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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 Mar 28. 2019

전원이 꺼져있습니다.

지난 일기  



 금요일, 전화 관련된 에피소드를 이야기했다. 집 가는 길에 문득 우리 집에 전화를 걸어보고 싶었다. 전원이 꺼져있다는 안내멘트가 나왔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전화 전원은 계속 꺼져있다. 할머니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장례가 끝나고 집 안에 있기가 힘들어서 밖에 나와 장독대 옆에 앉아 있었다. 5월의 햇살이 너무 따뜻해서였을까? 앉아 있는데 갑자기 눈물이 미친 듯이 쏟아졌다. 한참을 멍하니 앉아서 소리 없이 울다가 작은 방에 들어가 까무룩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사촌동생이 점심 먹으러 가야 한다고 나를 깨웠다. 동네 시장 안, 순댓국 집이었는데 처음 가보는 식당이었다. 순댓국을 먹는데 너무 맛있어서 목이 메었다. 알록달록 등산복을 입은 관광객들이 시장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웃고 떠드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아무 말 없이 순댓국만 퍼먹었다. 서울 가면 한 번은 생각 날 맛이라고 생각하면서. 


 아침에 눈 뜨자마자 엄마한테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전화 전원이 꺼져있는데 알았냐고 물었다. 그러네,라고 말했다. 부엌에서 밥 하는 엄마 뒤에 찰싹 붙어서 할머니가 보고 싶다고 했더니 아주 작게 나도,라고 엄마가 말했다. 엄마 등에 더 붙어있고 싶은데 늦기 전에 씻으라고 했다. 아침밥은 볶은 감자에 참기름, 잘게 썬 김치, 고추장을 넣고 비벼먹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아침이었다. 전화는 아직까지 전원이 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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