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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불시착 김택수 Mar 24. 2019

“기록의 시작. 그리고 기록은 아직 진행 중”

by 블루미

 “기록의 시작. 그리고 기록은 아직 진행 중”


 내 기록의 시작은 정말 보잘것없는 것이었다.

점점 많은 날들이 지나고 달이 지나고 해가 갈수록 나에게는 점점 꺼내지 못할 말들이 쌓여갔다. 남에게 함부로 내비칠 수 없는 그런 말들을 난 곧잘 삼켜내곤 했다.

하지만 때로는 다 삼켜내기가 너무도 벅찬 날들이 있었다. 그럴 때 나는 글자로 써 내려갔다. 


 마음이 너무 복잡하고 얽히고설켜 나조차도 이 감정의 뿌리가 짐작이 가지 않을 때, 종이 한 장과 연필 하나를 꺼내 그저 생각나는 대로 써 내려갔다. 욕도 써 보고, 연필을 손이 가는 대로 아무렇게나 끄적이며 차오르는 말들을 종이에 뱉었다. 그렇게 한참을 쓰고 나면 파도가 치던 감정의 수면은 어느샌가 제 물결을 찾아 일렁였다. 그렇게 내 ‘쓰기’의 행위는 시작되었다. 


 그리고 연필조차 꺼내기 귀찮은 어느 날에는, 트위터 계정을 하나 만들었다. 주소록 연동을 하지 않았다. 팔로잉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다음 아무도 보지 못하게 잠갔다. 그리고 한 줄, 두 줄 타자 닿는 대로 써 내려갔다. 오타도 신경 쓰지 않았다. 휴대폰에 나만의 비밀 일기장이 생긴 것이다. 때로는 내 감정 쓰레기통의 역할도 수행했다. 처음 만든 내 계정의 아이디는, partofme_blue였다. 나의 일부, 우울. 내 존재의 일부분이자, 부분을 차지하는 것. 우울을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내 글쓰기의 시작점이었다.


 그리고 나는 시도 때도 없이 어디서든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써댔다. 오늘 하늘의 색은 어땠는지, 구름의 모양은 어떠했는지부터 시작해서 내 마음에 드는 노래 가사, 책의 구절, 오늘 먹은 음식과 오늘 만난 사람 등 자질구레한 것까지. 그리고 내 기분이 어땠는지. 그리고 어떻게 변화했는지. 우울하고 외로운 날 나를 위험에 방치하지 않고 달달한 음식을 먹인 것에 대한 스스로의 칭찬 등. 그렇게 반년이 넘는 시간 동안, 트윗은 900개가 넘게 쌓였다. 그리고 트윗이 쌓이면 쌓일수록 내가 어떠한 사람인지에 대한 정보 또한 쌓여갔다. 나를 가장 몰랐던 내가 나에 대해서 좀 더 알게 되었다. 내일이 전혀 기대되지 않던 내가 미래의 내 모습을 궁금해 하기 시작했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마다, 다리 위를 건널 때마다 죽는 상상을 하던 내가 삶에 미련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고 싶은 것도 하나둘씩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들을 모두 적었다. 적어서 계속 봤고 지금도 본다.


 내가 좋아하는 뮤지컬 곡 가사의 일부분을 적어 놓은 트윗이 있다.

“살아온 날들과 사랑한 이들이

너무나 소중한 사람

지금의 나보다

내일의 내가 더 중요한 사람

나는 나를 말하는 사람”  『레드북_ 나는 나를 말하는 사람』


 처음 이 가사를 적을 때에는, 이 가사를 주문처럼 외웠다. 왜냐면 나의 현실은 그러하지 못했으니까. 나의 과거는 아픔과 외로움, 우울과 어두움으로 얼룩졌고 매일 밤마다 내일이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잠들었으니까. 그리고 이 세상으로부터 사라지는 것을 매일 꿈꾸며 그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입장 따위는 내 고려 대상이 아니었으니까.


“알아 떠나야 할 그때를

지금인 것 같아 good bye

혹시라도 날 찾게 된다면

혹시라도 날 걱정했다면 

괜찮아 걱정 마 나는 사라져야 해

그건 날 위해서야


혹시라도 날 기억한다면

혹시라도 날 추억한다면

아니야 괜찮아 나는 잊혀져야 해

그건 널 위해서야


어지러운 내 하루하루가 지옥 같은 오늘이

내일의 기대로 치유되기엔

너무 깊이 패어버려서 모른 척할 수 없어

가야 해 내가 떠나온 곳으로  『Good Bye_ lalasweet』


 이 가사를 중학생 때부터 끊임없이 유언처럼 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나는 나를 사랑해주는 이들이 있음을 알기에, 

그 마음들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으며 때로는 그 마음들이 너무 무겁게 느껴져 벅찰 때가 

있지만

그 사랑들이 나를 이 바닥에 발붙이고 또 일어서게 한다는 것을,

내가 힘들면 기꺼이 도와줄 이들이 있음을 알기에

나는 비로소 나를 끌어안을 수 있게 되었고 

또 남을 끌어안을 수 있게 되었다

나를 말할 수 있게 되었고 

끊임없이 나를 기록하며 나를 말하고 있다


 그래, 이것의 시작은

우울을 ‘나의’ 일부분, 나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고 기록하는 것이었다

내가 직접 남긴 그 기록들을 나의 기반으로 삼아

이제는 나는 나를 말하고 표현하는 것이 두렵지 않다.



by 블루미

instagram @blueme.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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