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아웃 하시겠습니까?

by 이경



안녕 !




기분은 좋은데 오늘은 아니야.

오늘은 좋은데 기분은 아닌가..


이번 주 수요일엔 제빵사 실기 시험을 보고 왔지.

결과물은 좋아, 좋았어. (음, 좋았던 것 같아)

운 좋게도 공부해간 품목이 나왔고, 어렵지 않은 품목이었는데 재료 계량부터 헤맨 거 있지.

준비물 세트를 시험 전에 미리 인터넷으로 주문했는데 엄청 큰 쟁반이 온 거야.

뭐야, 이 쟁반은 하고선 안 챙겨갔는데 시험장 가서 알았잖아 쟁반의 용도를.. (아뿔싸)

모를 땐 무조건 챙기는 거야.

크고 무겁고 자시고 어쩌고 해도 말이야.

시험 다 끝나고 나서 후기를 찾아보는 나란 인간

정말 스마트 하지 못 함의 끝판왕 아니냐고

이러다 내 머리 하도 쥐어박아서 내 손에 뇌세포 다 죽는 거 아닌지..


지하철 타고 가면서 한 번에 붙겠다는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자고 그렇게 주문처럼 중얼거렸는데

아마 하도 중얼중얼거려서 정신 나간 사람으로 보았을 수도 있어.

면허 기능시험 볼 때 생각이 나더라고

하도 버벅거리니까 선생님이 꼭 붙어야겠다는 마음을 버리라고 했던 말. 언제나 조급해지면 망하니까.


반죽부터 망했어..

물을 조금만 더 넣겠다는 게 오바되게 넣은 거지.

거기다 감독관님이 오셔서 보시더니 물 더 넣었나요? 반죽이 질다고 하시는데 그때부터 마음속에 망했네, 망했어 소리가 안 꺼지는 거야. (망할)

아, 그냥 포기하고 나갈까?

이 마음이 어찌나 들던지.


반죽 살리랴, 정신 나간 멘탈 살리랴.

한 손으로 반죽 붙잡고, 넌 맛있는 빵이 될 수 있어.

다른 손으로 멘탈 붙잡고, 포기하지 마. 완성은 시켜야지.

동시 케어하느라 집에 와서 뻗었잖아.


불행 중 다행인 건

수업 때 선생님이 실수하더라도 티 내지 말고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라고 해서 일단 그렇게 하긴 했는데 결정적으로 난 연기를 못해. 로봇이면 다행이게 얼굴에 다 티가 난단 말이지.

그래도 최선을 다 했어.

망한 반죽치곤 결과물도 나쁘지 않게 나왔고.

무엇보다 내가 포기하지 않고 중간에 나오지 않았다는 게 놀라운 발전이랄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망했어도 끝까지 가보는 거 그게 중요한 거 아닐까.

어떤 일이 되었든, 사람하고의 관계가 되었든.

너무 일찍 로그아웃을 했던 건 아닐까.


사실은 진짜로 망한 게 아니었을 수도 있는데

끝까지 가봤으면 알 수 있었을 텐데.


아, 반죽을 살린 비법은

덧가루였어.

되직하게 되었으면 아마 못 살렸을 텐데

질어서 덧가루로 살릴 수 있었어.

인생의 덧가루는 기도가 아닐까?

제발요~

어떤 간절함 같은 것들.

기다림의 시간.

믿고 기다리는 거지.

그게 제일 어려운 일이지만.

그 어려운 걸 해내고,

합격 소식을 전할 수 있길 바라고 있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