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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il Sep 02. 2020

물총을 든 할아버지

바깥을 바라보는 시선

 늦은 저녁, 비틀비틀한 걸음으로 한 할아버지가 버스 정류장 쪽으로 오고 있었다.

 멀리서 바라보는 나는, 술에 취한 할아버지가 아닐까, 무섭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렇지만 가까워질수록, 술 때문이라기보다는 원래의 걸음걸이인 것 같았다.

 걸음걸이가 이상하다는 이유만으로 무서움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편견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내 걸음은 자연스러움을 덧대어, 한 발자국 옆으로 움직였다. 사실은 나도 멀찍이 피하는 사람들과 다를 바 없었다. 오히려 위선적이었다.

 

 할아버지와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같은 버스를 탔다.

 버스에 올라타려고 한 줄로 늘어선 행렬의 뒤쪽에서는 할아버지가 보였다.

 나는 주섬주섬 주머니에서 구겨진 1000원짜리 2장을 꺼내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할아버지 옆구리에 낀 작은 물총도 보았다.

 남루한 행색, 비틀비틀 거리는 발걸음, 카드 아닌 현금으로 버스비를 지불하는 모습, 뜬금없는 물총.

 넷 다, 버스를 타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들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나는 뒤쪽 좌석에 앉았고, 할아버지에게 자꾸만 시선이 향했다.

할아버지는 자꾸만 밖을 확인했다. 분명 버스가 어디를 향해 가는지, 그리고 자신이 내려야 할 곳이 어디인지를 분명히 알고 있었다. 결코, 무서움을 느낄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일회용 마스크 아래쪽이 접혀있어 어딘가 불편해 보였다. 할아버지의 걸음도, 옷도, 마스크도, 지폐도 모두 구겨져있었다. 구겨진 비닐 속 물총만 그렇지 않았다.


 할아버지 안에 어떤 이야기가 있을 것만 같았다. 그 이야기를 안다면, 저 할아버지도 나의 할아버지와 다름없는 할아버지처럼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무서워하지 않을 이유를 찾아 해명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집에 있는 손자에게 물총을 사다 주려고 한 건 아닐까. 자꾸만 떼를 쓰는 손자를 달래기 위해, 밖에 나온 게 아닐까. 아무런 옷을 걸쳐 입고, 마스크를 쓰고, 꾸깃꾸깃한 지폐를 주머니에 욱여넣고, 밖으로 나온 건 아닐까.


 바깥을 볼 때, 나는 빠르게 넘겨짚는 경우가 많다.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 내가 벌이는 흔한 실수고 그러지 않았으면 하는 내 모습이다. 변명을 하자면, 밤길에 비틀비틀 걸어오는 할아버지, 아저씨가 무섭게 느껴지고 피하는 것은 사실 생존 본능이라고 할 수 있다. 무섭다는 직감이 맞는 경우도 많은 것이 사실이니까. 하지만 그런 사람들 때문에, 그렇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마치 무죄인 사람을 유죄로 생각하는 것 마냥 마음이 좋지 않다.
 

나와는 다른 모습을 보아도, 함부로 판단할 필요 없이 안전한 사회였으면 좋겠고, 나 역시도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버스 정류장에 내린 할아버지의 걸음을 눈으로 좇았다. 터덜터덜 걸어가는 발걸음이 집을 향하는 것인지, 그 집에는 손자가 할아버지를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을지, 그냥 궁금했다.

빠르게 지나가는 버스는 내 모든 생각을 꾸짖는 듯, 내 시선을 멈출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더 이상 생각하지 말라며, 너 참 건방지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도 그런 것 같았다.
그냥 하나의 이야기를 상상해 본 것뿐인지라 버스의 꾸지람이 조금 억울하기도 했지만, '감히'라는 단어가 떠올라서 생각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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