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애니 Mar 21. 2023

브런치에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 속 이야기


브런치 작가가 되고 1년이 넘게 흘렀다. 처음 브런치 작가가 되었을 땐 회사에서 받은 권고사직이 온 머릿속을 뒤엎고 있어서 글을 써야 겠단 생각보단 "앞으로 어떻게 살지?"란 생각이 더 컸기에 글을 안 썼고, 1년이 넘게 흐른 지금도 역시나 "앞으로 어떻게 살지?"란 생각이 마음과 머릿속을 더 크게 차지하고 있다. 


1년이란 길다면 길고, 짧으면 짧은 시간 동안 나는 다시 새로운 회사에 입사했다가 퇴사를 했고, 가고 싶은 기업들에 면접을 보고 탈락과 합격의 단짠단짠 같은 결과들을 받았으며 결국 프리랜서 헤드헌터로 하루살이처럼 살아가고 있다. 


브런치 작가만 되면 그 동안 잠들기 전 일기장에만 적었던 나의 속 이야기를 속시원하게 털어놓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 털어놓은 이야기는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으며 "역시 이 세상에 최고의 위로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라 생각하며 위로를 받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을 1년을 했다. 너무 많은 생각을 한 탓인지 흰 백지였던 머리는 어느 새 볼펜으로 아무렇게나 그어 만든 어두운 원들만 가득차기 시작했다. 그 어두워진 원들 틈에서 한줄기 빛 같은 글을 꺼내보려고 했지만, 엉키고 엉켜버린 검은 선들을 하나 하나 해치우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가장 쉬운 방법인 "글 쓰기 포기"를 선택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이끌어 내는 나의 이야기를 쓰겠다는 멋진 생각은 가장 쉬운 방법으로 다시 잠들기 전 일기장으로 갇히고 말았다. 글을 하나 올리고 오랜 시간 글을 업로드 하지 않으면 브런치는 쿠션어를 가득 담아 마음의 상처를 입히지 않은 말들로 글을 써보라며 알람을 보냈고, 어지러운 생각들로 가득한 나에게 그 알람은 통장에서 잔고가 빠져나갔다는 알림보다 더 무섭게 다가왔다. 



이렇게 재촉해도 글을 쓰지 않는 내가 브런치 작가의 자격이 있는걸까? 출 퇴근 길에 브런치 앱을 켜서 글을 주루룩 훑어보면 너도 나도 잘 살고 있고, 앞으로 잘 살아갈 거란 글들이 수두룩 빽빽인데 이 많은 글들 사이에 내가 글 하나 적지 않는다고 브런치가 망하는 것도 아닐텐데...이제 내가 브런치를 지원할 때 어떤 글을 쓰겠다고 적었는지 조차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그럼 도대체 나는 브런치에 뭘 적어야 하지? 



포기의 다음 단계는 핑계였다. 내가 글을 쓰기를 포기한 핑계를 하나 둘 만들어 내고 있었다. 브런치에 들어와서 글쓰기 까지 한 다음, "이 글은 너무 엉터리야! 발행할 수 없어! 이따가 수정 하고 올리자!" 하고 저장만 해 놓은 글이 벌써 한 페이지의 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더 이상은 브런치에 미안해서 안되겠어!" 글 쓰기를 포기한 핑계에서, 이제 글을 써야 하는 핑계를 만들어내야 했다. 엉켜버린 머릿 속 검은 선들을 하나 하나 풀 수 없다면, 환경과 나무에게 미안하지만 그 종이는 찢어서 버리기로 했다. 다시 하얀 백지 위에 이번에는 조금 더 조심스럽게, 그리고 정성스럽게 한 글자 한 글자 또박 또박 적어보기로 했다. 


글 쓰기를 포기한 나에게, 포기하지 않고 알림을 보내는 브런치에게 미안한 마음을 넘어 부끄러워 지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다시 글을 써야 했다. 글 하나 쓰지 않는 나를 스스로 '작가'라고 말하는 게 우수워지지 말아야 했다. 이게 나의 브런치에 글을 써야 하는 핑계가 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나의 할아버지 장례 일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