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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 May 10. 2020

카미노 데 산티아고 가는 길을 아세요??

              


8월, 여름이었다. 그 길을 어디서 보고 알게 되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친구들을 만나면 카미노 데 산티아고(순례자의 길)에 가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시기가 있었다. 왜 순례자의 길이여야만 했을까? 지금은 훨씬 더 유명해진 카미노 길이 내가 가고 싶을 당시만 해도 아는 사람이 몇 없는 그런 길이었다. 친구들에게 말하면 다들 까미 뭐?라고 되물어보곤 했으니까. 친구들은 걱정했다. 뒷산 오르는 것도 힘들어서 중도 포기하는 저질 체력으로 유명한 내가 800km 되는 길을 혼자서 걷고 싶다고 하니 걱정이 될 만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일반인 버전의 무(모)한 도전 같았겠지. 다들 카미노 길을 걷기 위해서 가기 전부터 체력적으로 엄청 많은 준비를 한다. 전혀 준비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그냥 막연하게 가고 싶다는 마음만 컸으니 얼마나 무모해 보였을까? 많이 힘드냐고 물어본 친구도 있었다. 표면적으로 봤을 때, 힘든 일은 없었다. 겉으로는 그랬는데 마음 안에서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렸고, 모든 게 서툴렀고, 이유 없이 다 미웠던 시기니까.      


당시엔 이상한 믿음이 있었던 것 같다. 카미노에 가면 불안과 막막함이 아닌 무언가 보이리란 믿음. 

그렇게 비행기에 올랐다.      


내가 도착한 곳은 스페인도 프랑스도 아닌 제주도였다. 해봉과 함께 제주도로 갔다. 우리의 여행엔 제주 올레길 걷기도 포함되어 있었다. 카미노처럼 크고 원대한 목표가 아니라 작은 목표부터 이뤄보자고 했다. 함께 걷게 된 길은 제주 올레 7길이었다. 제주 올레길 중에서도 아름답기로 소문난 길이라는 말에 아무런 정보도 없이 걷자고 해버렸다.     


걷기로 한 당일 아침엔 날씨가 무척 좋았다. 날씨 때문인지 기분도 좋았다. 해봉은 중간에 내가 포기할까 봐 걱정되었는지 끝까지 걸어야 한다고 몇 번을 말했다. 다 걸을 때까지 못 돌아온다고. 거리에 대한 감각도 없고, 산행은 아니니까 동네 산책 정도로 생각했다.      


에이, 올레길이 힘들어봤자 얼마나 힘들겠어.     


강정 마을을 지날 때였다. 오후 햇빛은 강렬하고 그늘도 없었다. 한 발 떼는 것도 힘들었다. 길 곳곳에 천막과 현수막이 내걸려있었다. 마을에 무슨 일이 있는 듯 보였다. 하지만 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너무 힘들었기에 계속 걸어야만 했다. 한참을 아무 말 없이 걷고 있는데 해봉이 먼저 말을 걸었다.    

  

“너 힘들지?”

“아니야~”

“아까부터 계속 말 없는 거 알아??” 

“힘들어, 그러니까 말 시키지 마” 

“지금 나한테 짜증 낸 거야??”      


아차, 싶어서 바로 사과를 했다. 짜증을 낸 건 아니라고.      


유럽 여행 갔을 때, 프라하 숙소에서 만난 한국인 자매가 있었다. 이탈리아의 여름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이야기해주었다. 그때 저희 둘이 떨어져서 걷고 말도 한마디 안 했어요. 날이 더우니까, 대화만 하면 싸우게 되더라고요.      


정말 그랬다. 사람이 극한에 몰리니까 모든 게 다 짜증이 났다. 분명 아침까지만 해도 날이 좋아서 좋다고 콧노래를 불렀었는데 불과 몇 시간 만에 날이 너무 좋은 것까지 짜증이 났다.      


사람들은 이 힘든 길을 자동차를 두고 왜 굳이 걸으려 하는 걸까??

카미노를 걷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카미노 길을 걷는 걸까??      


걷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생각은 잔가지를 쳐가며 단순해져 갔다. 나중에 내가 하는 생각은 단 세 가지뿐이었다. 힘들다, 배고파, 쉬고 싶어. 

세 가지 생각만 하며 걸었다. 

배고파, 힘들다, 쉬고 싶어. 

쉬고 싶어, 힘들다, 배고파.     


우리는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올레 7길을 완주했다. 카페에 도착했을 때, 둘 다 소파에 쓰러졌다. 정말이지, 힘들어서 죽을 것 같았다. 서로가 서로에게 고생했다며 다독여줬다. 음료를 주문하고 통유리창으로 바다를 바라봤다. 말도 안 되게 아름다운 바다였다. 이래서 사람들이 힘들어도 계속 걷는구나. 걷는 순간은 힘들었지만, 다 걷고 난 뒤에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앉아서 쉬는 건 꿀맛이었다. 무언가 해내었다는 작은 성취감. 창밖으로 해가 막 지고 있었다.     


어리고 철없던 20대를 지나 어느덧 어른이라 불릴만한 나이가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미성숙한 나와 고투 중이다. 좋았다가 나빴다가 좋았다가 나빴다가 날들의 연속이다. 카미노에 가보고 싶다. 다만, 처음에 걷고자 했던 마음과 달라진 게 있다면 그 길에만 답이 숨겨져 있을 거라는 믿음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길은 어디에나 있고, 카미노가 여기가 될 수도 있다. 걷기를 멈추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 길이 어디든 나만의 속도로 멈추지 않고 더디더라도 계속 걷고 싶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질문을 던지고 싶다. 

왜냐하면 나는 질문맨이니까. 

당신은 카미노 데 산티아고로 가는 길을 알고 있는가?

만약 알고 있다면 내게도 살짝 알려주길 바란다. 

먼 길로 돌아가지 않고, 비행기 값을 아끼면 좋으니까.      


그런 지도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세상엔 존재하지 않지만, 우리만의 카미노 데 산티아고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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