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주의라는 그럴싸한 핑계'

[모른 채로 시작했기에 가능했다] Ep.15

by Annie


예비부부이자 2인 제작자. 60평 작업실 셀프 인테리어 중. 테이블웨어와 가구 제작을 시작으로 인테리어까지 손을 댔다.


미루는 마음은 어디로부터 온 걸까. 딱히 거창한 이유를 붙일만한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자꾸만 뒤로 밀리게 되는 일이 있었다. 작업실을 계약하고 보낸 지난 일 년, 제대로 일하고 있다고 느낀 날은 많지 않았다. 쉬지 않고 움직였다는 사실과는 별개였다. 몸은 바빴을지언정 마음은 쉽게 늘어지고 지쳐있었다. 스스로 안정되었다고 믿었던 마음이 무색하리만큼, 작년은 내게 버거운 해가 되었다.



작업실에는 두 개의 화장실이 있다. 문마다 손잡이가 있어야 할 자리에 구멍이 하나씩 나 있었다. 텅 빈자리를 바라보며 어떤 손잡이를 달아야 할지 고민을 했다. 타카가 가득 쏘여진 문이지만 문짝 자체를 바꿀 생각은 없었다. 아낄 건 아껴야지라는 생각으로. 하지만 고민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손잡이는 화이트 오크 현관에 어울릴만한 미니멀한 디자인이면 좋겠어.'

'색상은 회색이 좋겠는데, 너무 차가워보이지 않았으면 해.‘


모든 조건을 완벽하게 맞추고자 하는 욕심이 들수록 결정은 점차 유예됐다. 완벽해지려는 마음은 아이러니하게도 상황을 불완전한 상태로 만들었고, 손잡이 없는 문은 몇 개월이 되도록 구멍이 뚫린 채 방치되었다.



문 손잡이 설치


그러던 어느 날 오랫동안 마음속으로 그려온 물건을 마주했다. 잠시 좀 찾아볼까 하며 집중했던 순간에 말이다. 원하던 것을 찾은 기쁨은 마음 깊은 곳에서 가득 밀려왔다. 그 이면에는 그동안 흘려보낸 시간에 대한 아쉬움도 함께했다. 고작 손잡이 하나 다는데 이렇게나 시간이 걸려야 했을까? 하는 자책 섞인 물음에서였다.


무언가 찾아 헤매는 시간이 내 안의 막연한 취향을 정의하는 과정이었을지 모르겠지만, 그동안 흘려보낸 시간을 탐색이라 정의하며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을까.


구매한 문 손잡이



문 손잡이 구매처: RYXX (서클라인 311 소프트블랙)



내부 잠금장치/도어 스토퍼 설치


내부 잠금 장치
도어 스토퍼


잠금장치 구매처: 철물특공대 (V2 다크그레이)

도어 스토퍼 구매처: 철물특공대 (A-23 DH스프링 다크니켈 110)



컨벡터 설치


컨벡터 구매처: Mill


겨울 작업실은 정직하다. 한 시간을 꼬박 버텨야지만 차가웠던 공기에 온기가 조금이나마 돌기 시작한다. 아침 출근길이면 양말 두 겹을 신고, 두툼한 패딩과 모자로 무장하는 것은 하루 일과가 되었다. 이 정도로는 손님을 맞이하기 부족하다는 생각에 커다란 난로를 추가로 들일지 이른 아침부터 오빠와 상의를 나누었다.


“그래도 화장실은 기본적으로 따뜻해야지 않을까?”

“맞네. 나무 보관할 곳도 아닌데.”


그렇게 우리는 한 곳씩 월동채비를 해나갔다. 우선 화장실에 작은 컨벡터 하나와 온열 변기를 설치했다. 공간이 작으니 작업실에서 유일하게 온기가 빠르게 도는 공간이 되었다. 신기하게도 손잡이를 하나 달기 시작하니 안 보였던 일들이 순차적으로 보이고, 점진적으로 해결이 되어나갔다.



클램프 거치대 제작


마찬가지로 후순위로 밀려나있던 클램프 거치대도 제 자리를 찾았다. 널브러진 클램프를 정리하기로 하고, 오빠는 가장 실용적이면서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디자인을 뽑았다. 우리는 플리마켓에 납품할 집기를 제작하고 남았던 합판을 활용하기로 했다.


검은색으로 도색되어 마무리된 거치대를 보니, 버려질 수 있었던 목재를 잘 활용했다는 뿌듯함이 들었다. 완성된 거치대에 클램프를 하나씩 함께 걸었다. 제자리를 찾은 듯 딱 떨어지게 들어맞는 클램프들을 보니 기분이 무척 좋았다.



언제나 뼈저리게 느끼면서도 쉽게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 ‘시작이 반’이라는 진부하고도 맞는 말을 실행하는 것. 시작만 해도 내 삶의 수많은 난제가 해답을 찾을 텐데, 그 당연한 행동이 내게는 이토록 쉽지 않을까.


그동안 나는 완벽주의라는 핑계로 야금야금 미루며,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그럴싸한 이유로 포장해 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모른 채로 시작했기에 가능했다] Ep.16에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