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01 아일랜드 여섯째 날
크리스마스 때쯤, 유럽에 온 건 처음이었다. 사실 내 기준에 11월은 크리스마스에 가까운 달은 아니지만, 유럽 사람들은 11월부터 크리스마스를 축하한다. 크리스마스를 성대하게 축하하는 문화 속에서 다른 나라들보다도 왜 내가 특히 유럽을 좋아하는지 알 수 있었다. 서로의 선물과 카드를 열심히 고르는 사람들의 모습이 꽤 낭만적으로 느껴졌다. 다양한 크리스마스용 카드와 선물 박스의 종류를 보며, 신기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다. 외부인의 시선에서는 무언가를 있는 그대로 즐기며, 관계를 순수한 마음으로 대하는 유럽 사람들의 모습이 참 멋있다. 한국에서 카카오톡으로 선물하기는 편리한 서비스지만, 선물 자체가 가지고 있는 온기는 사라진 것 같다. 이게 내가 일정 수준 이상의 기술의 진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유다. 유럽발 크리스마스 쇼크 덕분에 이번 해에는 크리스마스 카드를 한 번 써보기로 다짐했다.
크리스마스 용품을 파는 매장 이외에도, 거리에서도 크리스마스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더블린에서는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리지 않았지만, 골웨이와 벨파스트에서는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리고 있었다. 특히, 벨파스트의 크리스마스 마켓은 매우 크고 아름다웠다. 다양한 체험 공간들 중에서도 ‘스노우 볼의 주인공이 되는 것, 산타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다음 생에는 동심을 마음껏 누릴 수 있도록 지켜주는 유럽에서 태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일랜드의 아이들에게는 산타가 주는 선물, 부모님이 주는 선물이 따로 있다고 한다. 산타가 아빠 혹은 엄마라는 것을 깨달았던 게 언제인지 잘 모르겠다. 분명, 어린 시절 할머니 집 베란다 창 틈 사이로 루돌프의 뿔과 반짝거리는 장신구들로 뒤덮인 썰매를 보았던 것 같은데... 한순간, 크리스마스는 집에서 쉬는 날이 되어버렸다. 차라리 산타가 있다고 믿을 수 있을 만큼 순수하기라도 하면 좋겠다. 내가 틀려도 좋으니, 하늘을 날아다니는 산타가 있었으면 좋겠다. 산타라는 존재를 갈망하는 걸 보면, 해소되지 않은 혹은 일말의 동심은 남아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