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경 Feb 21. 2022

같은 여름은 없듯이

괴담집 2017 







 여름엔 여름만이 가지는 저마다의 소리가 있다. 그런 소리들을 가만히 주워들으며 동훈은 바닥에 누워 열린 창문으로 바깥을 바라본다. 하늘이 보이고 구름이 보인다.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와 밖에선 쓰름매미가 시끄럽게 운다. 분명 올여름엔 작년보다 매미가 울지 않을 거라는 뉴스를 본 것 같은데 그 녀석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며 힘차게 울고 있다. 매미는 빛과 온도가 맞아야만 운다는데 여름의 방안은 이런 온도구나 온몸으로 느끼며, 동훈은 샤워를 하고 싶지만 몸을 일으켜 세울 수 없어 누워있다. 매미라는 곤충은 밤엔 울지 않는다. 매미가 울지 않는 밤에도 그가 자려고 누우면 꿈속에서 쓰름매미가 울고 있었다. 꿈에서 깨면 창밖의 매미가 그 소리를 이어가고 있었다. 


 자신의 집도 아닌 곳에서 며칠째 먹고, 자고, 숨 쉬고 있다. 도저히 자신의 방에 누워있을 수 없어서 이곳을 택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잘한 일인지 몰라 방안에만 누워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소희와 동훈은 7년 전, 대학생 해외봉사활동 프로그램을 통해 처음 만났다. 그때도 지금 같은 여름이었고, 태어나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나라에서 11박 12일이라는 시간을 함께 보냈다. 한국에서의 첫 모임이 있던 그날을 동훈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어딜 가든 첫 시간엔 자기소개 타임이 빠지지 않는데 한 명씩 앞으로 나가 다니고 있는 학교, 과, 나이, 이름, 봉사활동에 임하는 마음가짐 정도 말하면 되는 아주 간단한 자기소개였다. 하얀 피부에 키가 크고 깡마른 단발머리 여자애가 흔들리는 눈동자로 앞에 나와 섰다. 그녀의 눈망울이 일반 사람에 비해 크다고 동훈은 생각했다. 여자애는 앞에 나와서도 어디에 시선을 둬야 할지 몰라하며 저는, 저는이라는 말만 되풀이해서 하고 있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한 몇 초간 고개를 숙인 채 일어나지 않았다. 봉사단 선생님은 당황한 듯 그녀의 이름을 세 차례 정도 반복해서 불렀고, 여자아이들은 작게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다시 일어난 여자아이의 큰 눈망울에는 이슬이 맺혀있었다. 그걸 유일하게 알아본 사람은 자신 뿐일 거라고 동훈은 직감했다. 


 점심시간에 자신도 모르게 소희를 찾고 있었다.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세미나실을 돌며 어딘가 있을 소희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옥상 쉼터에 올라갔을 때,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소희의 뒷모습이 보였다. “여기서 뭐해요?” 소희가 아주 느리게 얼굴을 돌려 동훈을 바라봤다. 그녀의 얼굴 속에 그러는 너는?이라는 말이 담겨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눈만 껌뻑대고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소희가 다시 고개를 돌려 하늘을 보려고 하자 동훈이 다시 입을 뗐다. “점심시간인데…” 이번엔 소희가 대답을 할까 싶어 그녀의 입만 쳐다봤다. 무심하게 고개를 돌린 소희가 대꾸했다. “네.” 아주 짧은 대답이었다. “혼자 있고 싶은 거야. 나랑 대화가 하기 싫은 거야?” 속마음이 입 밖으로 나와버렸다. 동훈은 후회하면서도 이미 내뱉어 버린 질문의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자 소희가 동훈을 바라보며 웃기 시작했다. 입만 웃던 미소가 눈으로 볼로 점점 번져갔다. 대답은 하지 않고 그렇게 웃었다. 동훈은 영문도 모른 채 따라 웃었다. 그러자 그녀가 웃음을 그치고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예쁘지 않아요?” 동훈은 멍하게 소희의 얼굴과 하늘을 번갈아 가며 쳐다봤다. 아까 자기소개 시간에 주저앉았던 그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맑은 목소리를 가진 질문이었다. 그리고 그날 하늘은 거짓말처럼 무척 예뻤다. 



