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넷의 서비스디자인 이야기 2

정말 찾아가야하는 것은?

by Annette 안경미

오랜만에 이곳에 서비스디자인 이야기를 써야지 하는 생각을 하자 왠지 따뜻했던 한 시절이 기억났습니다. 왜 이 기억이 튀어나왔을지 의외이긴 한데 한번 끝까지 가보면 그 이유를 알게 되겠지요.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 유학 중이던 오빠를 방문하던 일정 끝에 갑자기 한 대학에 남게 되었습니다. 오빠의 지인이 시카고의 한 대학에 자리를 잡으며 코네티컷주에서부터 시카고까지 이삿짐을 옮기는 차에 함께한 계기가 그런 결정으로 이어졌습니다. 비자문제로 한 학기만 기숙사와 미국대학을 경험하는 것으로 끝났지만 그 기간 동안 여러 가지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던 거지요. 해외에서 유학을 했던 분들은 어느 정도 비슷한 경험을 갖고 있을 텐데요. 영어를 배우고 싶은 욕심에 호기롭게 남기로 하였지만 그 대학은 번화한 시내와 거리가 있고 한국인은 거의 없던 터라 영어가 유창하지 않던 나로서는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감정들로 쉽지만은 않았던 기억을 갖고 있습니다. 소외감, 외로움, 향수 같은 것들이었을 텐데 몇 개월이 지나 조금씩 영어가 들리기 시작할 때쯤 겨울방학이 되어 기숙사를 나와야 했습니다. 혹시 신청한 학생비자가 나올까 기대하며 학교에서 연결해 준 현지인 가정에서 방학을 지내기로 했습니다.


campus life.png 기숙사와 캠퍼스에서

그곳은 두 아들을 입양한 가정이었는데 아들 중 한 명은 한국인이었습니다. 안주인의 부모님들이 함께 살았기 때문에 크리스마스와 새해 첫날의 명절은 물론 매일 저녁 많은 가족들과 푸짐한 식사를 나눴습니다.

아무튼 그곳에서 머무는 약 2주간의 기간 동안 나는 조금 기대와는 다른 경험을 하게 되었는데요. 그건 그들의 무심한 듯 덤덤한 대우 때문이었습니다. 거기에는 매년 방학 때마다 함께 지내는 또 한 명의 독일 유학생이 있었는데 모두 서로에 대해 지나친 친절도 과도한 호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내가 신세 지는 입장에서 뭔가 도와야 하나 어정쩡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그들은 우리가 있던 없던 늘 하던 대로의 생활을 할 뿐인 것 같았습니다. 이런 상황이 익숙한 독일인 친구도 그저 책을 읽거나 조용히 자기 시간을 갖는 등 그곳에서 신세를 지는 것에 대해 크게 신경 쓰는 것 같지 않아 보였 고요. 사실 그곳으로 가면서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조금 염려되는 마음이 있었는데, 그들의 무심한듯한 태도가 점점 내 집 같은 마음으로 돌아가게 했던 것 같습니다. 결과적으로 걱정과는 달리 처음 경험하는 외국인 가정의 홈스테이는 생각보다 훨씬 편하고 자연스러운 내 모습으로 지낼 수 있었던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왜 내게 좋았던 경험으로 기억되는지 생각해 보니 학기 중 주로 주말에 머물렀던 어머니의 친구분 댁이나 친척 집에서 지내던 시간 하고는 좀 달랐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분들은 매일 직장을 다니고 있었고 주말에는 멀리 학교까지 데리러 왔습니다. 내가 머무는 동안에는 바쁜 시간을 짬 내어 일부러 더 좋은 시간을 만들어주려고 신경 쓰셨고 충분히 그렇게 해주지 못하는 것에 대해 조금 미안해하기도 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나는 그것이 조금씩 더 부담스러워졌고 그 가족들과 함께 지내면서 정작 쉬는 시간이 없는 주말을 보내게 되어 학기말로 가면서는 주말 초대를 최대한 사양하기도 했습니다. 그분들의 잘해주려는 마음과 정성은 당연히 감사하였지만 마냥 편하기만 하지는 않았던 것이지요.


나의 이런 경험과 감정의 기억들은 '서비스디자인은 그 과정을 통해 어떤 것을 찾아가야 하는 것일까'라는 것과 연결해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좋은 의도로 무언가 제공하려는 측이 나름의 생각으로 최선을 다해 준비해도 그 대상은 진정한 만족을 느끼지 못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서비스를 경험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모두 기능적인 편리성 외에 자신조차 몰랐던 새로운 정서와 감정적 경험을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캘리포니아주립대에 재직했던 그렉 베리맨( Gregg Berryman)교수는 20세기 주요 디자인분야들을 이해하기 쉽게 정의했는데요. 그것을 좀 더 정리해보면 시각디자인은 읽는 정보(information people read), 제품디자인은 사용하는 사물들(things people use), 환경디자인은 우리가 거하는 공간(where people live)을 디자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분류하니 멀티미디어, 인터페이스와 같이 나중에 등장한 여러 디자인분야들을 어디에 넣어야할지 알 수 있게 됩니다. 이후에 등장한 서비스디자인도 이런 식으로 정의하자면 경험하는 가치( value people experience)를 디자인한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눈에 보이지도 않는 가치(value)라는 것을 다뤄야 하니 우리 서비스디자이너들은 새삼 이것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Gregg Berryman.png 그렉 베리맨의 저서 'Notes On Graphic Design And Visual Communication'

나는 시카고의 짧은 경험으로 때로는 세심한 관심과 넘치는 친절보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상대가 부담을 느끼지 않을만큼 대해주는 것이 최선의 대접일 수도 있다는 것을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늘 혼자만 지내던 사람은 여러 사람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지내고 싶을 수도 있고 또는 정반대로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겠고요. 언어가 다른 학업을 쫓아가느라 쉬지 못했던 저 같은 경우에는 자유롭게 쉴 수 있는 여유로운 시간이 더 좋을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서비스디자인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일련의 서비스과정 안에 여러 기능을 넣고 많은 것을 제공해 주는 것이 좋을 것 같지만 그건 추측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제공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복잡하고 어리둥절하며 심지어 귀찮기까지 한 감정적 경험을 가질 수도 있으니까요. 이런 이유로 서비스디자인에서는 서비스를 받게 되는 대상에 대한 좀 더 심도 있는 밀착 리서치가 필요하게 되는 데요. 추측을 최대한 배제하고 정말 진심으로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입니다. 좀 더 차원 높은 만족이라는 경험의 가치를 찾기위해서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서비스디자이너들은 최종적으로 제공해야 하는 최선의 가치들은 어떤 것들 일지 고민하며 민감한 심정으로 임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어찌 보면 이중적인 차원에서 다뤄야 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가치들과 보이지 않는 내면적인 가치들. 기존의 생각과 전혀 다른 예상밖의 감정들까지. 좀 어렵게 들리겠지만 사실 이점이 서비스디자인의 매력이기도 합니다.


그럼 앞으로 이어지는 글에서는 사람들이 경험할 수 있는 가치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좀 더 알아보고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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