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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가은 Oct 11. 2021

안구진탕 환자의 숨겨둔 꿈

동공지진 배우를 보신 적 있나요



나에겐 비밀 두 가지가있다. 하나는 '안구진탕(Nystagmus)'이라는 병이 있다는 것과, 하나는 한 때 배우를 꿈꿨다는 것. 이 두개의 비밀은 사실 서로가 아주 상충되는 것이어서 스스로 입 밖에 꺼내본 적이 없는 얘기다. 안구진탕이라는 병명을 들어본 적 있는지 모르겠다. 짧게 말하면 무의식적으로 눈동자가 흔들리는 병이다.


드라마를 보고 있는데 눈동자가 흔들리며 대사를 하는 배우를 본다고 상상을 해보라. 처음엔 약간 놀랬다가, 다음엔 슬슬 무섭고 나중엔 약간 웃길 것이다. 마지막엔 저 배우때문에 극에 집중할 수 없다며 시청자 게시판에 글을 올릴지도 모른다.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 방법은 간단하다. 안구진탕을 앓고있는 배역을 맡던가, 데뷔를 하지 않던가.


그렇게 나는 평생동안 이 배역을 맡은 주인공으로 살고있다. 드라마 말고 현실에서 말이다. 어렸을 때 엄마 손을 잡고 안과를 자주 다녔던 기억이 난다. 의사선생님은 차가운 의자에 앉은 내 눈을 여러번 까뒤집고, 시큰할만큼 눈부신 빛으로 내 눈을 몇 번 비추고는 늘 같은 대사를 치셨다.


"이건 현대의학으로는 고칠 수 없습니다."


오 이러니 정말 불치병에 시달리는 여주인공 같은걸? 이라며 웃음짓기엔 이 병은 아주 귀찮고 성가신 모기처럼 늘 나를 따라다니며 괴롭혔다. 평소엔 다른 이들과 다를 것 없이 생활하다가도 어딘가에 집중하거나 정면을 응시할 때 내 동공은 사정없이 흔들렸다. 내가 면접을 볼 때도, 연극무대에 설 때도, 소개팅을 할 때도, 광고회사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도 눈동자는 내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부탁인데 오늘만큼은 봐줘'라고 빌어도 소용없었다.





눈동자가 흔들리는 이유는 초점을 맞추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러니 내가 살짝 고개를 돌려 눈의 초점이 맞으면 눈동자는 멈추고, 이내 다시 평범한 생활을 할 수 있다. 이 병이 티가 나지 않는 이유는 살짝 삐딱한 고개 덕분이다. 당연히 이 병의 존재조차 모르는 주위 사람들은 늘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너는 왜 사람을 째려봐, 폰을 왜 삐딱하게 봐, 지금 우는 거야?' 그러면 나는 '네가 예뻐서 쳐다봤는데?, 원래 자세가 안 좋아, 니 얘기에 감동했잖아-'라는 말들로 분위기를 전환시키곤 했다. 물론 진짜이기도 하니 오해는 마셔라. 상처받지도 않았으니 내가 한 말인데! 하며 놀라지도 마셔라. 나라도 나 같은 친구가 있었다면 분명 한 번쯤 물어봤을 거다.


흔들리는 눈으로 대학교 연극 무대에 섰던 날을 기억한다. 다행히 내가 맡은 배역은 현실의 사람들을 환상 속으로 끌어들여 현실을 포기하게 만드는 악독한 마녀 역이었다. 무서운 분장과 대사는 내 흔들리는 눈동자, 조명과 어우러져 관객들을 쏘아볼 때 아주 소름 끼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난생처음 본 눈동자 연기에 관객들은 '쟤 대학로에서 연극하다 온 애야? 연기 진짜 잘한다 x친' 하며 과격한 칭찬도 마구 퍼부어 주었다.


이럴 때 쓰는 말이다. '내 눈동자에 건배'



나는 이 짧은 경험을 끝으로 '배우'라는 선택지는 빠르게 덮을 수 있었다. 영화를 만드는 선배의 초대권이나 연극을 하는 친구의 전화를 받고 진솔하게 응원해 줄 수 있는 사람으로 현재는 족하다. 안진을 갖고도 활발히 연기 활동을 하는 외국 배우(프루잇 테일러 빈스)도 있으나, 나는 이 업에 인생을 걸만큼 큰 열망은 없었다.


대신 나는 배우처럼 '쓰고 표현하고 전달하면서 돈도 잘 버는' 마케팅 필드를 택했고, 전공을 바꾼 뒤 예상보다 더 좋은 결과물을 내며 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이후에도 원하던 두 곳의 회사를 다니며 스스로 만족스러운 성장을 했다. 나의 이 재능은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 빛을 발했고, 연기가 필수라던 사회생활도 곧 잘하게 만들어주었다. 브랜드와 광고를 만들며 결국 이 일이야말로 종합예술 같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올해 4월 돌연 사표를 냈지만, 오래전 접어둔 꿈과는 아주 별개의 이유였다. 5년간 몸담고 있던 브랜드와 마케팅 씬에서 더 재밌게 해 볼 수 있는 일과 형태를 찾고 싶었다. 브랜드와 영화가 합쳐진 다큐멘터리 필름이라든지, 브랜드와 프로그램이 합쳐진 콘텐츠라든지, 프리랜서로 일을 해본다든지, 하물며 이렇게 나의 얘기를 콘텐츠로 표현해 내는 일까지 다양하게 펼쳐보며 내 길을 찾고 싶었다.


멋져 보이는 단어로 포장했지만, 여전히 흔들리며 내 인생 방향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얘기다. 어떤 방향이든 이 드라마의 흐름은 뻔하다. 이리저리 흔들리고, 살짝 삐딱해 보이고, 남들과 조금 달라 보일지라도. 조금씩 고개를 돌리고 방향을 틀어 결국 선명한 나만의 초점을 찾아내는 여정이 될거라는 것이다.


긴 시간이 지나 이 글을 읽은 독자가 나에게 안부를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하는 사람이 되어있고 싶다.




여전히 내 눈동자는 흔들려.

의학기술은 발달 안 하고 뭐한데?

근데 내 삶의 초점은 잘 맞춰진 것 같아.

그래서 삐딱하고 꽤 선명하게 지내.




어딘가에서 선명한 눈으로 이 글을 읽고 있을

독자들의 눈동자에 건배를 보내며

흔들리는 눈동자의 앤가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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