 작년부터 소희는 자주 캄보디아에 가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그곳이 자주 생각난다고. 캄보디아의 밤하늘이 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때마다 동훈은 나중에, 내년에, 라는 말로 그 말을 막아서곤 했다. 언제부터였을까? 함께 차를 타면 소희는 고개를 돌려 창밖만 바라봤다. 작은 말다툼이 산불처럼 번지는 날들이 잦았던 올 겨울이었다. 둘은 아무 말 없이 한강을 지나고 있었다. 소희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고, 동훈은 뻥 뚫리지 않는 도로 때문에 슬슬 짜증이 나려던 참이었다. 침묵을 깨고 입을 연건 소희였다. “캄보디아에 갈 거야.” 캄보디아라는 말에 동훈은 핸들을 더 꽉 잡았다. “언제?” 차가 아주 천천히 앞을 향해 가고 있었다. “최대한 빨리 가려고.” 소희는 창 밖으로 한강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녀의 옆모습을 지켜보던 동훈이 다시 입을 뗐다. “위험한데 꼭 지금 가야겠어? 나중에 같이 가도 되잖아.” 소희가 차문을 살짝 내렸다. 차가운 겨울 공기가 차 안으로 들어왔다. “소희야.”라고 다정한 걱정을 섞어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소희는 한참 동안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다시 한번 동훈이 말했다 “응? 소희야.” 대답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다시 한번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모두에게 피곤했던 저녁이었고, 동훈은 소희와 더 이상 이 문제로 입씨름을 하고 싶지 않았다. 소희가 창밖이 아닌 동훈을 바라보며 말했다. “누가 그래? 여긴 안전하다고.” 그녀의 눈망울이 어둠 속에서도 반짝였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소희의 말에 동훈은 점점 참을 수 없었다. “걱정이 될만한 일을 하면서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는 건 신종류의 괴롭힘인가 보네.” 차가운 바람이 두 사람의 뺨을 스치며 지나갔다. 소희는 차문 손잡이를 붙잡으며 말했다. “네가 걱정하는 사람이 누군데?” 


 소희는 정말 떠났다. 작은 편지가 그녀 집 냉장고 문에 붙어 있었고, 편지에는 ‘냉동고 열면 메로나 있어’라고 적혀있었다. 동훈은 그 편지를 들고선 오래 그 앞에 서있었다. 아무리 이해를 해보려고 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그랬다. 왜? 도대체 왜? 얼마나 있다 올 건지, 언제 돌아오는지 정도는 알려주어도 좋았을 텐데 편지 어디에도 언제 돌아온다는 말은 없었다. 공항에 도착했던 날, 짧은 문자가 왔다. ‘잘 도착했음.’ 캄보디아 공항에서 찍은 것 같은 하늘 사진과 함께. 그게 소희의 마지막 연락이었다. 문자만 남겨두고 소희는 사라졌다 완전히. 소희의 부모님은 딸을 찾기 위해 얼마 전, 캄보디아로 떠났다. 혼자 자취하던 소희의 서울 집엔 동훈이 남기로 했다. 그녀가 혹시 집으로 돌아올지도 모르니까. 주인 없는 집에서 산지 꼬박 한 달 열흘이 지났고, 그녀가 사라진 지 한 달 하고 이십삼 일이 지나가고 있었다. 어떻게 아침이 아침이 되는지, 저녁이 저녁이 되는지 모르는 날들을 보냈다. 시간이 가는지, 오는지 모든 것이 알 수 없게 되어버린 하루는 뒤죽박죽 섞여서 어떤 날인지, 무슨 요일인지, 먹는지, 자는지, 깨어있는지 경계가 없었다. 자면서도 깨어있는 것 같았고, 깨어있는데도 꿈인 것만 같았다. 한번 누우면 일어날 수 없어 그대로 하루를 지내고 겨우 일어나 아무거나 주워 먹었다. 꿈인 게 확실한데 아무리 노력해도 깨어나지 않았다. 욱여넣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의 맛을 느낄 수 없어 자꾸만 목이 말랐다. 아무리 물을 마셔도 목이 마르고 눈을 자주 깜박이는 나날들이었다. 


 거실에 누워있으면 아주 잠깐은 시원했다. 자다 깨면 소희의 방으로 들어갔다. 옆집에서 새어 들어오는 희미한 불빛이 거슬렸다. 그리고 생각났다. 함께 누워 저 불빛은 뭐냐고 물었던 일이 옆집 아저씨가 자꾸 티브이를 켜 둔 채 잠이 드는 것 같다고 소희는 말했었다. 혼자 사시는 분 같은데 매일 보지도 않는 티브이를 저렇게 켜 둔 채 잠이 든다고. 이상한 타이밍인데 동훈은 갑자기 울컥했다. 며칠 전에도 신호등 앞에서 오후 4시의 햇살 때문에 울컥했던 자신이 떠올랐다. 몸을 반대편으로 돌려 누웠다.  



