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는 망했고, 권고사직을 당했고, 1년이 흘렀다.
아이폰 사진첩은 가끔 뜬금없이 '1년 전 오늘'이라며 1년 전에 찍은 사진을 보여준다. 그 알림 때문에 1년 전을 다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찾아왔다. 사실 권고사직을 당한 건 22년 1월, 1년 보다 조금 더 전의 일이다. 지금이야 어려워진 회사들도 많고 권고사직을 당한 사람들이 많지만 그 당시엔 주변에서 권고사직을 당한 사람들을 찾기 어려웠다.
작년 내가 혼자 끄적이던 글의 모든 시작은 '회사는 망했고, 나는 권고사직을 당했다.' 였던 거 같다. 그만큼 나에게는 꽤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매일 회의실에 모여 점심을 먹던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눈빛 하나 주고받지 않는 남남이 되었고, 수습기간도 채 다니지 못하고 권고사직 대상자가 되어버린 나는 다른 누구보다 더 막막했다. 그놈의 수습기간이 뭔지, 수습기간을 끝내지 못한 사람은 '법'의 보호도 받지 못한다는 걸 그때 알게 되었다.
크고 유명한 회사, 혹은 앞으로의 성장을 기대해 볼 만해서 투자를 여러 차례 받았던 유망 기업이면 권고사직 당했다고 대문짝만 하게 뉴스에라도 뜰 텐데 아쉽게도 내가 다닌 회사는 10년이 넘었지만 알아주는 사람 없는 그저 중소기업 중에 중소였다. 회사 말로는 스타트업이라는데 10년 동안 스타트업이면, 스타트업이 아니라 스탑트업이지 않을까 싶다.
설 연휴에 설 선물세트가 아닌 회사에 가져다 놓은 짐을 쇼핑백에 쑤셔 넣은 채로 택시를 타고 집으로 오는 기분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눈물이라도 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내가 눈물을 흘린 건 시간이 좀 더 흘러 내가 겪은 일이 현실이라는 걸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사람들에겐 웃긴 에피소드로 떠벌리고 다니던 나의 권고사직 경험담이, 그 사람들 앞에서 "괜찮아~"라고 얘기하던 그 괜찮은 마음이 쌓이고 쌓여 결국 서러움으로 복받쳐 눈물이 쏟아졌다.
하루아침에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백수가 되었는데 그게 어떻게 괜찮을 수가 있겠는가. 지금 생각해 보면 참 감정의 솔직하지 못했다. 지금 겪었다면 '권고사직 당한 사람들의 모임' '권당사' 오픈채팅방이라도 만들어서 온갖 회사에 대한 욕들을 나눌 사람이라도 있었겠지만, 그 당시엔 아무도 없었고, 위로의 말을 들어도 결국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의 위로이기에 그렇게 큰 위로가 되어 돌아오지 않았다.
1년이 더 지났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눈앞에 캄캄할 정도로 막막했던 거 같다. 일은 해야 하지만 안정적인 회사에 들어가야 할 거 같고, 그렇다고 정말 내가 원하는 일이 뭔지 제대로 파악하기도 힘든 시기. 당장 매달 나가는 고정지출에 마음은 급하지만 그렇다고 또 쉽게 멘탈이 회복되지는 않는 시기. 지금은 오히려 그때의 경험으로 사람들의 이직을 도와주는 '헤드헌터'로 일을 하고 있다.
그 당시라면 절대로 해주지 못할 말들을 오히려 1년이 지난 뒤에 한 걸음 뒤에서 그 상황을 보고 생각하니, 해줄 말들이 많아졌다. 권고사직이 결코 나의 커리어의 끝이 아니며, 오히려 지금 이 위기의 순간이 나의 커리어를 더욱 괜찮게 쌓아 올릴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반대로 오히려 이 위기에 사로잡혀 흐려진 시야로 나의 커리어를 망칠 수도 있는 때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권고사직을 당했다면, 오히려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그 당시 나는 조급한 마음에 오히려 잘못된 선택을 해서 나의 커리어를 더욱 꼬아버린 케이스가 되어버렸다. 오히려 더 똑바로 정신을 차리고 앞으로 내가 쌓고 싶은 커리어가 어떤 방향인지 스스로 이력서를 수정해 가며 다시 잘 세워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내가 쌓고 싶은 커리어를 잘 세워봤다면, 이후엔 면접에서 오히려 좋은 이직 사유로 작용되기도 한다. 나의 의지가 아닌, 회사의 경영 어려움은 나를 더 좋고, 안정적인 회사로 한 번 정도 보내줄 수 있는 좋은 핑계가 되기도 한다. 다만 이 경우엔 내가 그동안 회사에서 잘 쌓아온 경험과 성과가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
올해 초부터 뉴스만 켜면 회사가 어려워져 권고사직, 해고 등 회사를 관둬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지금은 조금 조용해졌지만 '왜 이런 일이 나한테만...'이라고 생각하며 방 안에서 우울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당신만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전하고 싶다. 누군가는 10년 전에, 또 누군가는 1년 전에, 어떤 사람은 1년 뒤에, 또 더 나아가 10년 뒤에도 이런 일은 누군가가 겪을 수도 있는 일이라는 걸, 그걸 당신은 운이 조금 나빠 지금 당했고, 어쩌면 운이 좋아 지금 당했다고. (오히려 임원급 혹은 나이가 많은 시기에 이런 일을 겪는다면 이직도 어려울 수 있다.)
그 당시엔 "괜찮아. 더 좋은 곳 갈 수 있을 거야. 많이 일어나는 일이야."라는 말을 믿지 않았고, 의심했고, 나 혼자 우울해했다. 근데 정말 1년 뒤에 많은 사람들이 겪는 일이 되었다. 그러니 너무 속상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히려 위기를 극복하고, 성공한 케이스로 써먹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