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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가은 Oct 20. 2021

미생물 밥 주다 말고 광고회사 가기

당신이 원하는 일을 찾는 유일한 방법



앞서 설명한 대로 나에게 배우라는 꿈은 파르르 흔들리는 나의 동공으로 한편에 접어두게 됐다.

그렇게 마케팅 필드를 택해 현재까지 쭉 외길을 걸어온 것 같지만,

사실 내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 첫 전공은



'생명과학'이었다.




미생물 밥 말고

내 밥 챙겨 먹기




"너는 이과에 가도 잘하고 문과에 가도 잘할 거야."


고등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진로상담을 하며 내게 이런 말을 건넸다. 이과와 문과를 선택할 기로에 놓인 고딩 1학년들은 의례적으로 흥미 적성검사를 했는데, 나는 두 개의 성향이 딱 반반으로 나온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늘 국어, 문학, 수학, 과학 파트에서 항상 높은 성적을 내고 있었다. 어렸을 땐 활자중독 수준으로 책 읽는 것을 좋아했고, 중학생 때부터는 수학과 과학에 제법 흥미를 붙였다. 난 둘 다 좋아하는데 둘 중 하나를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나는 당시 우리 집 사정이 좋지 못한 것을 고려했다. 그리고 부산에서 병원장으로 있는 막내 이모 부부의 재력을 보며, 나도 이공계열 쪽으로 가서 돈을 왕창 벌어보겠노라고 결심을 했었더랬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나는 뼛속까지 ENFP성향이었다는 것. 그리고 무대체질과 뛰어난 언변을 지녔다는 것. 그에 비해 가벼운 엉덩이와 변덕이 심해 뒷심이 부족하다는 것도 말이다.


그렇게 원하는 학교에 생명과학부로 진학한 후, 미생물학 수업을 수강하고 있을 때였다.


시간은 밤 11시. 하얀색 실험가운을 입고, 연구실에 도착했다. 미생물이 잘 살아 있는지 살펴보며 배지에 먹이를 주려던 순간. 내 배에서 천둥 같은 꼬르륵 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낮부터 두꺼운 전공서적을 끼고 도서관에만 틀어박혀 있다가 저녁 먹는 것을 깜빡했던 것이었다.


아 배고파. 평소라면 근처 매점에 달려가 한 손에 쥐고 먹을 수 있는 주먹밥이나 떡을 사 왔겠지만, 순간 뭐에 맞은 듯 띵 하더니 이내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이 수업을 잘 마치고, 졸업하면? 석사생이 되면? 연구원 할 거야?'

'쭈욱 실험실에서 이렇게 연구하고 논문 쓰면서 살 수 있을까?'

'아니 그리고 일단, 너 미생물 밥 주면서 평생 니 밥은 거를 거야??'



아니. 싫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생물  주면서  밥은  걸러야 ?! 나의 깊은 내면에서 아우성이 들려왔다.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을  , 나는 항상 나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이렇게     뒤에는 네가 원하는 삶을   있느냐고. 네가 원하는 삶의 기준이 무엇이냐고. 적어도 네가 가진 재능을 많이 펼치며 지낼  있는 일은 무엇이냐고.  질문은 회사를 이직하거나 퇴사할 때도 똑같이 적용됐다. 마치  몸에 어떤 스위치가 나를  나답게 살도록 당겨주는  같은 느낌이다.


아무튼 첫 당겨짐을 느낀 건, 바로 저 실험실에서 미생물한테 밥을 줄 때의 일이었다.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이미 온몸으로 알고 있었다. 미생물 밥 주느라 내 밥도 못 먹는 삶은 진짜 싫었다. 그렇지만 쭉 대한민국 입시교육을 받고 막 대학생이 된 내가 배고프다고 전공을 바꾸긴 쉽지 않았다. 누가 들으면 그냥 가서 치킨이나 시켜먹고 와.라고 할 게 뻔하니까. 그래서 나는 내게 시간을 주기 수단으로 휴학계를 냈고, 엄마에게는 약대 시험을 준비한다고 뻥을 쳤다. 무서웠지만 용기를 냈다. 뻥칠 용기. 대신 그 길로 두 달간 알바를 해서 번 돈으로 유럽여행을 떠났다.



