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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 Oct 27. 2019

예술 극장에서 볼래요?

 


 불빛이 반짝였다. 한번, 한번 반, 한번 반의반. 파란 불빛이었다. 요상하게 생긴 모자를 쓴 사내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갑자기 일어나 싸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일어나지 않았다. 일어날 수 없었던 것은 아닐까? 이미 큰 벌레가 되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휩싸였다. 껍질이 아주 딱딱한, 발이 여러 개 달린 그것 말이다.      

 카페 시커에는 사람이 없다. 언제 와도 없지만, 오늘은 더 없었다. 사람이 없어서 여기를 찾는 것도 있지만 가끔 여기 걱정을 하기도 한다. 물론 해봤자 쓸모없는 걱정이겠지만. 우리는 아주 약간, 약간의 도움을 여기서 받고 또 주는 셈이다. 정확하게 어떤 도움이냐고 물을 생각은 하지 않길 바란다. 설명은 쥐약이다. 모두 내게서 설명을 원한다. 그러니까, 그건 어떤 증명 같은 것이 되기도 하고 일종의 대답이 되기도 한다. 내가 무슨 말을 한다고 해도 다 믿어줄까?

 우리는 시커에 자주 모였다. 예술 극장에 가기 전, 가지는 의식 같은 것이기도 하다. 어떤 머리통을 만나게 되더라도 결코 놀라지 말고, 슬퍼지지 않기로 다짐하는 가슴을 단단하게 만드는 시간이다. 오늘 듣게 될 자장가는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작품이다. 한때 이 작품은 많은 이들을 울리고 웃기며 큰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도 이 작품을 사랑하지 않는다. 어째서? 그건 나도 모를 일이다. 작품은 불면증 치료제로 쓰인다. 사람들은 잠들기 위해 예술 극장을 찾는다. 이건 그렇게 슬픈 일도 아니다. 이렇게 되리라고 예감한 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벌써 오래전, 이곳을 버렸겠지. 그래서 시커도 텅 비게 된 것일 테고.

 말하자면 이렇다. 예술 극장에서 잠들지 않는 사람들의 모임. 그래 봤자 고작 세 명뿐인 모임이지만, 말을 다시 정정하겠다. 우리는 세 명이나 되는 아주 그럴싸한 모임이다. 여기서 나는 콧구멍이다. 한 명은 콧수염, 다른 한 명은 발톱 때로 불리운다. 내가 350살쯤 되었을 때, 끝나지 않는 생이 지겨워질 때쯤 여기 예술 극장을 찾았다. (잠들고 싶었다는 표현이 더 맞으려나) 그때 본 작품이 뭐였더라. 그때도 고도를 기다리며를 보았나? 어찌 되었건 뭘 봤느냐는 이제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극이 시작하고 10분이 지났을까? 사람들의 머리가 하나둘 가라앉기 시작했다. 누군가 기절 총이라도 놓은 듯이 말이다. 그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광경을 혼자 보고 있자니 서글퍼졌다. 잠들지 못하는 나 자신 때문에 말이다. 20분이 지나니 무대 위 배우들마저도 잠이 들었다. 잠이 든 그들을 대신해 스크린 속에 그들이 나와 극을 계속 이어나갔다. *외로워서, 참 그렇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나서 1층과 2층을 오가며 깨어있는 사람이 없는지 살펴보았다. 그때 만난 것이 콧수염이다. 스크린에 빨려 들어갈 자세를 하고 훌쩍이고 있었다. 그에게 왼손을 내밀었다.

 *그럼, 갈까?

 콧수염은 예술 극장 마니아라고 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엉거주춤한 바지가 그렇게 보였다. 매주 3번씩은 꼭 여길 들른다고. 잠들지 않는 자신이 싫지는 않은지 물으니 고개를 힘차게 가로저으며 말했다. 잠들지 않는 자신이 사랑스럽고, 자랑스럽다고 말이다. 사랑과 자랑이라..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지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예술 극장의 어떤 점이 가장 좋으냐고 물었더니 그는 바로 대답했다. 암전, 암전이라고. 암전이 왜 좋으냐고 물었더니 날 아주 바보 취급했다. 왜 그런 걸 물어보냐는 듯이.      


