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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셜리 Aug 15. 2023

남의 책에 이토록 열성을 내는 직업이라니

수문장으로서의 편집자

요즘 편집하고 있는 책은 '벽돌책'이라고 부를 만한 책이다. 분량이 상당한 경제경영서여서 '경제알못'인 스스로의 문해력을 원망하며 더듬더듬 이해하며 조심스레 고쳐나가고 있다. 어려운 책이다 보니 확신을 가지고 고칠 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아 저자에게 확인 요청을 하게 된다. 다행히 저자분의 피드백이 빠른 편이어서 그때그때 답을 듣고 수정을 해나가는 데 큰 어려움은 없다.


그렇게 저자와 원고 파일을 주고받는 중에 난감한 요청 사항을 받았다. '이 부분은 중요한 부분만 추려서 어울리는 부분에 통합해 주세요.' 중요성이라는 건 누구나 판단할 수 있는 문제이지만, 사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이라는 건 '저자가 꼭 강조하고 싶은 부분'을 의미했다. 그러니 저자만 판단할 수 있는 문제였다. 사실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나의 경제 문해력이었다. 다른 원고였다면 '이 부분이 중요해 보이네' 하고 슥삭슥삭 잘라서 요리조리 잘 끼워 넣었을 것이다. 저자 역시 나에게 그 역할을 위임했기에 별다른 불만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원고는 그럴 수가 없었다. 이렇게 저자마저 손 놓은 부분은 편집자가 어떻게든 만질 수밖에 없다. 그것이 내가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원고의 관계자가 한 명 더 있다. 원고 검토부터 초교까지 진행했던 외주편집자분이다. 경제잘알이셔서 믿고 작업을 의뢰했고 실제로도 팩트 체크 부분에서 날카로운 지적을 많이 해주셔서 원고가 많이 매끄러워졌다. 이렇게 믿음직스러운 외주편집자분이 있더라도 편집자는 외주편집자가 보낸 파일을 그대로 저자에게 전달해서는 안 된다. 한 번이라도 보고 혹시 잘못된 부분은 없는지, 편집자 선에서 다듬고 넘어갈 수 있는 문제는 없는지 확인해서 저자에게 전달해야 한다. 나는 분량이 방대한 이 원고도 그 작업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고 본문을 볼 때까지는 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각주에서 문제가 있었다. 외주편집자분이 작업해온 각주 파일에는 '내용 정확지 않음. 확인 요망'이라는 메모만 잔뜩 달려 있었다. 저자가 적어둔 각주는 대부분 인용 출처였는데 책이나 논문의 제목만 적혀 있고 출판사나 발행 연도 등이 빠져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그런 메모를 달아둔 거였다. 내부 편집자는 이럴 경우 제목이나 저자명을 구글링해서 빠진 내용을 메꿔두고 저자에게 맞는지 확인 요청을 한다. 저자에게 그 상태로 다시 돌려보내도 저자가 편집자가 아닌 이상 출처 표기를 일관되게 통일해 오기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 상태로 저자에게 각주 파일을 보낼 순 없었다. 500개가 넘는 주석을 일일이 구글링해서 출처 표기를 통일하느라 이틀을 썼다. 이렇게 외주편집자가 '내 일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일들 역시 편집자의 몫이 된다.


이렇게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에는 여러 '관계자'가 있을 수 있지만 결국 빈틈을 메우는 건 편집자다. 왜냐면 편집자는 '독자'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모두가 손을 놓았다고 편집자마저 그 책을 놓아버리면 돈 주고 책을 사서 볼 독자는 어떤 식으로든 불편을 감수하게 된다. '이 책이 번역이 왜 이렇지?' '이 책은 출처가 왜 이 모양이지?' '이 책은 왜 이렇게 틀린 곳이 많지?' 독자가 왜 이런 독박을 써야 하는가. 출판은 제조업으로 분류된다. 편집자는 한 권의 책을 제조하는 과정에서 품질 관리를 담당하므로 '흐린 눈' 하고 넘길 수 없다. 이것이 편집자의 직업윤리다.


어쩌면 편집자는 책 만들기의 수문장인지도 모른다. 마치 어린아이를 단도리해서 유치원에 보내는 부모처럼 분주하다. 가방에 준비물은 챙겼는지 옷은 제대로 입었는지 얼굴에 뭐 묻은 건 없는지 문 앞까지 살펴서 내보내야 하는 것이다. 그래도 틀린 부분은 나올 수 있지만 손 써 볼 수 있을 때까진 눈을 부릅뜨고 살필 수밖에 없다. 책은 어디까지나 저자의 것이라고 하는데 남의 책에 이토록 과한 책임감을 지니고 일하는 직업이 흔할까. 그치만 나는 이런 과한 책임감 없이는 할 수 없는 이 일이 좋다. '이 책의 어떤 부분은 내가 이렇게 한 거야'라는 걸 나는 기억하니까. 그 부분만큼은 내가 주인이니까. 과하다 싶을 정도의 책임감을 발휘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남의 글에 그런 말을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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