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훈은 얻지만 내 나름대로 살아가려고 합니다.
나도 한때는 동기부여 영상의 미친X이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입니다."
"인생을 롤러코스터라고 생각하세요."
"포기는 배추 셀 때나 쓰는 단어입니다. 포기하지 마세요."
"피할 수 없으면 즐기세요."
동기부여 영상이 좋다, 아니다를 나누기엔 보는 이에 따라 다르기에 그런 걸 얘기하려고 이 글을 시작한 게 아니다. 그저 지금 나는 어떤 상태인가를 스스로 정리하고 싶어서 시작하게 되었다.
알을 깨고 나와 '성인'이 되었다는 타이틀을 가지고 열정에 젖어 앞으로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만 같던 시기에 나는 동기부여 영상에 미쳐있었다. 성공한 멋진 사람들, 내가 겪지 못한 아픔을 겪고 이겨낸 사람들, 저런 사람들처럼 될 거야. 나도 저 나이엔 멋있는 커리어우먼이 되겠어! 나의 일에 자부심을 느끼며 통장에 차곡차곡 쌓인 돈으로 효도하고 베풀며 살 거야. 언제나 꿈은 크게 가지랬다고 꿈만 크게 가졌다.
그 동기부여에 내 열정버튼이 눌려, 실행력에 시동을 걸었던 걸까. 나는 오랜 시간 꿈꿔왔던 일을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 똑같이 시작하기 위해 겁도 없이 사회생활로 발을 밀어 넣었다. 대학교 등록금과 같은 금액의 수강료를 지불하고, 고등학교와 비슷한 오전 10시부터 오후 5~6시까지의 수업을 듣는 방송아카데미에 등록을 했다. "3개월만 빡세게 다니자. 그럼 여기서 취업도 되고 현금이 제일 많다는 '작가'가 되는 거야! 그럼 앞으로 나도 작가로 10년 버텨서 메인 작가가 되고 드라마를 쓰는 거야!" 얼마나 귀여운 꿈인가. 그땐 작가의 길이 잘 다져놓은 계단 같을 줄 알았다. 등산로처럼 울퉁불퉁 잠깐이라도 정신을 놓으면 미끄러지고, 넘어지고, 사고가 나는 위험천만한 길일 줄 상상도 못 했다.
동기부여에 미쳐서, 사람들이 실패하라는 말에 미쳐서, 열심히 하라는 말에 눈이 돌아서 죽어라 열심히 살았다. 그 결과 우울증, 공황장애를 얻었고 지금은 방송국을 떠난 열심히만 산 사람이 되었다. 30살이 되어서 지난 10년을 돌아보니, 열심히 산 사람들 중에 1인이 되어있었다.
언젠가 "열심히는 누구나 열심히 해. 잘하는 게 중요하지"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렇다. 나는 '잘' 살아온 사람이 아니라 그저 '열심히'만 살아온 사람이었다. 작가로도 끝맺음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직장인으로도 엉망진창의 생활을 했다. 모두가 다 똑같이 서서, 똑같은 장애물을 뛰어넘으며 결승점에 도달하는 달리기가 아니라 각자 다 다른 장애물을 스스로 피하는 법을 터득해야 했다.
나는 열심히 살지만,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겪었고, 병원에서 상담받으며 약을 타서 먹어야 하는 사람이었다. 사회생활을 프리랜서로 시작해서 아침마다 제시간에 일어나 출근, 퇴근을 하는 삶에 힘듦을 겪었고, 지금은 자취를 해서 신림에 살지만 자취 전에는 강서구에 살아서 왕복 3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출퇴근하는 게 지옥이었다. 착한 딸 콤플렉스를 가지고 살아왔으며 가족 일에 신경을 쓰고 싶다 백번 천 번 다짐하지만 무슨 일이 생기면 어디든, 언제든 달려가는 여전히 착한 딸로 살고 있으며, 신경 쓰이는 인간관계에 이제 '포기'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여전히 일을 하며 살지만 매달 불안한 생계에 심장이 벌렁벌렁 거리며 불안 때문에 잠을 설치는 일도 많고 스트레스받으면 몸이 먼저 반응해서 먹은 걸 다 토해내는 사람이 나다. 그럼에도 살아야 된다는 생각에 꾸역꾸역 일어나 이불정리를 하고 뭐라도 써야 한다는 생각에 꾸역꾸역 내 아픔을 팔아 글을 쓰는 사람. 모든 걸 잘하고 싶은 완벽주의자 성향으로 인해 연애도, 일도, 자기 계발도 열심히 했지만 결국 남는 건 딱히 없는 지저분한 이력들뿐이다.
"와! 대박! 나랑 진짜 비슷하다."
우리는 누군가의 상황을 보고,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근데 저 말은 즉, 비슷할 뿐이지 같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는 각자 다른 장애물이 있으며, 그 장애물은 누군가가 시키는 대로 말하는 대로 피해 지지 않고, 피할 수 없다. 그렇기에 동기부여 영상에서 교훈을 얻고, 지혜를 얻을 수는 있지만 결국 내 인생을 살아가면서 진짜 동기부여는 내가 스스로 내 인생의 장애물을 하나 얻었을 때 깨달은 것, 다음 장애물을 만났을 때 '전에 이렇게 하니까 이 문제는, 이 시련은 이렇게 지나갔어. 그때 내가 했던 생각은 이거였어. 이번에도 이렇게 해보자.'라고 생각했을 때, 그 생각이 나의 동기부여가 되는 게 아닐까.
가슴 찡한 명언들, 멈췄던 일을 하고 싶게 만드는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영상들, 너무 좋아하지만... 저는 그렇게 똑같이 살 생각은 없습니다. 그저 쉬는 시간에 보는 영상, 이미지라고 생각하고 넘깁니다. 힘든 가정환경에서 자란 분들의 삶을 나는 알 수 없고, 돈 많은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들과 나는 출발선이 다르고, 자퇴를 한 사람의 심정은 나는 모르고, 인서울 대학교를 나와 대기업에 입사한 사람의 기분을 나는 모르니까요. 그래서 저는 그냥 사주 보면서 좋은 건 남겨놓고, 안 좋은 건 흘려보내면서 너무 먼 미래가 아닌, 조금 가까운 미래를 조금씩 만들어 나가면서 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