 “눈을 뜨고 있는데도 암전이 되면 깜깜해지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세상이 온통 까매져. 눈 감을 필요가 없는 거야”     


 콧수염에게 예술 극장은 일종의 거대한 무덤인 걸까? 땅속에 있지만, 흙으로 덮이지 않은 무덤인 셈이다. 눈 감을 필요가 없다는 말이 궁금했지만, 더 묻지 않았다. 그랬다간 바보에서 얼간이로 추락할 것만 같아서.      


 비가 내리는 수요일이었다. 시커 문이 열리고 콧수염이 들어왔다. 작은 혹을 하나 달고서. 그 아이는 아직 100살도 채 안 되어 보였다.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요즘 누가 저런 모자를 쓰고 다니나 싶게 생긴 모자였다. 그러고 보니 어제 콧수염이 뇌파로 예술 극장에서 잠들지 않고 깨어있는 아이를 만났다고 보낸 것이 생각났다. 이번엔 오른쪽 손을 아이에게 내밀었다. 오오, 그래 너로구나! 아이에게도 콧수염에게 던진 질문을 똑같이 던져보았다. 예술 극장에 왜 가느냐고, 아이는 야광별 때문이라고 했다. 너무 오래되어서 이젠 잘 떨어지지도 않는 무대에 붙은 그 야광 스티커? 그게 왜 좋으냐고 물으려고 했는데 콧수염이 말을 가로챘다. 어릴 땐 빛나는 게 다 예쁘고 아름다워 보이는 법이지. 아이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모자를 바꿔 썼다.

 사실상 우리가 모여서 하는 일이라곤 별거 없다. 예술 극장에 함께 가거나 시커에 모여 앉아 지금처럼 시간 죽이기를 할 뿐이다. 한 번은 함께 모여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예술 극장이 없어지게 된다면? 콧수염은 그 말을 듣자마자 처음 만났을 때처럼 훌쩍이기 시작했다. 그런 일은 절대 있을 수 없고, 예술 극장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라 해도 예술 극장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발톱 때는 오랫동안 아무런 말이 없었다. 말을 할 수 없는 것인지, 말을 아끼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한참의 침묵 뒤에 녀석이 꺼내놓은 대답은 시커는 있겠죠, 우리 세 사람 때문에. 그럴까? 예술 극장이 사라져도 시커는 남아있을까?


 깜박깜박, 찌르찌르르르 응급실에 실려 갔던 게 언제인가 싶다. 그래, 언제였더라. 깜박 잠이 든 걸까? 아니면 잠시 꿈을 꾼 걸까? 꿈같은 거 꾸지 않은 지 이미 오래다. 눈을 뜨자 콧수염과 발톱 때의 머리통이 보였다. 아니, 그들의 뒷모습. 서로에게 기대어 무언가 이야기하는 듯 보였다. 아니, 꿈을 바꿔 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불빛이 반짝였다. 파란 불빛이었다.


 한번, 한번 반, 한번 반의반. 이제는 일어나서 사내의 모자를 벗겨볼 수도 있지 않을까? 주먹을 불끈 쥐지만 않는다면.      


 어이, 형씨 당신도 예술 극장 사람이요? 그러니까, 내 말은 예술 극장에 가서 3시간 넘는 시간 동안 앉아 있어도 잠이 들지 않는 사람인지 묻는 거요. 원하지 않는다면 지금 대답하지 않아도 좋소. 당신이 쓴 일기를 언젠가 읽은 것도 같아. 그 모자 예전부터 탐이 나지만 뺐지는 않을 거요. 각자 어울리는 사람이 있는 거지. 모자를 잃어버리지 않게 조심해요. 모자를 벗기고 싶어 하는 나 같은 인간도 조심하고. 물론 조심만 한다고 될 일은 아니겠지만. 불빛들을 오래 보고 있으면 곧 잠이 들 것 같아. 물론 한참 뒤 이야기겠지만. 시간이 된다면 예술 극장으로 나오세요. 거기 기절한 인간들 구경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암전-



               

 시커의 셔터가 내려졌다. 파란 불빛이 반짝였다.          













*고도를 기다리며(사뮈엘 베케트) 에스트라공, 블라미디르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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