 캄보디아의 밤은 일찍 찾아왔다. 길은 어두웠고, 전기가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모두 일찍 잠들었다. 막 짓기 시작한 학교에 봉사단이 잠깐 머물렀는데 잘 곳이 마땅치 않아 학교 교실에 모기장을 치고 잠을 잤다. 학교라고 불러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로 뻥 뚫린 공간이었다. 낮에는 더웠고, 밤에는 추웠다. 바닥에 누우면 큰 창으로 하늘이 보였다. 차가운 바닥에 누워 올려다보는 캄보디아의 하늘은 낯설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익숙했고 아주 까만 하늘이었지만 또, 선명하기도 했다. 동훈은 하늘을 보며 소희를 떠올렸다. 캄보디아의 밤하늘은 어떤지 묻고 싶었다. 나중에서야 안 사실이지만 그해만 방문했던 학교였고, 다음 해부터 그곳에 가지 않았다고 했다. 소희와 동훈은 서울에 돌아와서도 그곳에서의 밤을 잊지 못해 자주 이야기하곤 했었다. 어떤 순간들은 그 시간을 함께 보낸 사람이 아니고서는 말할 수 없는 시간도 있는 법이니까. 함께 소나기를 맞았던 일, 엄청나게 큰 소똥을 밟은 일, 아침 일찍 일어나 떠오르는 태양을 등지고 사진을 찍었던 일, 캄보디아 아이들의 맑고 투명한 눈, 매일을 먹어도 질리지 않았던 아침의 국수와 커피. 언제 말해도 좋았던 순간들. 소희는 그곳을 잊지 않으려고 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면서도 동훈은 종종 그곳을 잊었지만, 그녀만은 계속 기억하려고 애썼다. 누군가 왜 그렇게 그곳이 좋았냐고 물으면 어깨를 으쓱하면서도 그냥 모든 게 좋았다고 그녀는 늘 말했다. 남자 친구도 거기서 만났다고 말하는 그녀의 얼굴은 4살 아이 같은 구석이 있었고, 동훈은 그런 얼굴을 볼 때마다 발가락 끝이 간지러웠다. 


 소희는 침대에 누워 잠들 때까지 이야기하는 걸 좋아했다. 이야기의 주제는 다양했고 시답잖은 이야기가 대부분이었지만 동훈은 소희의 그런 재잘거림을 들으며 잠드는 밤이 좋았다. “이모들이 그러는데 여자는 신혼여행 때 추억으로 평생을 사는 거래” 동훈의 눈이 막 감기려던 찰나였다. “내 말 듣고 있어?” 그녀가 물었다. “응, 근데 나 너무 졸려 소희야 그래도 듣고 있으니까 말해줘”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나도 그만 잘래” 하고 소희가 말했다. “우리는 매일매일로 평생을 살자.” 킥하고 소희가 웃었다. 소희의 얼굴을 보려는데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던 밤이었다. 소희는 먼저 잠이 들었고,  동훈은 어둠 속에서 잠든 소희의 얼굴을 한참 동안 지켜봤다. 잡은 손을 놓지 않은 채로. 


 소희가 없는 집, 주인을 잃은 물건들. 그것들을 동훈은 매일 아침, 저녁으로 바라봤다. 분명 소희의 공간인데 점점 그녀가 밀려나고 있었다. 마치 동훈의 공간처럼 느껴졌고, 계속해서 자신만 보였다. 밖에선 여전히 쓰름매미가 울었고, 화장실에 앉아 울음소리를 들을 때면 매미가 그만 울었으면 좋겠다고 자주 생각했다. 진지하게 매미의 죽음에 대해 생각하다 언젠가 한번 소희가 물어봤던 것 같기도 하다. 그때 소희에게 왜 그런 게 궁금하냐고 물었었는데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매미가 울면 두 가지 마음이 들어. 여름이 왔구나, 그러면 이제 그만 울었으면 좋겠다.” 매미가 울어야 여름이지,라고 그녀에게 말했던 것 같은데 어느새 동훈도 소희와 같은 마음을 가지게 된 걸까? 아니다, 같아 보이지만 영 다른 것일 수도 있으리라. 내년이면 다시 또 매미가 울 것이다. 그래야 여름이 온 것을 알 테니까. 매년 매미의 울음소리는 똑같겠지만 이제 더 이상 자신에겐 같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동훈은 눈을 감으면서 자신이 기다리는 사람이 누군가 생각하며 하늘을 바라봤다. 여름의 소리가 하늘을 가득 메웠다. 






- 어떤 사람, 어떤 공간, 어떤 시간은 있었던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믿기지 않아 괴담으로 남기도 한다. 

  뒷이야기가 더 있을 것 같다는 피드백을 받았지만, 부러 더 쓰지 않았다. 

  그러는 편이 괴담에 더 가까우리라 생각되어서

  이곳에 남겨두는 일로 소희도 동훈도 영영 다른 곳으로 보내주려 한다.

  


   안녕, 잘 가. 












매거진의 이전글 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