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도 가고 싶은, 매력적인 사진관
아마도 섬세한 정원의 사진관이었기 때문이다. 선풍기 방향을 살짝 틀어주는 배려. 언제든 쉬었다가도 된다고 해주는 넉넉함. 특히, 영정사진을 찍으러 돌아온 할머니를 대하는 정원의 매력에 흠뻑 빠져버렸다. 정원을 보며 사진사로서 느낄 수 있는 보람을 얼핏 알 것만 같았다. 정원은 가장 예쁘고 나다운 모습을 사진 한 장으로 기억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지나가버릴 모든 순간 중 한 순간을 종이 한 장에 가둬준다, 오랫동안 추억할 수 있도록. 셀카 찍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임에도 불구하고, 요즘은 기억하고 기록하기 위해 사진을 찍고 인화한다. 지나간 것들은 항상 그리우니까. 정원의 친구들도, 마지막으로 함께 찍은 사진을 보며 정원을 가끔씩 떠올릴 것이다.
p.s 병원에서 안경 벗고 잠잘 때, 보노보노 같았다. 한석규 아저씨 매력 알아버렸다. (어제부터 이상형)
예고된 죽음
나라면 죽음이 예고되어있을 때, 어떤 삶을 살아갈까. 항상 영화나 드라마, 소설을 볼 때 '나였다면' 가정해보게 된다. 과연 정원처럼 덤덤할 수 있을까. 어떻게 남은 시간들을 정리해갈까. 정원의 정리가 나는 가장 이상적으로 느껴졌다. 하루하루 덤덤히 살아가면서, 자신이 없어졌을 때를 조금씩 준비하는. 처음에는 정말 아무렇지 않아 보여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친구와 술을 먹고 경찰서에서 소리를 지르는 모습을 보고 오히려 화를 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적이었다. 우리는 누구나 비슷하구나. 겉으로는 괜찮아 보이지만 속이 문드러지고 있었구나.
추억으로 그치지 않고, 간직될 사랑.
슬며시 팔짱을 끼는 다림. 같이 아이스크림 먹을 때, 캔을 손수건으로 정성스레 닦아주는 다림. 정말 풋풋하고 설렜다.
정원을 향한 순수한 다림의 마음이 내게도 온전히 와 닿았다. 응답하라 1988이나 예전 영화를 보면, 연락이 지금처럼 수시로 되지 않아서 참 답답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한편으로는 더 애틋하고 진실할 것 같아서 그때가 부럽기도 하면서도, 중요한 순간을 너무 늦게 알아버리게 된다는 치명적 단점도 있는 것 같다. 마지막 다림의 미소를 보면, 다림에게도 정원과의 순간이 마음속에 짙게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마지막 대사는 정말 명대사다.
잔잔하지만 인상적인 연출
정원의 마지막 웃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 영정사진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장면.
마지막으로 정원이 창문 밖에 있는 다림을 손가락으로 그려보는 장면.
비 오는 날 정원이 슬며시 아버지 옆에 누울 때, 아버지의 미세한 움직임.
다림이 사진관 앞에서 정원을 기다릴 때, 꽤 오랫동안 보이는 사진관의 모습. 그리고 갑자기 창문에 던져지는 돌.
지금은 얼핏 이 정도 기억이 난다. 말로 하지 않고 행동으로, 인물들의 복합적인 감정을 잘 묘사한 것 같다. 긴 시간의 흐름들도 자연스럽게 편집되어 전달되는 것 같아 신기했다. 구구절절하지 않고 담백하게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다 전달하는 게 제일 어려운 건데.
영화 이름 그대로, 영화를 볼 때만큼은 내게도 8월의 크리스마스 같은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