 거울, 세면대, 변기, 벽과 바닥까지 깨끗이 청소한 뒤에는 물기를 훔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샴푸와 린스 바디워시 디스펜서도 다시 채워넣고, 두루마리 휴지도 넉넉하게 가져다둔다.  


짐을 맡기고 마지막 쇼핑을 하러 나간 게스트. 롯데마트에서 정말 많은 것을 사간다


13:30 

느긋한 점심식사를 한 뒤 커피를 마시며 남편과 둘이서 업무회의를 시작한다. 오늘 새로 체크인할 게스트는 누구이며 몇 시에 도착 예정인지, 트렁크를 맡기고 외출한 게스트는 몇 시쯤 찾아가는지, 내일 아침 메뉴는 무엇이 좋겠으며 그래서 새로 사야 할 음식 재료와 소모품(휴지 등)은 무엇인지. 온라인으로 주문할 것을 끝내면, 동네산책 겸 필요한 재료를 사러 나갈 시간이다. 고기와 채소, 두부 등은 가좌역 근처의 모래내시장에서, 휴지나 소모품은 서민할인마트에서, 통조림과 각종 소스들은 하모니마트에서 주로 구매하는데 연남동의 홈플러스 익스프레스에는 없는 물건이 많아서다. 그래도 도저히 연남동에서 구할 수 없는 물건은 합정역 홈플러스까지 다녀와야 한다. 


이렇게 마트를 돌다보면 자연스럽게 동네 산책을 하게 되는데, 동네가 워낙 작아서 어느 가게가 새로 오픈했고, 어느 가게가 문을 닫았는지, 어느 집이 리모델링 내지는 신축을 하고 있는지를 훤히 알게 된다. 연남동은 계속해서 변신 중이다. 한 집 건너 한 집은 공사중이라 어디에서도 왱왱 기계소리를 들을 수 있다. 부동산 사장님이 손님들에게 연남동 이곳저곳을 설명하는 것도 날마다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연남동의 다른 게스트하우스의 위치도 알게 되었는데, 그래서 트렁크를 끌고 지도를 보며 헤매고 있는 게스트들을 도와주기가 어렵지 않았다. 무엇보다 우리가 기쁘게 도울 수 있는 일이고, 남의 일 같지 않아서다. 우리 역시 다른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이나 연남동 주민분들의 도움을 여러 번 받았다.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면서 투잡을 하는 오너도 있는데, 이들은 대개 청소가 끝난 오후 시간을 활용해 다른 일을 한다. 나는 가끔 이 시간에 취미인 가죽가방을 만들었고, 희망하는 게스트에게 가르쳐주기도 했다. 오후 시간은 오너가 활용하기 나름이다. 가끔은 이 시간에 게스트하우스 운영자를 위한 심층교육을 받으러 가기도 한다. 서울관광재단에서 매년 정기적으로 도시민박업 설명회를 여는데, 한 달에 한 번씩 매번 다른 주제로 다양한 교육을 한다. 특별히 뭘 더 배우겠다는 목적보다, 최근의 경향이나 다른 게스트하우스의 사례를 듣기 위해 참석하는 편이다.


잠시잠깐 짬을 내어 해보는 오랜 취미생활



15:00 

멀리서 트렁크를 끄는 소리가 들려오면, 십중팔구 우리집에 새로 체크인 하는 게스트다. 대문을 열고 환한 미소로 반갑게 맞는다. 웰컴드링크와 열쇠를 주고 방을 배정해준다. 디지털도어락을 여는 법(도어락에 익숙하지 않은 게스트가 의외로 많다), 와이파이 비번, 우리의 SNS 계정을 알려준다. 

한국식 아침식사가 괜찮은지, 가리는 음식이 있는지 묻고, 아침식사시간과 쓰레기 분리해서 버리는 법, 흡연 관련 당부, 밤 11시 소등, 공용공간 사용규칙 등을 알려준다. 낮에는 어떻게 잘 찾아왔지만 한밤중에는 단독주택이 다 똑같아 보이기 쉬우므로 한밤중에 우리집을 어떻게 찾아와야 하는지도 꼭 알려줘야 한다.

서울 지도와 지하철 노선을 주고 우리집 주변 편의시설은 무엇이 있는지, 우리집을 지하철로는 어떻게, 택시로는 어떻게 오면 되는지 알려준다. 모든 설명이 끝나면 게스트들은 보통 1시간 정도 짐을 정리하면서 쉬었다가 저녁을 먹기 위해 외출 준비를 한다. 만약 이때 게스트들이 원한다면 우리는 함께 나가 주변 맛집과 분위기좋은 카페, 약국과 편의점, 슈퍼마켓, 버스정류장 등을 직접 알려준다. 


