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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니 Jan 28. 2022

방송이 죽거나, 혹은 내가 죽거나

프리랜서는 24시간 업무 중


첫 방송작가의 시작은 C방송사의 교양 막내작가였다. 그때는 프리랜서만 되면 말 그대로 모든 게 프리 해지는 줄 알았다. 구성작가 아카데미에 다닐 때 '왜 작가가 되고 싶냐'는 작가님의 질문에 다수가 '출퇴근이 정해져 있는 일은 못할 거 같아서요. 매일 반복되는 일상은 지루할 거 같아서 프리랜서로 일하고 싶어요.'라고 대답했다. 그때는 프리랜서는 내가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내가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는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철석같이 믿었고 그 믿음은 첫 프로그램에서부터 무너져 내렸다.


방송국에서 일하는 사람을 꿈꿨다면 누구나 한 번쯤은 일해보고 싶은 방송사 C사는 나에게도 꿈의 일터였다. 첫 회사를 C사로 시작한다는 설렘은 앞으로 내가 걸을 길에 꽃길만이 펼쳐질 거라고 믿게 만들었다. 그토록 원하던 방송국 출입증을 목에 걸고, 노트북을 넣은 가방을 메고 한 손에 커피를 든 채 출근하는 걸 상상하니 웃음이 피식피식 새어 나왔다. 처음 설렘의 순간은 찰나였다는 걸 미리 알았더라면 나는 그때 덜 기뻐하고 행복해할 걸 너무 많은 기쁨을 그 순간에 쏟은 걸 지금은 후회한다.


"그래. 꽃길은 사실 비포장도로야.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는데, 죽을 수도 있다." - 멜로가 체질 中


프리랜서에게 출근 시간은 있지만, 퇴근 시간은 없었다. 첫 출근부터 퇴근시간은 막차시간이었다. 막차를 타고 집 가는 건 몇 번 반복하니 괜찮아졌지만 더 못 참는 건 배고픔이었다. 밥을 잊은 메인 언니로 인해 원래도 고장 났던 식습관이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오전 11시까지 출근해서 오후 2시를 넘어서야 밥 먹고 오라고 하는 메인 언니 말에 나는 오후 2시를 넘어서야 첫 끼를 먹었다. 메인 언니의 태도보다 더 충격이었던 건 "지금 점심 먹으면 사람 없고 좋아. 메인 언니는 점심 안 드시고"라고 익숙하다는 듯 얘기하는 서브 언니의 태도였다. 충격은 받았지만, 밥은 먹어야 했다. 나는 그날 숟가락으로 열심히 밥을 퍼먹었고 그런 나를 보며 언니는 저녁도 먹게 해 줄 테니 천천히 먹으라고 말했지만 역시 저녁은 보지도 못하고 막차에 몸을 실었다. 앉을자리가 널린 텅 빈 버스가 그날은 너무 싫었다. 금요일 막차버스는 쓸쓸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10분 전까지 마주 앉아 있던 메인 언니에게서 카톡이 왔다. <주말에 해야 할 것> 다음 날이 주말이라는 걸 기뻐하기도 전에 빼곡하게 적힌 카톡에, 흔들리는 버스에, 멀미처럼 속이 울렁거렸다. 하필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는 '우리의 일주일은 월화수 목금금 금'이 흘러나왔고 막내작가 시작 후 처음으로 버스에서 어린애처럼 펑펑 울었다.


퇴근해서도 지옥은 계속되었다. 새벽 3시에 카톡은 물론, 카톡에 답장을 하지 않으면 전화를 하는 행동까지. 그 압박에 매일을 가위에 시달렸다. 그 와중에 쓸데없는 오기로 촬영 날까지 버텼다. 촬영하면 하루는 쉬게 해 준다는 말을 또 바보같이 믿었다. 아직도 누군가가 나에게 '방송국에서 뭐가 제일 좋아?'라고 물어오면 나는 '숙직실'이라고 대답한다. 나와 같은 사람들이 시체처럼 잠들어 있는 곳, 집보다는 덜 따뜻하고 사무실보다는 훨씬 따뜻한 숙직실에서 촬영 전 날은 필수로 자야 했다. 밤 12시에 숙직실에 와서 '새벽 3시' 알람을 맞추고 잠들었지만 내가 잠에서 깬 건 알람 소리가 아닌 서브 언니의 전화였다. 아마 지금도 알람은 못 들어도 전화 진동 혹은 소리에는 번쩍 깨는 것도 이때의 트라우마 때문이 아닌가 싶다. 새벽 3시에 촬영 준비를 시작으로 오후 네다섯 시쯤 되어서야 촬영이 끝이 났다. 방송국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나를 비롯한 서브 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넋이 나간 채 창밖만 보고 있을 때 메인 언니에게서 카톡이 왔다.


<모두 고생했고 오늘 푹 쉬어. 그리고 막내는 내일 미리 보기 써놓은 거 책상 위에 올려두고 도서관 다녀와. 대여할 책 목록 보내줄게>


차오르는 눈물에 고개를 뒤로 젖히고 화면은 보지도 않고 '넵!'이라고 대답했다. 그다음 내가 할 일은 방송국에 취업하더니 매일 늦게 집에 들어가거나, 혹은 안 들어가는 딸을 걱정하는 엄마한테 연락하는 거였다.


엄마 나 오늘도 못 들어갈 거 같아


푹 쉬라고 했지만 푹 쉴 수 없는 프리랜서는 오늘도 24시간 업무 중. 연중무휴. 빨간 날도 업무 합니다.


그리고 나는 그 촬영을 끝으로 C사 교양 프로그램을 탈출했다. 방송이 죽거나, 내가 죽거나 선택지에서 나는 내가 죽을 거 같아서 방송이 죽길 바라면서 새벽같이 편지를 써놓고 도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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