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는미친 듯이오고, 수상한 남자도 쫒아오고
무더운 여름, 회사에 있는데 갑작스러운 폭우가 내렸다. 그냥 내리는 정도가 아니라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쏟아내리는 비. 이제는 비가 오면 이런 생각부터 떠올랐다. '아 집 진짜 습할 텐데, 제습기 하루 종일 돌려야겠네' 비가 온다는 건 작은 원룸에 사는 사람에게는 엄청난 사건이었다. 집에 돌아갔을 때 꿉꿉한 습기와 냄새가 덮칠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우울해졌다. 그러던 중 뒤에 앉은 동료의 한마디가 선명하게 귀에 꽂혔다.
"아! 창문 열고 나왔는데..."
뒤에 앉은 나의 동료는 나와 비슷하게 원룸에 자취하며 사는 친구였는데 창문 바로 옆에 침대가 놓여있다고 했다. 헤엑 비가 들이치면 당연히 침대 시트며, 이불이며, 바닥까지 다 젖어버릴 텐데. 그녀가 퇴근하고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집에 가면 벌어져있을 상황은 너무도 뻔했다. 젖어버린 방바닥을 다 닦은 후 눅눅하게 마를 이불빨래를 돌린 후, 꿉꿉한 침대 시트에 누워 자야 하는 사실. 팀장님께 상황을 설명하다 울컥해 보이던 동료는 결국 오후 반차를 내고 집으로 갔다. 그녀의 얘기를 들으며 덩달아 나도 울컥함이 올라왔다. 퇴근하고 가면 꿉꿉한 냄새가 날 내 반지하방이 생각나서.
자유와 책임은 공존한다. 집에 함께 사는 친구가 있었다면 욕이라도 해대면서 같이 치웠을 거다. 셰어하우스 아주머니가 집에 계셨다면 빨래를 걷고 문을 닫아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취를 한다는 건, 자유로운 집을 누리는 대신 집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도 혼자서 책임져야만 한다는 걸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피부로 와 닿았다. 천장에서 물이 새거나 곰팡이가 핀다거나 변기가 막히는 일은 생각보다 금방 찾아왔다. 겨울에는 수도관이 얼어버려 집 앞 목욕탕에서 씻고 출근한 적도 몇 번 있었다. 집을 수리해야 할 때면 집주인에게 이건 나의 과실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며 그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응대를 해야 했다. 자취는 자유일까, 생존일까. 최소한의 책임만 하고 겨우 오늘을 살아내던 3년 전 나에게는 처절한 생존임이 분명했다.
자취할 때 잘 살 기 위한 요소 마지막 네 번째는 <치안>이다.
이 날도 어김없이 비가 오는 날이었다.
평소보다 더 빨리 찾아온 어둠에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비 비린내를 맡으며 집 골목으로 틀어서 들어가는 순간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아까부터 비슷한 속도의 발걸음으로 내 뒤에 어떤 사람이 같이 걷고 있다는 느낌. 바닥을 쓱 둘러보는 척하며 뒤를 돌아보니 남색 운동화를 신은 어떤 남자였다. 이전에도 누군가가 나를 따라오는 것 같았지만 번번이 아니었다는 것을 경험했었기에 조금은 빠른 속도로 약간은 긴가민가 하며 앞을 보며 걸어갔다.
현재 위치에서 내 자취방으로 가는 루트는 이렇다. 첫 번째 골목에서 오른쪽, 편의점 앞에서 왼쪽, 코인 세탁소 앞에서는 다시 오른쪽으로 틀어 쭈욱 올라가야 한다. 그다음 주택가 4갈래 길이 나왔을 때, 왼쪽 대각선에 있는 빌라의 지하계단으로 내려가면 내 반지하 자취방이 나온다. 가는 길이 매우 고불고불하기에 같은 빌라사람이 아니고서는 이 루트를 결코 선택할 수 없다.
