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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 Mar 14. 2019

오후 세 시

 식탁 위에 샌드위치가 있다. 샌드위치 옆 쪽지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사랑하는 딸♥

  바빠도 꼭 먹고 가기!’

 엄마의 글씨였다. 샌드위치를 다 먹고 가면 오늘도 지각이다. 또 운동장을 뛰고 싶진 않았다. 샌드위치를 입에 물고 집 밖으로 나왔다.

     

  4살 때, 엄마는 나를 잃어버린 적이 있다고 했다. 함께 시장에 갔다가 놓친 것이다. 온종일 나를 찾아다녔지만 찾을 수 없어 경찰서로 갔는데 실종신고를 하기엔 이르니 집에 다시 가보라고 경찰관은 엄마에게 말했다. 집에 오니 계단 난간을 붙잡고 꾀죄죄한 모습으로 내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고 했다. 이름을 부르자 놀라 깨서는 엄마 얼굴을 보자마자 울음부터 터트렸다고. 한글도 읽을 줄 모르는 꼬맹이가 어떻게 집을 찾아왔는지 엄마도 모르고, 나도 모른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마도 왔던 길로 다시 집에 온 게 아닐까? 그때 엄마는 많이 놀랐었던 것 같다. 그 이야기를 할 때마다 “너 잃어버린 줄 알고, 다리에 힘이 풀려서”라고 매번 말했으니까.

     

  교실 창밖으로 먹구름이 보였다. 누군가 지나가며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오늘 비 온대” 아침에 우산을 챙기지 않은 것이 그제야 생각났다. 오늘은 지각하지 않은 대신 비를 맞고 집에 가야 할 것 같았다. 5교시가 끝날 때쯤 창밖을 보니 정말로 빗방울이 투둑 투둑 떨어지고 있었다. 하필이면 이런 날 흰색 신발이라니. 종소리가 울리자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떠들기 시작했다. 운동장으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듣기 좋은데 아이들 떠드는 소리 때문에 빗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교문 앞에 엄마가 우산을 들고 서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엄마였다. 흰색 바탕에 핑크색 줄무늬가 그어진 티를 입고 머리를 하나로 묶은 엄마가 교문 앞에 서 있었다.

 

  “어제 비 올지 모른다고 우산 챙겨두라고 했는데 그냥 잠들었지?”

     

 엄마의 잔소리를 막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엄마를 안자 엄마 냄새와 비 냄새가 함께 났다. 우산을 안 챙겨서 좋은 날도 있구나, 엄마가 대신 책가방을 들어주었다. 엄마와 걸으면 재미없었던 학교에서의 오늘도 재밌었던 하루가 된다. 조잘조잘 떠들면서 내가 오늘 하루 이렇게까지 재밌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가서 뭐 만들어줄까?”

 “나 감자 샐러드 샌드위치!”

 “아침에 먹었잖아”

 “그건 아침이고”

     

 알겠다는 뜻으로 엄마가 손을 꽉 잡았다. 손이 따뜻했다.

     

 버스에서 내리자 햇빛에 눈이 부셨다. 하마터면 자다가 내려야 할 곳을 지나칠 뻔했다. 가까스로 버스를 세워 내렸다. 길을 건너려고 건널목에 서 있는데 갑자기 이유도 없이 울컥했다. 사람들이 계속 건너가고 몇 번째 신호가 바뀌는데도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도저히 약속 장소로 갈 수 없을 것 같았다.

     

  현관문을 열자 집 안이 조용했다. 거실로 들어오는 햇볕이 따스해 보였다.

 

  “엄마! 나 왔어."

     

 집 안이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 안방에 아무도 없었다. 장롱이 살짝 열려있었다. 어릴 때 내가 안 보이면 항상 장롱 안에 들어가 있었다고 엄마는 말했다. 이불이 쌓인 장롱 침대에 누워 살짝 열린 틈으로 밖을 보는 걸 좋아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곳에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장롱 안에 있으면 밖에서 말하는 소리가 물속에서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119 구급차에 실려 가던 엄마는 흰색 바탕에 핑크색 줄무늬가 그어진 티셔츠를 입고 머리를 묶고 있었다. 엄마 손이 차가웠다. 왜 장롱 속에 있었을까? 엄마도 거기 있어서 마음이 편안해졌을까? 몇 번을 다시 집에 가도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는 사람들과 잘 모르는 사람들까지 자꾸만 나를 걱정했다. 만날 때마다 내 기분을 살피는 사람들의 질문이나 눈빛이 부담스럽고 불편했다. 괜찮다는 말도 더는 하고 싶지 않았다. 그들이 보기엔 나는 이미 안 괜찮은 사람이었다. 점점 사람들과 만남이 꺼려지고 피곤했다. 엄마를 잃은 건 나인데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이 나 대신 울어주었다. 그럴 때마다 땅 밑으로 꺼지고 싶었다. 누군가 집에 있지 못하도록 등을 떠미는 것만 같았다. 평소처럼 아무렇지 않게 지각하고 싶은데 말이다. 불편한 마음이 커지면 기억나지 않는 척을 했다. 그러면 모두가 잠시 괜찮아질 수 있으니까.


     

 오후 세 시, 버스 안에서 만난 엄마를 떠올렸다. 감자 샐러드 샌드위치가 먹고 싶어 졌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때 놓치지 말고 물어볼 걸. 나를 잃어버렸던 날, 경찰서에서 엄마도 지금처럼 눈물이 멈추지 않았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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