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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il Sep 01. 2020

집으로 가는 길

10년 후에도 그대로이길

어젯밤, 우연히 중학교 시절 내가 쓴 글을 발견했다. 제목은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어린 시절, 이모네 집에서 나는 항상 아빠를 기다렸다. 이모집과 우리집은 5분도 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있었다. 작은 둔턱을 지나면, 우리집이 보였다. 나는 그 짧은 길이, 아빠와 잠깐 슈퍼에 들렀다가 집에 가는 길이 즐거웠다고 한다. 그 글에 따르면, 아빠도 아장아장 걷는 나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 좋았다고, 아무리 회식, 많은 일 때문에 피곤해도 나를 업고 집으로 돌아오던 그 때가 좋았다고, 한다. 중학교 1학년 때의 나는 언제까지나 집으로 가는 길에서 느껴지는 평안한 마음이 간직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돌아가는 것이 기다려지는 아늑한 집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기도하며 글을 마친다.


 어릴 적부터 나는 꽤 집을 좋아했던 모양이다. 다행히, 아직까지 그 마음을 간직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이 길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예전보다 더 잘 알기에, 감사함을 느낀다.


 버스 계단을 총총걸음으로 내려와 발이 땅에 닿을 때, 안정감 있게 착지한 기분이 든다. 살랑살랑거리는 마음을 따라 내가 들고 있는 가방도 앞뒤로 움직인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 나도 모르게 콧노래가 흘러나온다. 버스 정류장에서 집으로 향하는 길에는 작은 다리가 있다. 평범하게 도보를 따라가는 방법도 있지만, 항상 나는 둥글게 굽은 다리를 통해 집으로 향한다. 현실은 물도 흐르지 않는 강 위에 있는 유명무실한 다리지만, 내게는 잠깐의 낭만을 선사하는 다리다.

  그 다리를 지날 때면, 고개를 높게 들지 않아도 하늘이 보인다.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그냥 하늘이 펼쳐져 있다. 어떤 날은 파랗고 청명하며, 또 다른 날은 구름이 흩뿌려져있기도 하며, 또 어느 날은 노을로 인한 그라데이션이 있고, 어느 날엔 검은 하늘에 밝은 보름달 하나만이 빛나는, 다채로운 하늘의 모습을 만끽할 수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집을 나와 정처 없이 걷고 싶을 때, 항상 내 다리는 이 다리를 향한다. 탁 트인 하늘을 보면, 나를 괴롭히던 생각이 무엇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어린 나는, 오랜 시간이 지나면, '나의 집으로 가는 모습이 변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이제는 혼자서 집에 돌아갈 때가 더 많다. 그래도 가족이 있어서 아늑한 집, 나만의 공간이 있어서 편안한 집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것은 변하지 않았다. 내가 향하는 길목의 종착역인 '집'은 그대로다. 몸이 지쳤어도 여전히 집으로 가는 마음은 편안하다.


 또다시 시간이 흐른 뒤에, 이 글을 보게 된다면, 그때도 지금처럼 중요한 것이 변하지 않았다고 안도했으면, 다시 한번 감사했으면 좋겠다. 언제나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마치 작은 소풍에 갈 때처럼, 즐겁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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