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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셜리 Oct 29. 2023

좀스러운 직업가들

어떤 지독함은 사랑스럽다

좀스러운 이야기 하나


"00 씨, 포스터 좀 약간 왼쪽으로 옮겨줘요. 빛 반사 때문에 안 보여서요."


회사 선배가 담당하는 저자의 기자 간담회에 쫓아갔었는데 거기서 인상 깊은 장면 하나를 보았다. 행사 전에 이것저것 점검하던 선배가 손님들 들어오는 동선을 체크하다가 포스터가 잘 안 보였던지 포스터 옆에 서 있던 분에게 옮겨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이젤 위에 놓인 포스터는 아크릴로 되어 있어서 빛 반사가 꽤 있었다. 옮기고 나니 확실히 내용이 눈에 잘 들어왔다.

아, 이런 것도 점검을 해야 하는 거구나. 아주 작은 것까지 챙기는 선배의 모습이 전문가 같아 보였다. 나도 언젠가 저자 간담회를 준비할 때 이런 것도 하나하나 체크해야지. 사실 마감을 앞두고 할 일이 많은데 행사에 차출되어 간 거라 내가 여기 있어도 되나, 마음이 불편했는데 중요한 태도 하나를 배우게 되어 뿌듯했다.



좀스러운 이야기 둘


저자가 수집한 초판본에 관한 이야기를 엮은 <김기태의 초판본 이야기>에는 <만다라> 초판 한 귀퉁이에 적힌 '비화'라는 말의 뜻을 찾아나가는 저자의 모험(?)이 나온다. 편집자 출신의 교수인 저자는 본인이 소장한 초판본을 표지부터 판권지, 본문의 구석구석까지 탐험하며 느끼고 배운 것들을 풀어놓는데, 그러다가 발견한 '비화'라는 말의 뜻을 좀처럼 알 수 없어서 백방으로 뜻을 물어보고 다닌다. 그런데 누구도 그 답을 주는 사람이 없어서 답답해하던 차에, 번뜩 떠오른 것이 '도비라'라는 단어다. 도비라는 책에서 장마다 들어가는 표지면을 의미한다. '비화'는 이 '도비라(장표지)에 들어가는 그림'이라는 뜻이었던 것이다.

작아서 보고도 지나치기 쉬운 글씨 하나에 이렇게까지 집착하는 게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너무 좀스럽다고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 호기심을 갖고 그 의미를 풀어내지 않으면 많은 것들의 의미가 시간이 지날수록 빠르게 흐려질 것이다. 20세기의 책을 본 21세기의 저자가 그 뜻을 밝혀두지 않았다면, 22세기의 누군가는 그 뜻을 알아내기가 점점 더 힘들어지지 않을까. 세상에는 숲을 보고 큰 걸음으로 나아가는 사람도 필요하지만, 나무 하나의 의미를 밝히느라 걸음을 늦추는 사람도 필요한 것이다. 이제는 노교수가 된 저자가 이 작은 것을 발견한 것이 기뻐서 그 과정까지 소상히 책에 밝혀두고 있는 것이 귀여웠다.



좀스러운 이야기 셋


누가 출판편집자는 뭘 하는 사람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책의 아주 작은 부분도 끝까지 매만지는 사람이라고 말할 것 같다. 우리는 큰 틀을 짜고 일이 굴러가게 만드는 것도 하지만, 업무 시간의 상당 부분을 아주 좀스러운 데 매달려 있다. 예를 들면, 따옴표가 혹시 뒤집혀 있지 않은가, 굽은 따옴표 적용이 되어 있는가 하는 것을 보려고 건조해진 눈을 더 부릅뜬다. 한 글자 때문에 다음 행으로 넘어가는 외자도 없애야 하고, 행말에 기호나 숫자가 덜렁 오는 것도 막아야 한다. 외국 사람의 인명을 표기할 때 미들네임을 표기할 것인지, 출처를 각주/미주/후주 중 어떤 것으로 표기할 것인지 책을 읽는 사람들은 의식하지 못하는 책의 디테일을 보려면 눈 깜빡할 새가 없다. 책의 모든 부분을 단정하게 매만지려면 봐야 할 '좀스러운 것들의 목록'은 끝없이 늘어난다. 그리고 마감일까지 이 모든 것들을 적당히 포기하지 못하고 물고 늘어지는 편집자들은 어떻게 보면 지독하기까지 하다.

이렇게 작은 일들에 젊음과 시력과 허리를 바치고 있는 것이 아깝다면 나는 이 일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일에 온전히 매달려 있을 때 모종의 편안함을 느낀다. 그리고 내가 만져둔 책이 실제로 단정한 모습으로 나왔을 때 가장 기쁘다.

 

편집자 일에 대해 다 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내가 좋아하는 편집자 일의 단면 중 하나는 이 '좀스러움'이다. 작은 오탈자 하나를 출간 전에 발견해서 고친 것에 기뻐하고, 작은 차이도 용납하지 않고 고집스레 통일하는 데 에너지를 쓰는 편집 일이, 편집자들이 나는 사랑스럽다. 그리고 나도 언젠가 내 일의 결과물들을 돌아봤을 때 내가 쌓아둔 좀스러운 업적들을 보며 뿌듯해하고 싶다. 결국 내가 직업인으로서 얻고자 하는 것은 '대편집자' 칭호가 아니라, 나만 아는 책 속의 작은 점 하나, 글씨 하나를 떠올리며 미소 지을 수 있는 성실함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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