첫 번째 골목에서 오른쪽으로 꺾는 지점이 나왔을 때, 나는 전략을 바꿔 걸음속도를 늦췄다. 그 사람이 먼저 앞질러가길 바랬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내 뒤에 있었고 가는 방향이 계속 겹쳤다. 아니겠지. 아니겠지. 하면서 어느새 내 자취방 빌라 앞에 도착을 해버렸고, 나는 빠르게 내 반지하 계단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정말 소름 돋게도 그 사람이 반지하 계단을 따라 내려왔다. 내가 자취방 문 앞에 설 때까지 그는 내 바로 뒤에 서있었다.
숨이 막혔다. 떨렸고, 무서웠다. 여기서 문을 열면 무슨 일이든 당할 것 같았다. 짧은 순간에 머릿속으로 많은 것이 스쳐 지나갔다. 여기서 소리를 지르면 옆 집 사람들이 나와줄까? 5층에 사는 집주인 아저씨가 과연 바로 나올 수 있을까? 이판사판 미친년처럼 눈을 뒤집어 까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무섭게 다가간 후, 그 사람이 뒷걸음질을 치면 도망가볼까. 몸이 굳어버렸지만 문을 열 순 없으니 나는 천천히 뒤를 돌았다. 그 사람을 정면으로 쳐다봤다.
"누구세요?"
그는 나와 눈이 마주치고는 당황한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어.. 저 여기 앞집 이사 왔는데요.."
다행히 이번에도 틀렸다. 나는 아.. 네. 어색하게 인사를 하고는 후다닥 집 안으로 들어왔다. 혼자 오해해서 창피하다는 기분은 전혀 없었다. 남자 사람이 내가 사는 자취방 문 앞까지 뒤에 서있으면 혼자 사는 여자는 당연하게 이런 공포심을 느껴야 한다는 게 그저 서러웠다. 긴장된 상태로 무수히 많은 상상을 하며 걸었던 퇴근길이 끝나자 온 몸에 힘이 빠졌다. 집에 누구라도 있으면 하소연하고 싶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부모님, 남자 친구, 친한 친구에게 전화를 거는 것뿐이었다. 막상 그들이 전화를 받으면 나를 걱정할까 봐서, 누가 쫒아오길래 물어봤더니 앞집 사람이었어 깔깔하며 웃긴 에피소드로 넘기고 털어내야 했다.
2년 반의 자취생활을 하고서 나는 끝내 결혼을 결심했다. 독신주의라더니 거봐 일찍 결혼할 줄 알았어~라는 소릴 들어도 어쩔 수 없었다. 나는 혼자 살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하우스메이트 생활과 반지하 자취생활을 거쳐 나는 반드시 누군가와 함께 살아야 하는 사람임을 확신했다.
그 형태가 꼭 결혼일 필요는 없었으나, 나와 가장 잘 맞고, 편안하고, 서울 출퇴근을 왕복 3시간 하는 딱한 남자 친구와 시기와 마음이 아주 잘 맞았다. 27살에 결혼을 할 때는 다들 수근댔다. 쟤 임신한 거 아니야? 하며.
3년을 둘이 살아보며 지금은 우리가 '결혼'을 가장한 '하우스메이트'라고 설명하곤 한다. 지속가능한 독립생활이 보장되는 결혼이 정말 가능한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쉐어하우스와 하숙집과 자취생활을 거쳐 애정하는 남자와 다시 함께 산다. 함께 산 이후부터는 서로가 각자의 커리어에 집중하며 안정된 주거에 꽤나 만족해 하고 있는 중이다.
첫 하우스메이트였던 독신주의 언니는 아직도 하숙집을 운영할까. 10년이 넘은 남자친구와는 아직도 연애중일까. 우리에게 집에서 함께 산다는 건 무엇이었을까. 함께 살고, 함께 음식을 먹고, 한 공간에서 일을하며 같이 사는 것 말이다. 실로 복잡하고 다소 부대끼고 불편한 점도 많았지만, 그때도 지금도 우리는 계속 누군가와 산다. 혼자라고? 그것이야말로 온전히 나를 직면하며 나와 함께 사는 것이다. 나를 키워내고 먹여주고 재워주며.
가장 나에게 편안하고 좋은 방법으로
오늘도 내일도 함께 살았으면 좋겠다
나와 함께 하는 누군가와 그리고 집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