17:00 

게스트들이 오늘의 여행을 마치고 귀가하기 전에 나는 부지런히 다음날 아침 식사의 밑작업과 빨래 정리를 마쳐야 한다. 재료를 깨끗이 다듬어 썰고, 국물 육수를 끓인다. 만둣국이나 국수, 비빔밥 같은 음식은 어쩔 수 없이 아침에 해야 하지만 덮밥요리라면 최대한 소스와 국을 미리 만들어 식혀서 냉장고에 넣어둔다. 아침은 언제나 분주하고 예기치 못한 일이 생기기도 하기 때문에 미리 만들어놓지 않으면 낭패를 볼 수 있다. 

건조가 끝난 시트와 타올 등은 탈탈 털어 쫙쫙 잡아당겨 각 지게 접어놓는다. 


19:00 

저녁을 먹은 뒤 해야 할 일은 예약과 프로모션 관련 업무다. 새로 예약이 들어오면 그 즉시로 오버부킹을 막아야 한다. 우리는 주로 4개의 사이트(아고다, 익스피디아, 부킹닷컴, 에어비앤비)에서 예약을 받았는데, 다른 예약 사이트에서 해당 날짜에 그 방을 중복해서 예약하는 일이 없도록 반드시 막아야 하는 것이다. 오버부킹이 되면 다른 더 큰 방으로 업그레이드를 해주던가 아니면 양해를 구하고 다른 게스트하우스에 묵을 수 있도록 책임지고 연결을 해주어야만 한다. 다른 게스트하우스에라도 연결해 줄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마저도 방이 없다면 정말 난감해진다. 예약이 몰리는 2월의 춘절, 5월첫주 노동절 또는 황금연휴, 10월의 국경절 시즌은 그래서 매우 조심해야 한다. 


그 다음 해야 할 일은 게스트에게 이메일(우리집에 오는 법과 SNS계정 등을 알려주고, 도착 예상시간을 묻는다)을 보내고 엑셀파일에 정리해두는 것이다. 게스트 명, 나라 명, 머무는 기간, 어느 사이트를 통한 예약인지 색깔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놓으면 두고두고 참고할 일이 생긴다. 


그 후 각종 호텔예약사이트 관리자 페이지에 들어가 다가오는 시즌 프로모션을 준비한다. 우리는 얼리버드 예약자와 장기예약자에게 조금 더 할인을 해주는 편이었다. 그 뒤 리뷰를 꼼꼼히 읽어보며 감사 답장을 쓰고, 우리집의 강점과 약점을 좀더 분명히 파악한다. 강점을 더욱 부각하고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반영해야 하는데, 이 경우 다른 숙소의 주인장은 어떻게 하는지 눈과 귀를 계속 열어두어야 한다. 우리는 정기적으로 게스트하우스 주인장들의 모임에 참석해서 각종 정보와 노하우를 나누면서 도움을 받았다.


홈페이지나 페이스북에도 정기적으로 글을 올려야 한다. 요즘 게스트와 함께 찍은 사진, 우리집의 액티비티, 연남동 풍경이나 서울의 새로운 소식, 시즌별 추천 관광지를 올리기도 한다. 우리집에 머물다간 게스트에게는 서울에 대한 향수를, 우리집에 머물 예정인 게스트에게는 호기심과 설렘을 주는 공간인 셈이다. 이메일과 SNS를 통한 예약문의와 감사인사 등에 빠짐없이 답을 하는 것도 꼭 해야 할 일이다.


보통은 이런 루틴이지만, 단골 게스트가 오면 모든 할일을 뒤로 하고 함께 밖에 나가 저녁을 먹고 한강까지 산책을 하기도 한다. 우르르 치킨집에 몰려가기도 하고, 노래방에 가기도 하고, 공원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맥주를 기울이기도 한다. 오늘 처음 체크인한 게스트라도 간혹 주인장과 술 한잔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하는 게스트가 있는데, 기꺼이 우리는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나눈다. 남자 게스트들은 대개 한국의 문화, 경제, 군대 이야기, 집값, 대출이자에 관심이 많고, 여자 게스트들은 대개 Kpop과 K드라마, K뷰티, 한국어에 관심이 많다.물론 단골 게스트와는 정치나 종교, 역사 같은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23:00 

이제 조용히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 하루를 마무리하고 쉴 시간이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하는 게스트도 있기 때문에 밤 11시에는 공용공간에 소등을 하고 작은 스탠드를 하나 켜놓는다.


01:00 

모든 게스트들이 집에 들어왔는지 확인을 하고서야 안심을 하고 잘 준비를 한다. 마치 하숙집 아주머니가 된 것처럼 밤늦도록 들어오지 않는 게스트들이 있으면 도무지 걱정스러워서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지하철이 끊겼을텐데 어떻게 오고 있을까, 좋은 택시기사를 만나 잘 오고 있겠지? 홍대 클럽에 간 게스트들은 아무 일 없이 괜찮은 걸까? 등등 오만가지 걱정을 하느라 뒤척인다. 현관문 소리가 나고 드디어 모든 게스트들이 안전하게 귀가한 것을 알고서야 비로소 안심을 하고 잠을 청한다.

이전 07화 한국 가정식 아침식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