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것도 될, 마음’

[모른 채로 시작했기에 가능했다] Ep.9

by Annie


예비부부이자 2인 제작자. 60평 작업실 셀프 인테리어 중. 테이블웨어와 가구 제작을 시작으로 인테리어까지 손을 댔다.


결혼까지 남은 기간 동안 오빠와 함께 살 집을 마련하기 위해 임대 주택에 지원서를 넣었다. 작은 평수지만 우리에게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작업실 외 지출을 크게 줄일 수만 있다면 어디든 좋았다. 오빠와 나는 사는 지역이 달랐는데, 나를 위해 거주지를 옮겨주었다. 그것이 벌써 3년이 지났다. 누군가를 위해 낯선 곳에 산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거다. 너무나 고마울 따름이다. 우리는 매일을 함께하지만, 함께 살 집을 구하는 것은 조금 더 큰 의미로 다가왔다. 작지만 알차게 살고픈 욕구가 솟구친다.


발표는 몇 개월이 남았다. 그럼에도 벌써 노트북 앞에 앉아 집 구조를 만들고 가구배치를 마쳤다. 이런 추진력이 다른 부분에서 발휘되면 참 좋겠단 생각이 문득 든다. 미래를 위해 나아갈 다짐을 했다. 이럴 때만큼은 현실에서 완벽히 벗어나 조금 더 행복한 상상을 해본다.




새로운 시장에 들어가다.


작년, 주말마다 나가던 플리마켓에 명함이 들어왔다. 입점 제안이었다. 눈여겨보던 곳이라 빠른 고민 끝에 결정을 내렸다. 주변은 이미 브랜드로 꽉 차있는 공간이라 쉽지 않은 경쟁이 될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장사는 해보지 않으면 모른다고,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우리는 집기를 직접 제작해 들어가는 방향으로 계획을 세웠다.


물품을 어떻게 진열하여 판매할지 기획서를 제출했고, 승인을 받은 뒤 본격적인 준비는 시작되었다. 집기를 배치할 공간은 사다리꼴 형태였다. 이 구조를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하며 시안을 그려보았다.


판매 기획서
모델링으로 구현해본 매장



임시 작업대를 만들기로


작업실 도색을 막 마친 상황에서 집기 제작을 시작하게 되었다. 청소가 안된 것은 물론이거니와 작업대를 만들기 전이기 때문에 컴퓨터를 올려놓을 자리조차 없었다.


일단 임시로 작업할 곳이라도 만들자. 몇 년 전 플리마켓을 돌 때 사용하던 1800 사이즈의 테이블을 작업실로 가져왔다. 상처가 나지 않게 마스킹 테이프로 테이블을 감쌌다. 이 테이블이 이렇게 쓰일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내심 기분이 좋았다. 플리마켓에서 판매할 때 사용하던 테이블이 작업실에 있다는 게, 오래 걸렸지만 발전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우리는 좁디좁은 테이블 앞에 앉아 도면을 만들고 상의하기 시작했다.




재료 구매


일반적으로 목재에 색을 입힐 때, 스테인을 사용한다. 진한 밤색을 내기 위해 삼화페인트에서 목재용 스테인과 필요한 부자재를 구매해 왔다.


구매한 목재는 여러 차례에 걸쳐 계단으로 올렸다. 제작해야 할 집기의 수가 많고 크기도 커서, 꽤 많은 양의 목재가 필요했다. 집기 제작에는 비교적 저렴한 합판을 사용하기로 했다.


스테인 색상표
사용할 합판재를 모두 옮겼다.



아끼는 도구


오빠가 목공 학원을 다닐 때 화이트오크로 서랍장을 만들었다. 그때 남았던 자투리로 작은 망치 하나를 만들어 왔는데, 여러 겹의 나무를 본드로 붙여 집성해 두께감 있는 망치였다. 지금도 아주 단단하고 갈라진 곳이 없다. 손에 감기는 느낌이 좋고, 무엇보다 색감이 갈수록 은은히 짙어지는 것이 참 마음에 든다.


한동안 쓸 일 없던 망치를 집기 제작을 하면서 처음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도구는 쓰면 쓸수록 더 내 것이 되어가는 느낌이 들어서 좋다. 게다가 자투리로 만들었다는 점이 큰 장점이다. 남는 나무만 잘 활용해도 좋은 물건들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아 자투리는 모아두는 편이다. 화이트 오크는 쉽게 버리기 아까운 고급 목재이기도 하다.


화이트 오크에 오일칠 마감



작업실, 첫 가구


작업실에서 가구 제작은 처음이다. 주어진 시간은 일주일 정도였고, 세어보니 약 11개의 큰 집기를 만들어야 했다. 시간적 여유가 부족하다 보니 두 명이서 모든 것을 제작하는 일이 많이 벅찼다. 하지만 납품을 한다는 마음으로 임하다 보니 조금 더 빠릿빠릿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오빠는 도면에 맞춰 재단을 맡았고, 나는 샌딩과 면 다듬기 등 보조 작업을 담당했다. 이렇게 급히 가구를 제작해 본 것은 처음이었다.


당시 우리는 천장 색상을 회색에서 흰색으로 도색하고, 레일 조명도 교체 전이라 조명이 겨우 세 개 정도 달려있는 상태였다. 저녁이 되면 작업실이 매우 어두워 작업이 쉽지 않았지만 답은 하나였다. 기한 내 제작을 완료하는 것. 퇴근 생각은커녕, 다시 작업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간이 작업대가 된 사다리
그새 눈이 내린 작업실



남기는 글


오늘로써 10개의 에피소드가 채워졌습니다. 이 글 안에는 약 5개월간의 시간이 담겼는데요. 앞으로도 이야기가 남아있으니 흥미롭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겨울이 오기까지도 몇 달이 남지 않았다는 것이 공기로 체감되는 요즈음입니다. 올해는 또 어떤 추위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다행히도 저희 작업실에 히터는 생겼습니다만, 전기세에 등윳값 등 여러 지출은 피할 수가 없겠죠. 올해가 가기 전 소망이라면 내년에 집이 생겨 공간을 꾸려가는 글을 적어보고픈 마음입니다.



가까운 꿈이 되기를 바라며.


[모른 채로 시작했기에 가능했다] Ep.10에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