이내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마케팅으로 전공을 바꾸며 집과의 한바탕 소동이 있었지만,  나는 학부 마케팅 학회장 역임과 동시에 각종 공모전에서 대상을 타며 내가 선택한 길이 맞았다는 것을 온몸으로 증명해 보였다.



어떤 전공을 택해야 하는지 수없이 고민했지만

결국엔 자신이 원하는 삶으로 살아가게 되어있다는 것을 운 셈이다.



하지만...

정말 만약에

저 날 실험실에서 배가 고프지 않았다면

결과는 달랐을까..?





마케팅에도

이과와 문과가 있다니




나는 일을 시작하고 나서도 똑같은 관문에 부딪혔다. 마케팅에도 이과 쪽과 문과 쪽이 나뉜다는 것이었다.


2016년, 내가 취업할 당시에는 '그로스 해킹'이라는 책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책을 본 마케터들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고객의 퍼널을 분석해 매출 증진과 이탈률 최소화를 시키는 퍼포먼스 마케팅이 마케팅의 핵심이다라고 많이들 외치고 있었다. 데이터를 다룰 줄 아는 마케터가 앞으로는 가장 필요해질 것이며, 몸값도 가장 높다는 기사들도 쏟아졌다.


아시다시피 나는 야망이 꽤 높은 편이다. 비록 약대를 가는 전문직은 포기했지만, 마케팅 씬에서 가장 몸값 높게 쳐주는 그로스 해커가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고맙게도 당시 입사한 스타트업에서 만난 사수는 20년 차 퍼포먼스 마케팅 전문가였다. 나는 그의 옆에 앉아 빠르게 이 업무를 배울 수 있었다. 덕분에 GA는 물론이고, 모든 퍼포먼스 미디어 툴을 잘 다룰 수 있게 되었다. 배울 때는 눈물 나게 힘들었지만 지금은 워커로써의 나의 가치를 단번에 올려주어서 감사한 나의 첫 사수느님.


퍼포먼스 마케팅을 어느 정도 익혀보니, 매일 반복되는 수치와의 싸움과 분석만으로는 한 브랜드의 브랜딩을, 이미지를, 고객과의 소통을, 제품과 서비스에 날개를 달아주는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게다가.. 애당초 이과와 문과 머리가 반반 발달한 나에게도 숫자만 보는 일은 고역이었다. 데이터를 활용하면서 크리에이티브 영역의 일을 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유튜브나 미디어를 볼 때마다 나오는 재밌는 브랜드 광고 영상들이 나의 숨겨둔 창의적 모먼트를 꿈틀대게 만들었다.


당시에 내가 보고 있던 광고는 모 이커머스 광고였는데, 스토리라인이 너무 재밌고, 캠페인의 메인 카피도 정말 매력적이었다. 경쟁사로 인해 저물어가던 이커머스 브랜드를 단번에 이 광고로 다시 부활시켜 준 파격적인 광고였다. 브랜드가 직면한 문제를 크리에이티브로 해결할 수 있다니. 이 일이 너무나도 매력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캠페인과 광고에 대해 디깅을 하던 나는 그 해 해당 광고를 만든 회사로 이직을 했다.


이직한 광고회사에서도 미디어플래너 일을 하다 한차례 직무를 바꾸어 캠페인 제작자로 일했다. 현재는 더 재밌는 일을 많이 하고 싶어서 프리랜서 제작자 겸 크리에이터로 살고 있지만, 돌아보면 나의 직무 탐방기는 꽤나 진취적인 움직이었다.



누가 보면 뒤죽박죽 커리어처럼 보이지만, 조금씩 방향을 조정하며 보다 나에게  맞는 일을 찾아가는 중이다. 덕분에 정말로 숫자를 다룰  있으면서, 크리에이티브까지   있는 반반치킨 마케터가 되었다.



하나 확실한 것은, 해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것이다.

무수히 많은 회사와 직무와 일의 형태가 있듯

당신에게도 생각지 못한 재능과 적성과 잠재력이 있다.



그러니 끌리는 일이 있다면 그냥 해보면 좋겠다.

결국 해보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다.

내가  일이  맞는지, 정말 좋아하는 거였는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

대신 대충 하지 말고 제대로.



아마  실험실에서 배고프지 않았더라도 나는 이렇게 살았을  같다. 이것이야 말로 내가 원하는 삶에 가까워질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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